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입덧일기 05화

05. 날 것의, 단순한 맛의 음식들

갑자기 익히지 않은 생감자가 먹고 싶어졌던 이상한 날

by 김히읗

갑자기 익히지 않은 생감자가 먹고 싶었다. 나는 내가 미친 줄 알았다. 입덧을 하면서 갑자기 뭔가 먹고 싶어 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건 그냥 호르몬 때문이니까. 그런데 생감자라니? 현관에 있는 상자 안에 있는 감자를 집어 흙을 대충 툭툭 털어낸 다음 사과 깎듯이 껍질을 깎아내고는 전분으로 미끈거리는 노란 생감자를 우적우적 씹어먹고 싶었다. 나는 차마 이 말을 남편에게조차 하지 못했다. 약도 못쓰는 초기의 임산부가 생감자를 먹는다? 이건 정말 위험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싹을 도려낸다 하더라도 탈이 나기라도 하면 어쩌란 말인가. 임신 초기에 나는 그 날 것의 음식들이 먹고 싶은 욕망을 혼자 속으로 삭이며 이불을 덮고 한참을 울었었다.


감자에 대한 욕망은 쉽사리 접어들지 않았다. 나는 생감자와 비슷한 음식들을 찾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파는 알감자구이를 먹었지만 뭔가 부족했다. 감자튀김은 그 기름과 시즈닝 냄새 때문에 역해서 입에 가져다 대고 싶지 않았다. 행여 조금이라도 입에 담으면 바로 그날은 배앓이를 했었다. 굳이 그 휴게소에서 파는 알감자가 먹고 싶어서 친정식구들이 휴게소까지 가서 알감자구이를 사다 주기도 했었다. 그래도 부족했다.


내 몸은 양념이 정말 최소한으로 되거나 거의 되지 않은 단순한 단맛을 원했고, 화기가 닿지 않아 날 것에 가까운 싱그러운 음식들을 원했다. 내가 생감자를 먹지 못하고 시선을 돌린 음식은 과일이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과일을 많이 먹었던 적이 있을까? 집 가까이에 농수산물시장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으나, 입덧이 한창 심한 시기가 겨울이었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한라봉과 귤을 박스로 사다 놓고 먹기 시작했다. 빈속에 과일을 먹으면서 속이 쓰리고, 더 신물이 올라올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단골 과일가게에 초췌한 모습으로 가서 과일을 고르는 내 모습을 보며, 가게 주인은 왜 이렇게 요즘 말랐냐고 걱정을 했다. 내 인생에서 말랐다는 말과 걱정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입덧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살이 5킬로가 빠져버렸다. 결혼식을 앞두고 다이어트를 하고, 개인 PT를 받으면서도 살을 빼지 못했던 나였는데. 임신을 하게 되면서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어버리고 말았다. 남편은 나랑 10년간 사귀면서도 이렇게 턱선이 생긴 걸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고, 부모님들은 애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마르냐면서 애틋해하는 지경이었다.


입덧 때문에 과일 말고는 먹기가 힘들다는 내게 과일가게 주인은 신이 나서는 말을 한마디 덧붙였다.


'딸인갑네!'


자기가 과일가게를 해서 잘 안다고. 자기 임신했을 때도 그렇고, 과일이 당기면 무조건 딸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임신을 축하해 주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내 임신 소식을 전해 들은 한 학부모도 자신이 아들을 셋을 낳아봐서 안다고, 아들은 고기만 당긴다고 내가 딸을 임신한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기분을 내려고 홍차랑 슈크림을 더해봤다. 먹고나서 속이 뒤집히는 한이 있더라도, 이렇게 예쁘게 차려먹는 것이 나름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었다.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그저 그러려니 싶었다. 누군가는 내가 아들을 낳아야할텐데, 딸을 낳으면 얼른 둘째로 아들을 낳아야할거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딸이 최고라고 아들은 쓸모 없다는 말도 했다. 자칫하면 상처를 받을 말들을 태어나지도 않은 내 아이와 몸이 아픈 내게 했지만 내 기분은 그냥 평온했다. 격한 감정을 느낄 정도의 몸 상태가 아니었다. 입덧을 하면서 내 몸은 생기를 점점 잃어가고, 그저 살기 위해서 입에 조금이라도 뭔가를 넣고, 살기 위해 필요한 욕망은 갑자기 아주 빠르게 찾아와서 그 욕망에만 집중하며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저 아이에게 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아이가 건강해야 할 텐데, 내가 이렇게 이상하게 먹고살아도 되는 건가. 나는 이런 걱정을 하느라 다른 생각을 하거나 감정을 느낄 틈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가족이 아닌 타인들이 아이의 성별에 대해 한 마디씩 얹으면 괜히 기분이 불편해졌을 것이다. 입덧을 하면서 사람이 참 단순해져 갔다. 속이 메슥거려 잠을 못 자고 밥을 못 먹어서 예민해지긴 했지만, 그저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투정을 조금 부릴 뿐이었다. 잠 못 들고, 못 먹는 날이 계속되면 사람의 몸에 기력이 빠져나가 화를 낼 힘도 없어지기 마련이었다. 조금이라도 졸리면 지금이다 하면서 신나게 잠을 잤고, 갑자기 뭔가 먹고 싶어 지면 그 감각에만 집중하며 먹고 싶은 것을 찾아 헤맸다.


