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느끼는 사랑의 맛
나는 칼을 쓰지 못한다. 이십 대 초반 무렵, 설거지를 하다가 칼로 손을 크게 베인 다음부터는 칼을 쥐는 것 자체가 무섭다. 검지손가락을 네 바늘이나 꿰맬 정도로 다쳤으면서 얼마나 울고 난리를 쳤는지. 우리 집이랑 남자친구(현 남편)의 집, 양가 집안이 발칵 뒤집어지고 그 이후로는 아무도 내 손에 칼을 쥐어주지 않게 되었고, 과일을 깎는 법을 아직도 배우지 못한 채 서른 살이 넘은 어른이 되어버렸다.
입덧을 하던 어느 날, 나는 사과가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사과를 물에 대충 씻어 껍질채 이로 베어 먹었을 터인데, 나는 껍질을 깎은 사과의 노란 속알맹이만 먹고 싶었다.
남편은 과일을 씻거나 깎는 과정이 귀찮아서 과일을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귀찮다는 이유로 과일을 안 먹으면서, 내가 과일을 먹고 싶다고 하면 언제나 과일을 깎아주고는 했다. 사과, 배, 복숭아.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과일들을 세심하게 씻고 깎아주곤 했다. 임신을 한 다음부터는 좀 더 세심하게 과일을 씻고, 깎은 과일을 그릇에 예쁘게 담아내곤 했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말이다.
그런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귤이나 오렌지, 한라봉 같이 까서 먹는 과일들이었다. 남편은 오렌지를 앉은자리에서 서너 알은 거뜬히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 나는 불안증세 때문에 언제나 손가락에 있는 거스러미를 물어뜯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집에 한라봉이나 귤이 있는 날이면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과일들을 까서 알맹이만 락앤락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손에 난 상처에 귤즙이 들어가면 따끔거릴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 과일들을 깎았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 말이다.
남편은 나를 위해 과도를 들고 늘 과일을 깎아주었고, 나는 상처 난 손으로 과일 껍질을 뜯어내곤 했다.
나는 이게 우리 부부의 사랑 방식이라 생각했다. 하기 싫은 것은 대신해주고, 좋아하는 것은 먼저 해주는 것. 과일뿐만 아니라 말이나 선물을 주고받거나, 중요한 일을 대할 때도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행동했다.
두 사람의 시간 속엔 사소하지만 정말 사랑스러운 기억들이 많다. 입덧 기간 동안에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자주 울고 힘들어했지만, 남편의 사랑이 있기에 나는 웃으며 힘을 낼 수 있었다.
입덧약을 복용하기 시작하고, 임신 중기에 들어서면서 몸이 많이 좋아졌다. 입맛이 돌기 시작한 나는 남편에게 먹고 싶은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귀하던 80년대생에 태어난 남자, 제사가 있는 경상도 집안의 아들, 삼 형제 중 차남, 남중 남고 공대를 거쳐 남자들만 있는 직장에서 재직 중.
남편이 지나온 시간들만 보더라도 그가 어떤 모습의 남자일지 예상이 갈 것이다. 고집세고, 강직하고, 목소리 크고, 억양 세고, 무뚝뚝하고, 어디서도 절대 지지 않고, 원리원칙적인 남자. 그런 내 남편의 첫인상이 너무 차갑고 무섭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무서운 사람이었으면 내가 결혼을 하고, 그의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잘 싸우고, 욕도 잘하는 남자가 나와 싸우면서는 한 번도 욕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욕을 하거나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주변에 남편을 모함하고, 상처 입히는 건 내쪽이었다. 내 성질을 오롯이 받아들여주면서 자신이 가장 나쁜 사람인 양 주변 사람에게 욕을 대신 먹어주는 것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내게 언제나 최고의 사람이었다. 나에게 없는 강한 생활력에 반했고, 언제나 일관적이고 변함없는 모습에 신뢰가 갔고, 가족들에게 따뜻한 모습에 결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그와 똑 닮은 아들을 낳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고, 온갖 위험과 아픔을 무릅쓰고 내가 먼저 임신을 결심하게 만들어주었다.
