입학식 다음날이었다.
입학식 때와 다르게 무채색 신발을 신고 집에서 입는 편한 옷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입학식 날, 1학년 대표로 강당에 섰던 아이들 담임이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다.
“일부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쳐준다는 생각에 선행학습을 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쳐주지만 교과 진도상 한글을 모르면 수업을 따라가는 데 힘이 듭니다.
만약 여름까지 한글을 떼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면 두 가지 경우입니다. 아이의 지능 문제, 둘째 부모님의 무관심이겠죠.”내 귓가에 단호한 선생님 목소리가 쨍쨍하게 들렸다. 선생님이 말하는 한글은 어느 수준일까? 완벽한 맞춤법일까? 띄어쓰기일까? 우리 아이들의 한글 수준이 불안했다.
오후 12시 30분. 두 아이가 담임 선생님의 손을 맞잡고 제일 앞줄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이들 멘 책가방은 가슴 끈까지 풀어져 있었다.
“00, 00 어머님이시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선생님이 날 불러 세우며 말했다. 나는 선생님의 어떤 말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선생님한테 허리를 숙이며 “네, 선생님. 기다릴게요.” 하고 말하는 순간 색이 바랜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더 가관인 것은 꽃무늬 양말이었다.
선생님이 다정한 조언을 해줄 터인데 차림새가 이래서야.
남편은 하원 동영상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편한테 나 대신 선생님 알현을 부탁하고 곧장 아이들 손을 잡고 교문 밖을 나왔다. 남편한테 이런 일을 맡기는 것은 익숙했다. 경험컨대 아이들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우는 것은 두려운 신호였다. 그 말들이 전부 슬픈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해도 그들 앞에서 내 다리는 자주 후들거렸다. 담임이 남편한테 나직 막하게 말하는 게 들렸다.
“아버님, 아이들이 미성숙해요.”
아이들이 아빠 곁으로 갈까 봐 두 팔을 거칠게 붙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교문 앞 많은 학부모 중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미성숙이라는 단어를 그 누구도 듣지 않았기를 바랐다. 선생님은 특별한 존재가 맞나 보다.
아이들과 사는 부모보다 고작 세 시간 만에 아이들을 정확히 알아보는 선생님의 안목에 탄식했다. 남편이 선생님과 상담하다 우리 아이들만 특별히 잘 봐달라고 말하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말해 부모도 미성숙으로 보일까 봐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신나 있었다. 선생님을 따라 교실에 들어가니 책상마다 이름이 쓰여있었고 자기들의 반 번호가 1번, 2번이라고 떠들어댔다. 가던 길을 멈추고,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가 느끼는 캄캄한 절망을 아이들한테 말할 수 있을까?
“마트에 들러서 과자를 사자.” 말하고 서둘러 내려온 학교 콘크리트 담장 주변을 걸어 다녔다.
이른 봄, 고스란히 어린아이들이 미웠다. 여린 새끼들을 무턱대고 학교에 보낸 결과가 입학 다음 날 일어난 것이다. 겨우 3월 3일이었다.
참담한 마음으로 골목길을 거닐다 야채가게에 멈춰 섰다. '야채 세일 봄동 1근 3300원'이라는 팻말을 보고 첫째 아이가 물었다.
“엄마 봄도가 뭐야?”
책가방 두 개를 어깨에 메고 파란 비닐에 싸인 봄동을 쥐었다. 나이 사십인데도 봄동은 생소했다. 봄동을 어떻게 고르는 지도 몰라 야채 가게 할머니가 주신대로 군말 없이 받아왔다. 한 잎 한 잎 생채기가 심했다. 봄동의 크기도 너무 커 아이들 네 손을 감싸도 남을 정도였다.
부아가 났다.
이렇게 우악하게 생긴 채소를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봄동을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큰방으로 들어갔다. 동굴로 빨려 들어가듯 이불을 뒤집어쓰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선생님은 무슨 말을 했을까? 선생님이 공교육이라는 테두리에서 부모한테 할 수 있는 이야기와 할 수 없는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뒤엉켜 격렬히 부딪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집안이 너무나 조용해 큰 방 문을 열었더니 두 아이가 봄동을 뜯고 있었다. 거실 바닥에 흙덩이들이 무수히 떨어져 있었다. 집안 곳곳에 흙을 묻히고 다니는 아이들을 벽으로 밀어붙이고 고음을 내질렀다. 평상시라면 심호흡 한 번으로 넘어갔던 일들이 아이들을 향한 험한 말과 손매질로 파문이 번져갔다.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울기 시작했다. .
검붉어진 마음을 녹여야 했다. 오늘은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첫 등교하는 날이었다. 누구에게나 첫 순간은 불안 용량이 터지는 법인데 아이들이 짠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아이들과 봄동 속잎을 마저 뜯었다.
첫째가 또 “엄마 봄도가 뭐야?” 물었다.
지식백과에서 봄동을 찾아보았다. 봄동은 노지에서 월동하여 잎이 결구형태를 취하지 못하고 개장형으로 펼쳐진 상태의 배추였다. 어려웠다. 정의를 선명히 보여주고 싶어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봄동 아래에 깔았다.
“봐봐.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봐. 봄동은 얼음이 있는 추운 곳에 살다 보니 서로를 안아줄 수가 없대. 이대로 봄이 될 때까지 떨어져 있는 거래.”
둘째 아이가 대답했다.
“엄마 추우면 더 붙여야지. 추울 때 우리는 겨울 이불 안고 엄마한테 더 붙잖아.”
둘째의 말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밑바닥을 뚫고 헤엄쳐 나갔던 자존심이 고개를 들었다.
세상에 수많은 배추가 있다.
배춧잎은 수확시기와 여러 겹으로 둥글게 속이 드는 모양으로 다른 이름이 붙어진다. 수확이 늦가을로 겉잎은 진한 녹색에 속잎은 선명한 노란색인 '김장배추', 일반 배추와 재배하는 시점이 어긋나 잎의 끝 부분이 벌어진 채로 자라나지만 항암에 좋은 '얼갈이배추', 추위에 강해 잎이 옆으로 퍼져있지만 봄을 먼저 알리는 단맛 강한 '봄동'이 있다.
어떤 환경이냐가 중요하지만 끝내 버려지는 배추는 없었다. 배추도 그러한데 엄마인 내가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주눅이 들어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미숙하게만 바라봤던 게 부끄러웠다.
남편이 돌아왔다. 남편과 함께 들어온 공기가 무거웠다. 남편과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다 배추 이야기를 꺼냈다.
“배추도 속이 차는 시기가 다르고 끝내 속이 차지 못하더라도, 다 쓸모가 있대.”
남편은 웬 배추냐며 황당해했지만 나는 배추의 쓸모를 염원처럼 중얼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을 마음에 품고 새벽까지 뒤척이다 봄동처럼 다리를 뻗어 자는 아이들을 보았다. 갑자기 냉혈한 오기가 치밀어 아이들 발바닥을 붙잡고 소곤소곤 맹세했다.
“너희가 김장배추로 자랐으면 좋겠어. 엄마가 노력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