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풍경

학습지 선생님

by 볕발

첫째는 소아정신과에서 세 차례 심리검사를 받았다. 만 6세부터는 30쪽 분량의 검사지에 ‘지능검사’ 수치가 또렷이 적혀 있었다. 보고서를 넘기는 손끝이 잠시 멈췄다. ‘주의력’과 ‘사회 성숙도’라는 제목 아래, 또래에 비해 수치가 부족하다고 적혀 있었다. 전문의가 학령기에는 발달센터와 학교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 똑똑 내려앉았다.

병원을 나오자마자, 공부방을 검색하다, 손이 멈췄다. 소문이 빠른 동네였다. 한 번은 런 말도 들었다.

언니, 교실에서 첫째가 자꾸 방귀를 뀐대. 언니가 등원 때마다 옥수수를 줘서 그런가 봐.”

그날 이후 아이들에게 옥수수를 먹이지 않았다. 동네 곳곳에서 우리 아이 상황을 이미 다 알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공부방 대신 학습지를 택했다.

집에서 하는 학습이니, 선생님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해 봄부터 가을까지, 화요일 저녁에 선생님이 찾아왔다. 그날은 평소엔 지나쳤던 화장실 물기를 닦아내고 거실 바닥까지 걸레질을 했다. 선생님이 머무는 동안 화장실을 이용한 적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꼭 챙기게 되는 일이었다. 매번 아이스 콜드브루도 준비했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은 저번 주 숙제지를 가방에 넣으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둘째는 덧셈 7단계(모든 문제에 7을 더하는 묶음)을 잘 마쳤으니 다음 주부터 8단계로 넘어가고, 첫째는 6단계를 더 반복하자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잠시 멈추었다. 나는 첫째가 반복학습에 싫증을 낸다며, 둘째와 진도를 맞추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선생님은 십 년 경력답게 짧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수학 감각을 키우기 위한 반복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 말이 옳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자꾸 빗겨 나는 느낌이었다.


8월로 접어들 무렵, 둘째는 12단계에 올라섰고, 첫째는 여전히 7단계를 복습했다.

선생님은 둘째에게 “숙제 잘했어” 하며 마이쭈 두 알을 쥐여 주었다.

나는 다음 주부터는 반복 복습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교재를 넘기다 말고 고개를 아주 약간 숙이며 “그러다가…” 짧은 숨을 내쉬었다.

그 제동이 느껴지자 내 혀가 말라붙었다.


그날 밤, 첫째는 이불속에서 내게 소곤소곤 말했다.

“엄마, 선생님은 나한테는 마이쭈 안 줘.”

“아니야. 너한테도 마이쭈 남겨두고 가셨어”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다음 날 고소한 가을바람이 불었다. 선생님 자리에는 입을 대지 않은 콜드브루가 녹고 있었다.

“선생님, 날씨가 쌀쌀해졌네요. 다음 주부터는 따뜻한 음료를 준비할게요.”

“아니요.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준비 안 해주셔도 돼요. 어머니, 첫째 수학은 반복 진도 안 할게요. 그런데 국어 수업 할 때 다른 집에서는 발음까지 하나하나 짚어가며 가르쳐주지 않아요. 이 정도는 과외비 주셔야 해요.” 말끝을 웃음으로 말아 올렸다.


나는 그녀의 말에 또 허둥거렸다.

그녀가 아이 진도를 고집할 때마다, 오래된 경력에서 나오는 기준을 믿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말은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날부터 그녀의 말들은 염려가 아니라 꾸지람처럼 들렸다. 의도한 뜻이 아니었더라도 이미 마음이 돌아서지 않았다.

여름 샌들에 덧신조차 신지 않은 채 가정방문을 하는 것도 내키지가 않았다.


나는 참다가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본사 담당자의 끈질긴 설득이 이어졌고 위약금 대신 두 달 연장이 합의되었다. 선생님 방문 없이 교재만 받기로 했다. 우편함에 학습지가 쌓여갔지만

‘교재를 우편함에 놓고 갑니다.’라는 문자는 받지 못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오지 않는 일을 묻지 않았다.


이후 아이들과 서점에 갔다. 각자 풀 문제집을 고르게 했다. 매일 저녁 식사 후, 식탁 위에 문제집을 펼쳐 놓고 하루에 한 장씩 풀게 했다. 아이들이 문제를 풀 때마다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 주었다. 아이들은 내 쪽으로 의자를 바짝 끌어당기고, 동그라미를 좀 더 크게 그려달라고 했다. 선생님 앞에서 굳어 있던 입 모양이 둥글어지고, 정답을 맞히면 함박웃음이 터졌다.


노란 은행잎이 폭신폭신 밟히는 두 달 동안, 우편함에는 교재가 뭉그러져 있었다. 센서등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우편함에서 선생님을 떠올랐다. 첫째와 둘째에게 건네는 다른 표정과 말, 답답해하는 숨소리, 마시지 않는 커피 향이 뒤섞여 불협화음처럼 몰려왔다.

선생님께 물어볼 틈이 없었다. 그저 첫째를 맡겨 두었다는 이유로 마음이 작아졌다.


우편함을 닫고 집에 들어섰다. 창문을 열자 늦가을 바람이 거실로 흘러들었다.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할 학습량을 가볍게 정했다. 식탁 위에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마이쭈와 따스한 콜드부르를 놓였다.

나는 바랐다.

이런 저녁 풍경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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