어찌 보면 참으로 단순한 삶이었다. 날 것을 찾는 욕구는 양질의 영양분을 찾는 생명체가 뱃속에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나중에서야 시부모님에게 입덧이 심할 무렵 생감자가 너무 먹고 싶어서 이상했었단 이야기를 하자, 아버님은 내게 당연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자기도 어릴 때 생감자를 먹은 적이 있었다면서 말이다. 배고팠던 시절, 굽지도 않은 생감자가 달고 참 맛있었다면서, 자기 어린 시절엔 그렇게 먹기도 했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남편 또한 고구마는 싫어해도 감자는 정말 좋아했다면서. 내가 생감자를 찾았던 것은 뱃속 아기가 식구들을 닮아서 그런 거라고, 당연한 거라 하셨다. 어찌 보면 그건 유전자에 각인된 무언가였다.


입덧을 시작하고, 수많은 밤을 지새우면서 내가 느낀 것은 두 개의 삶이었다. 임신 전의 나의 삶과 임신 후의 나의 삶. 온전하게 이어져오던 나의 삶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 아이의 삶. 이 둘의 삶이 하나의 몸에 자리 잡게 되면서 부딪히게 되었고, 나는 내 삶을 아직 이름도 붙지 않은 아기에게 양보해 주었다.


단순한 것을 찾는 것은 내가 살기 위해서, 그리고 아기가 살기 위해서였다. 쓸데없는 고민을 하거나 불안할 시간에는 글을 쓰려했고, 글을 쓰다 보면 피곤해서 잠이 잘 왔고, 잠이 오면 잠을 자고, 일어나서 조금이라도 무언가 먹고 싶으면 때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논문을 쓰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과거 나의 복잡하던 일상보다 단순한 일상이었지만, 나는 자부할 수 있었다. 이전보다 나는 더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임신으로 쇠약해진 나를 열심히 살게 한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의 보살핌 덕분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뱃속의 아이에게 '뀰'이라는 태명을 붙여주었다. 뱃속의 아이가 듣기 좋게 센 발음으로 해달라는 내 요청과,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우리 둘이 감탄하며 보았던 예쁜 귤밭, 그리고 한라봉과 귤을 끼고 사는 나를 보고 지은 이름이었다. 나는 그 이름이 참 맘에 들었다. 이상한 입덧에 지칠 때면 나는 아이에게 '꿀꿀아' 라고 부르면서 뱃속의 아이를 어르고 달래곤 했다.


태명을 짓고 나서, 주변에 임신 소식을 조심스레 전하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던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소식이 뜸하던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내 SNS를 통해 임신소식을 접하였다. 먼저 임신을 경험했던 친구나 선배들이 나한테 입덧은 심한지, 몸은 괜찮은지,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고는 자신들이 잘 먹었던 과일을, 그리고 내가 지금 먹고 싶어 하던 과일들을 택배로 보내주기 시작했다.

갑자기 집주소를 묻던 대학교 친구가 보내준 한라봉 한 박스. 그 사랑스러운 배려가 너무 좋아서 아껴가며 끝까지 다 먹었다.

송구스러웠다. 내가 뭐라고 이런 사랑을 받는 것일까. 이 사랑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민을 했고, 그들이 보내준 과일들을 그냥 그대로 삼킬 수가 없었다. 비싸서 자주 못 사 먹던 한라봉이며 설향딸기며 과일들이 박스로 집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쁜 게 아니라 그냥 울었다. 호르몬의 여파였는지, 그녀들의 사랑이 너무나 크게 느껴져 가슴이 벅차올라 한참을 기뻐 울었다.


때로는 복잡한 맛이 그립기도 했다. 내가 평생 동안 먹어온 그 맛이. 입덧기간 동안 거부하던 그 맛이 말이다. 입덧이 끝나고 나면 다시 그 맛들을 느낄 수 있을까. 모유를 수유하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도 나는 한동안 단순한 맛만 느껴야 할 것이다. 아이를 위해서 말이다. 그래도 예전보다 서글픈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생각보다 나를 응원해 주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아이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지옥 같은 입덧과 긴 임신기간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그래도 내가 원하는 새로운 맛을 아이와 같이 찾아가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마음에 들어버린 오늘의 실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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