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10개국에 살게 된 배경
내가 한국을 처음 떠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한국에 사는 어느 고등학생이라면 겪었을 법한 점수에 맞춰 어렴풋이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해서 대학을 선택해 다녔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생활이긴 했지만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나름 즐거운 대학 생활이었다. 동국대학교에서 응용생물학과와 영어영문학과 복수전공을 하면서 많은 술자리도 가고 연구소 생활을 함께하며 잠시 고등학교 때의 억눌림을 풀어내며 지냈다. 이미 작고하셨지만, 존경하는 오금동 교수님을 통해 중세시대 영문학에 쏙 빠지기 시작했고, 영어라는 언어 자체, 그리고 영어 문학에 대한 내 욕심은 커졌다.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어학연수를 갔다 오기로 하고 어학연수원 한, 두 군데를 방문했었다. 하지만 너무나 선택의 범위가 넓었고 선택 가능한 국가도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너무 많았다. 때마침 같은 학과 친구가 어학연수에서 돌아왔다고 해서 간단한 질문을 몇 가지하고 바로 캐나다 에드먼턴으로 결정했다. 그 친구 경험으로는 한국인이 많지 않았던 부분이 영어를 빨리 늘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말이 가장 와 닿았기 때문이다.
시작은 그렇게 성적에 맞추어 대학교에 다니고 취직을 하더라도 영어가 필요할 것이니 취직 준비차 갔다 오자는 간단한 이유로 시작되었다. 친구 따라 캐나다로 갔고, 내 생에 처음 해외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 몰래 주말에 집 앞 커피숍에서 일해서 모아둔 돈도 좀 있었고, 대학을 입학한 후로는 영어학원 선생님으로 초,중,고 영어 수업을 했던 나는 꽤 큰돈을 모았다. 하지만 IMF가 터졌던 시간이라 캐나다 환율이 2000원대를 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1년 넘는 어학 연수비와 생활비를 내기에는 충분치 않았고 추가적인 일을 하면서 돈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총금액을 만들어 냈고 비상시에 사용하라며 부모님께서 손에 쥐여주신 비상금을 챙겨 캐나다로 떠났다. 이 선택이 내 인생의 축을 완전히 바꿔 놓으리라 상상도 못 했다.
그렇게 지극히 한국적으로 살던 나는 캐나다 어학연수를 시작으로 10개국에서 살게 되는 문이 열렸다. 해군 장교의 딸로 수많은 도시를 이사 다녔고 고등학교 때까지 22번 집이 바뀌었지만 한 번도 10개국에서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어렸을 때, 잦은 환경 변화가 좋든 싫든 나는 적응을 해야 했고, 다행히도 꽤 적응을 잘 하고 자랐다. 어렸을 적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은 없었다. 19세 성인식 이후로 어른이 되어선 기회라는 것이 항상 살고 있던 나라 밖에서 계속 들어왔으니 내게 역마살이 낀 건 확실하다. 10개국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다. 국제표준화기구 (ISO) 기준으론 전 세계 249개국이 있으니 0.04%밖에 안 되는 곳에서 살아본 셈이다.
10개국에서 사는 것은 10번을 0부터 다시 시작한 것
10개국의 나라에서 살면서 다국적 배경의 다양하고 특색있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수없이 많았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그들과 나를 번갈아 가며 진정한 내 모습을 알아갈 수 있었다. 비교 대상이 나와 비슷하지 않고 상이하게 달랐기 때문에 더 깊은 곳에서 내 자아를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너무나 달라서 나를 나로만 볼 수 있었다. 살았던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을 제외하고 여행을 갔던 것까지 합치면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만났다. 아시아 지역은 한국을 기점으로 일본, 홍콩, 싱가폴, 미주 지역은 캐나다와 미국, 유럽에서는 영국, 이탈리아, 미국, 스페인, 그리고 지금 사는 핀란드. 23년간의 외국살이를 하면서 나는 항상 사람들의 행복과 성공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내 발이 한 나라 땅에 닿는 순간 어떻게 즐겁게 살 것인가, 무엇으로 성공을 성취할 것인가가 내 주요 관심사였다.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10개국에서 산 것이 매우 멋지다는 말을 많이 한다.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정말 멋진 일들이 많다. 하지만 내겐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내게 10개국에서 살았다는 의미는 10번이나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는 것이다. 10개의 훈장이다. 한 나라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흰 종이에 점 하나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을 기점으로 내 행복의 안전을 지켜내고 더불어 내 능력을 인정받아 최고의 자리에 이르는 것이 최우선에 있었다. 그 여정이 항상 쉽거나 멋진 일만은 아니다. 그 나라 고유의 문화적 특징이 불편한 경우도 많고, 그 나라 국민성이 안 맞는 경우도 허다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점들이 속속들이 나올지 모른다. 국가마다 나를 편하게 하는 것,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 천차만별로 다르다.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겪지 않았을 인종차별, 외국인으로 살면서 느끼는 한계, 생전 처음으로 접하는 문제들도 많았다. 반면 야생적인 특성이 있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는 자유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방법을 터득하는 큰 선물을 받기도 했다.