남편은 다 좋았지만 무뚝뚝한 것이 하나 흠이었었다. 시어머니가 왜 저런 무뚝뚝한 녀석이랑 결혼했냐면서 나를 안쓰럽게 여길 정도였다. 남편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모든 게 다 귀찮다며 일을 안 할 때는 집에만 있던 남자였다. 그런 그가 아빠가 되더니, 엄마가 된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은 군말 없이 사다 주는 남자가 되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내 남편은 정말 좋아 보이지만, 언제나 그는 반전이 있는 남자였다. 내가 임신을 한 동안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사다 주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는 뼛속까지 공대남이었다. 나는 임신을 한 내내 그의 머릿속에 명령어를 제대로 입력하기 위해 애를 썼다.
티라미수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아침에 퇴근하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동네 모든 카페며 빵집을 돌아다녔는데 티라미수가 없었다면서 다른 케이크와 빵들을 사 왔다. 나는 '티라미수'가 먹고 싶었던 것이니, 없으면 아예 안 사 와도 된다고 말했다. 입덧을 하는 임산부가 부탁한 건데 뭐라도 사 와야 하지 않겠느냐 남편은 말했다. 나는 그 마음이 좋긴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고맙다 했다. 이렇게 뭉뚱그려 말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집 앞 제과점에서 티라미수 케이크를 사 올 것. 없으면 그냥 집으로 빨리 들어올 것.' 야간근무를 하고 와서 피곤한 남편에겐 이렇게 명령어를 입력해야 했었다.
한 밤중에 캔디바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집 앞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가서 캔디바를 산더미만큼 사 왔다. 나는 캔디바를 이렇게 많이 사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 두 개만 사 오면 된다 했다. 명령어를 정확히 입력하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캔디바를 두 개만 사 올 것. 없으면 아무것도 사 오지 말 것.' 이게 올바른 명령어 입력 방식이었다.
갑자기 달고나가 먹고 싶었다. 우리 둘 다 달고나를 많이 먹으며 살아왔지만 한 번도 달고나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눈대중으로 배운 대로 달고나를 만들었지만, 최악의 맛이 탄생했다. 하이라이트에 올려서 만든 것이 잘못이었을까? 바닥에 붙을까 봐 식용유를 바른 것이 잘못이었을까? 소다의 양이 잘못된 것일까? 설탕만 버리고 도저히 못 먹을 정도로 신기한 맛의 달고나가 만들어졌다. 정확한 설탕과 소다의 그램수나 불의 온도를 계산하고, 식용유를 바닥에 바르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남편의 회식이 있는 날. 회식 장소 근처에 맛있는 까눌레 집이 있다 하여 남편에게 회식이 끝나고 오는 길에 까눌레를 사다 달라하였다. 나는 그토록 많은 명령어 입력 실수를 저지르고도 배운 것이 없었나 보다. 왜 저렇게 말했던 것일까. 그날 남편은 그 제과점에 있는 까눌레랑 마들렌을 종류별로 하나씩 다 사 왔다.
도대체 여기에 얼마나 쓴 것일까. 계산해 보면 선물세트로 사거나 하면 더 저렴하게 가져올 수도 있었을 텐데. 마감 직전의 가게에 들어가서 남아있는 빵들을 정가로 다 사 온 것이었다. 이런 빵집에 혼자 가본 적도 없고, 이런 달콤한 것을 사본 적도 없으니 어찌 알까. 사다준 것도, 나를 생각해서 내가 좋아할법한 맛의 빵들을 전부 사 온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아내의 입장으로서는 남편이 얼마나 많은 돈을 썼을지 생각하면서 입맛이 씁쓸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입덧은 많이 나아졌어도 위염이랑 식도염이 있어 많이 먹지 못하는 임산부에게 그 많은 빵들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빵들을 상자채로 냉동실에 넣어 마치 약처럼 하루에 반 개에서 한 개씩 챙겨 먹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공대남, 양철 로봇 같은 내 남편. 제대로 명령어를 입력 못한 내 잘못이라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이 것 또한 그의 사랑 표현이었다.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모두 사다 주고 싶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안쓰러운 임산부인 아내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그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