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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킴 Jan 24. 2021

3. 나는 남보다 느린 청개구리다

남보다 아주 늦거나 혹은 아주 빠르거나

 나는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때’를 항상 넘겼다. 대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때, 취직해야 하는 때, 연애해야 하는 때, 결혼해야 하는 때, 집을 사야 하는 때, 아이를 낳아야 하는 때, 첫째 낳고 나면 둘째를 낳아야 하는 때. 한국에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 적절한 시기에 대한 암암리의 압박이 꽤 많다. 외국에 산다고 그 적령기에 대한 압박을 안 받는 건 아니었다.


@rayhenessy 출처: 언스플레쉬


대학을, 그것도 학사 졸업만 두 번 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4년을 늦게 졸업을 했다. 늦게 졸업을 하니 당연히 회사생활도 4년 뒤늦게 시작했다. 집을 살 생각은 아예 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의 ‘적절한 때'로 치면 얼추 맞춘 것이 결혼일 수 있겠다. 나는 28세였고 남편은 나보다 한 살이 어린 27세였다. 유럽의 초혼이 30세를 훌쩍 넘으니 사회 통념상 나의 남편이 굉장히 일찍 결혼한 셈이다. 결혼하자마자 어김없이 언제 아이를 낳을 것이냐는 주변의 질문들이 부담스러웠다. 우리가 첫 아이를 가진 것은 거의 마흔이 다 되어서였고, 무자녀를 생각했던 내게 둘째란 처음부터 내 사전에 없었다.      


 두 번째 대학을 영국으로 갔고, 한국을 가끔 들어가게 되면 주변 사람들의 질문은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다. 4년이나 늦게 대학을 가서 어쩌냐며 회사 취직하기 힘들겠다는 이상한 걱정. 늦게 대학을 갔으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결혼도 늦게 하게 되겠다는 근거 없는 근심. 해외에서 취업하기 힘들다던데 한국 들어오면 일자리 구하기 힘들겠다는 절대적인 평가.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결혼할 남자부터 만나라는 억압적인 조언. 한두 번 들었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근데 한국을 들어갈 때마다 듣는 이 반복적인 불편한 말들이 싫었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들의 근심 걱정 대 마왕 오지랖이 반갑지 않았다.      


‘쫌, 그만 좀 하세요! 당신이나 잘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콩알만 한 내 용기가 입 밖으로 나올 재간이 없었다.

‘아, 그러게요. 그렇겠죠?’라고 대화를 끝내는 게 상책이라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고. 

다년간의 경험으로‘저도 걱정이네요. 그럼 좋은 사람 소개해주세요.’ 혹은 ‘그럼 좋은 직장 소개해주세요.’라고 천연덕스럽게 얘기하면 대화가 빨리 끝난다는 것을 간파했다. 이러쿵저러쿵 남의 삶을 평가하고 쉽게 자기 생각을 입으로 흘려냈지만 정작 나서서 무엇을 해주는 일은 본인도 불편했던 거다. 정말 나서서 나를 위해 ‘내 짝을 찾아주는’ 행동 혹은 ‘직장을 소개해 줄’ 진짜 도움되는 행동을 할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듣는 모든 것은 의견이지,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관점이지. 진실이 아니다.
_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물론 나를 위하고 생각해주는 마음 들일 테다. 그런 걱정을 해준다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삶의 결정들을 너무나 쉽게 해결될 일이라는 듯이 대하는 반갑지 않은 마음을 거두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나를 도마 위에 올려 생선 자르듯 머리, 몸, 꼬리를 동강동강 잘라버리는 일이 그렇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을까? 나를 진심으로 도와줄 요양 없이 그저 생각 없이 하는 말뿐이었다. 그런 의미 없는 말들에 상처를 받지 않기로 하니 맘이 한결 가벼워졌다. 띄엄띄엄 보는 그 시선들을 대하는 방법은 그저 동의해줌으로써 그들이 더 깊게 그들의 생각을 내게 어필하지 않도록 애초에 막아야 한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사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정답 매뉴얼 같은 건 없다는 걸 이미 안다. 사회에서 줄 세워놓은 ‘때’를 계획대로 헤쳐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왜 우린 그 ‘때’를 계속 맞춰가는 우리 자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무거운 돌덩이처럼 인생 숙제를 지고 가기로 했다면 그 인고의 길은 철저하게 자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적령기를 맞춰가지 않는다고 내 인생이 불행해질 리는 없다.      


 4년을 늦게 시작한 사회생활에서 나는 운이 좋아서인지 어느 회사를 들어가든 2년 안에 부서에서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아빠가 해군 장교이셨기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을 할 때까지 22번 이사를 해봐서 결혼 후 집이 없어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38세에 임신을 해서 39세에 아이를 낳아 어느 때보다 더 활동적이고 건강한 체력을 기르며 아이와 함께 논다. 웬만한 30대보다 체력이 월등하다. 꾸준히 운동하는 목적이 확실하므로 나에게 저질 체력은 용납할 수 없는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좋은 점은, 내가 아이를 늦게 낳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 나이보다 나를 엄청 어리게 봐준다는 것이다.     


@gpthree 출처: 언스플레쉬


 우리가 일상에서 서로에게 하는 말들이 관심이라는 탈을 쓴 오지랖일 수도, 애정 어린 말로 포장된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식하며 대화를 하면 좋겠다. 


‘너 결혼 언제 하냐?’는 돌려보면 ‘너 이혼 언제 하냐?’라고 되물음을 받을 수 있는 같은 무게의 무례함이다.


‘입사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는 ‘퇴사하기까지 얼마 남으셨어요?’라는 무서운 질문이다.


‘사귄 지 얼마나 되셨나요?’는 ‘이번에는 얼마나 있다 헤어질 것 같아요?’라는 당신과 상관없는 질문이다.


‘아이는 언제 나을 거야?’를 묻기 전에‘아이 키우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실 건가요?’라는 말에 대답할 마음을 가지고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인터넷에 뜬 글을 보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결혼 적령기에 결혼하라는 거 짜증. 지들은 평균수명 넘어가면 자살할 거임?’

정말 도와줄 생각이 없다면 묻지 맙시다. 

그냥 각자 기준에 맞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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