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입덧일기 06화

06. 베트남 쌀국수 국물만

친정식구들에게 투정을 부리는 날들

by 김히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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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싫어하는 내 성격 중 하나는 친한 사람들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었다. 말이 어리광이지. 사실은 짜증과 투정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어색한 사람들에게는 배려를 하다 못해 굽신거리기까지 하면서, 친한 친구나 가족들에게는 내 부정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다 토해내며 투정을 부리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입덧이 가장 심했을 무렵, 나는 산전검사를 하기 위해 보건소를 향해갔다. 내가 걱정된다며 친정식구들이 차를 끌고 집 앞까지 오셨다. 덕분에 편하게 보건소까지 갈 수 있었는데도, 나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ㅇ않았다. 엄마랑 아빠, 그리고 같이 오신 할머니까지. 가족들은 내게 잠은 좀 잘 잤는지, 뭐라도 먹은 게 있는지 내게 물었고. 나는 언제나 똑같다고,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한다면서 똑같은 거 또 물어보지 말라며 짜증을 냈다. 산전검사를 기다리러 혼자 가겠다고 하는데 엄마가 안절부절못하며 쫓아와서 짜증을 냈고, 보건소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입덧이 심해져서 대기시간 내내 투정을 부렸다. 보건소 직원에게는 살갑게 인사하고, 내가 봤던 사람들 중에 제일 피를 안 아프게 뽑는 사람이라며 고맙다는 말까지 하고 나왔으면서, 엄마한테는 임신하고 나서 맨날 피만 뽑는다고 징징댔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살갑게 굴고 고맙단 말을 잘하면서, 왜 나는 계속 나를 챙겨주던 부모님에게는 그러지 못했을까.


아무리 시댁식구랑 가깝고 사이가 좋다 하더라도 시아버지에게 투정이나 짜증을 부리기는 힘든 일이었다. 친정식구들한테만 왜 이럴까 난. 짜증을 내고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거기서 멈추면 좋을 텐데, 기분이 좋지 않아서 나는 친정식구들에게 더 말을 툭툭 던지곤 했다.


KakaoTalk_20230917_230838928.jpg 보건소에서 준 선물은 꽤 오랫동안 나와 우리 가족들을 두근거리게 만들어주었다. 임신을 실감함과 동시에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임신을 축하해 주는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산전검사가 끝나고 집에 가면서, 가족들은 최대한 내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밝게 말을 건넸다. 보건소에서 받아온 임신축하선물을 보며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느니, 손수건이 너무 귀엽다느니 이야기를 했고, 나보고 뭘 먹고 싶냐고 물어봤다.


부모님이 별로 입맛이 없다고 투덜대는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바로 베트남 쌀국숫집이었다.


예전부터 그랬다. 술을 많이 마신날 다음에 숙취가 심하면 나는 해장을 위해 언제나 쌀국숫집을 찾았다. 속이 메슥거리는 입덧을 경험하면서 가끔씩 나는 쌀국수 국물이 마시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걸 기억해서였을까. 엄마랑 아빠는 베트남 쌀국숫집 앞에서도 내 눈치를 보셨다.

KakaoTalk_20230919_213948784_06.jpg 나는 사실 이런 풍경을 정말 좋아한다. 어지럽혀 보이는데 정리되어 있고, 한국적인 것과 이국적인 것이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을.

'냉면을 먹으러 갈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냉면집에 갈까?'


이제 냉면은 질렸다면서 나는 또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으며 차에서 내렸고, 온 가족이 다 같이 식당에 들어갔다. 다행히 음식점에서 풍기는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쌀국수 한 그릇을 시키고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음식을 기다렸다. 친정식구들이랑 같이 보건소에서 받아온 선물들을 보고, 할머니가 꾼 태몽 이야기도 하고,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이야기를 나눴다. 속은 메슥거리고, 머리도 아팠지만 기분이 조금씩 좋아졌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고 한 숟갈 뜨고, 나는 울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베트남 쌀국수 위에 올라와있는 고기며 숙주나물, 면까지. 모든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냥 국물만 마셨다. 할머니와 엄마는 고기만이라도 먹어보라면서 나를 걱정했지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임신을 하기 전에는 음식을 좋아해서, 그리고 음식을 남기는 행동 자체를 싫어해서, 나는 배가 불러도 입 안에 음식을 욱여넣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 나서 음식을 버리는 일이 많아지면서 우울해지는 일이 자주 생겼다. 남아있는 쌀국수 건더기들을 보면서 침울해졌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가게 주인과 무언가 이야기하더니 까만 비닐봉지에 뭔가를 받아왔다.