어딜 가든 잘 사는 사람들
초창기 외국 생활을 할 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많이 기웃거렸다. 어떻게 살아가나 궁금해서였다. 질문도 많이 했고, 다채롭게 살아낸 그들의 삶에서 행복이 뭔지, 성공이 뭔지 항상 알고 싶었다.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관찰을 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사람을 보는 눈이 많이 늘었다. 한 국가에서 태어나 한 곳에서 자랐던 사람도, 자국을 떠나 외국으로 가서 새 삶을 꾸린 사람도, 혹은 나처럼 여러 나라를 다니며 산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어딜 가든 잘 사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패턴을 발견하게 되었다. 행복한 사람은 어딜 가도 행복할 수밖에 없고, 성공할 사람은 어딜 가도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국에 있든 외국에 있든 어디에 던져놔도 어떻게 해서든지 행복을 찾아가고, 성공을 찾아가는데 그 바탕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남들이 뭐라든 '마이웨이'를 지켜나가는 중심, 잘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잘 잡는 능력, 자신이 자신다울 수 있는 소우주를 만드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큰 요소 딱 하나만 뽑으라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아는 사람들'이다. 넘 거창하게 들리는가? 그렇다면 좀 더 쉽게 설명을 풀어서 하자면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이 말은 곧 자신이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다.
안전한 자기 세상에서 한 발 밖으로 나왔을 때,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간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두렵긴 매한가지다. 태어나 자란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갔을 때, 내 고국에서 외국으로 나왔을 때, 물론 그 변화의 강도가 높을수록 두려움과 걱정의 강도 역시 함께 높아진다. 하지만 자신의 기준점이, 다르게 말하면 자신만의 정체성이 정확해서 남 때문에, 문화 때문에, 환경 때문에라는 이유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 정체성은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 = 가진 것 /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에 관한 얘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 아쉽게도 내가 만난 많은 사람 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구분 짓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두 가지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 심리학의 대가인 에드 디너 (Ed Diener)는 '행복 = 가진 것 / 원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가진 것이 많으면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가진 것이 많아도 원하는 것이 더 많이 늘어나면 행복지수는 줄어든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가진 것은 일정해도 원하는 것 즉, 욕망을 줄이면 행복지수는 커진다. 그래서 자신의 행복을 알려면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반드시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어디든 잘 적응하고 사는 사람들은 이 구분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흔히들 무언가를 갖고 싶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거로 생각한다. 또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갖고 싶어서 하는 거로 착각한다.
행복 = 가진 것 / 원하는 것
_에드 디너
다른 사람은 다 가지고 있는데 나만 안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불편함을 느끼면 그것은 원하는 것이 된다. 예를 들어, 남들 다 있는 명품백이 나만 없다면 그것은 '원하는 것'이다. 명품백을 들고 다니지 않는 사회 속에서 살면서 내가 굳이 명품백을 몇백만 원 주고 사지 않을뿐더러 그 백을 떠올리지 않고 잘 산다면 그것은 정말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다 있으므로 나만 없어서 '원하는 것'뿐이다. 한참 원하던 것과 멀어졌을 때도 그것을 떠올리고 기억하면서 여전히 원한다면 그것은 '좋아하는 것'이다. 명품백을 전혀 안 들고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혹은 그런 사회에 둘러싸여 자신이 구입한 명품백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몇백만 원을 들여 명품백을 사서 들고 다니고 싶다면 그것은 '좋아하는 것'이다.
물건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이론 경제학자 폴 앤서니 새뮤얼슨 (Paul Anthony Samuelson, 미국 신고전파 경제학자로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다)는 행복은 소비를 욕망으로 나눈 값 'Happiness = consumption / desire' 로 정의했다. 갖고 싶은 것이 많고 소비가 클수록 행복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행복= 소비 / 욕망
Happiness = consumption / desire
_폴 새뮤얼슨
이 두 가지를 잘 구분하면 자신의 행복에 대한 정의가 쉬워진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봐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인지 다시 검증해 볼 기회가 된다.
진짜 원하는 것과 진짜 좋아하는 것
내가 내 인생에서 '진짜 원하는 것'과 '진짜 좋아하는 것'을 구분하게 되는 능력은 많은 경험이 쌓여야 생긴다. 경험 없이 내가 원하는 인생의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다.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따로 구분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 살든지 허탈감과 고립감을 덜 느끼고, 외로움도 극복을 빨리한다. 그래서 성공도 빨리 이뤄낸다. 원치 않는 것은 과감히 버리고 좋아하는 것을 향해 전진해 나가기 때문에 주변에서 보내는 어지러운 신호들을 정리하는데 신호등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릴수록 만족도가 올라간다. 결국, 행복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그것을 얼마나 자주 빨리 찾아내느냐에 걸려있다. 행복 자체가 변하지는 않지만, 그 행복을 정의하는 '나' 자신이 변하기 때문에 행복의 기준도 변하기 때문이다.
10개국을 살지 않았더라도 어디선가 열심히 헤맨 '나'가 있었을 테다. 어디가 되었든 상관이 없다. 헤매는 경험을 함으로써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더딘 걸음이 나를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만은 확실하다.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사느냐 더 의미를 준다. 무엇을 위해 사느냐도 정말 중요하지만, 그 무엇을 위해 누구와 함께 사느냐가 내 인생에 더 큰 행복과 성공을 만들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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