'네 이야기를 하고 쌀국수 국물 좀 받아왔어.'


가게 주인은 내게 눈인사를 하며 괜찮다면서 많이 먹으라는 듯 웃으며 손짓을 했다. 엄마가 내민 봉지는 묵직하고 뜨거웠다. 그냥 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나는 왜 그렇게 짜증을 냈을까. 옛날에 내가 이러면 엄마는 나한테 똑같이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는 했는데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줄까.

KakaoTalk_20230919_213948784_04.jpg 입덧시기에 찍어놨던 쌀국수 사진 초점이 다 나가서,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똑같은 쌀국숫집에 다녀왔다. 직원도, 맛도 많이 바뀌었지만 세 식구가 함께라 그래도 좋았다.

매번 집 앞까지 차를 끌고 와서 나를 데리고 다녀주던 아빠와 베트남 쌀국수 국물을 따로 주문해다 준 엄마, 나를 만날 때마다 뭐라도 챙겨 먹으라면서 꾸깃꾸깃한 지폐를 쥐어주시던 할머니. 그리고 나의 임신을 격려해 주던 보건소 직원과 쌀국숫집 직원들. 모든 사람들이 임신한 나를 배려하고 응원해주고 있었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친정식구들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임신을 하고, 엄마가 되면서 나는 생각할 시간을 많이 얻게 되었다. 내가 가진 부정적인 감정이나 버릇들을 보면서 내 어두운 밑바닥과 마주하게 되었고, 내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느끼면서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나와 마주하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내 행동이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임신을 하게 되면서 걱정한 것은 나를 잃게 되는 것이었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몸과 생활방식이 변하게 될 것이고, 엄마가 되면서 아이에게 시간을 뺏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입덧을 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늘 먹던 커피를 끊게 되었고, 잘 먹던 음식들을 입덧 때문에 전부 다 못 먹게 되었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고, 밥보다 건강식품이나 영양제를 더 자주 먹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이가 태어나게 된다면, 더 많은 것이 변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걱정과 불안이 들었지만, 생각보다도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나'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잃을 수 있는 것일까? 삼십 년 동안 쌓아 올린 내 취향이나 내 지식, 실력, 인간관계. 나를 만들어주는 수많은 요소들이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사라지는 것들일까?


그건 베트남쌀국수 국물 같은 것이다. 임신 전에 해장으로 먹었던 그 국물을 입덧 때도 찾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찾게 되는 것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내가 있다.

물론 입덧 때문에 싫어하게 된 음식이나 음악들도 있고, 아이를 낳고 몸이 병들게 되면서 먹지 못하게 되는 음식들도 있긴 했지만. 그건 나를 잃게 만든다 할 정도는 아닌, 사소한 것들이었다.


나의 현실과 미디어 속 현실은 달랐다. 미디어에는 임산부를 홀대하거나 아이를 혐오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살아보니 생각보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임산부와 아이에게 친절했고, 가족과 친구들은 엄마가 된 나를 존중해 주었다. 물론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고, 병도 얻고, 분명히 공부했던 내용들을 다 까먹기도 했지만 이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든 변화나 진화 과정이 순탄치 않듯이 내가 엄마로 변하는 과정 또한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입덧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고,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면서 나는 '나'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로서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더 나아진 내가 될 수 있었다.

KakaoTalk_20230919_213948784_08.jpg 그때 뱃속에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던 녀석이 이렇게 커서 쌀국수도 잘 먹는 건강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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