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입덧일기 04화

04. 소다크래커와 이온음료

임산부가 된 나는 내게 필요한 것들을 골라 먹어야만 했다.

by 김히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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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처음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듣던 날, 나는 초음파 사진 속 아기보다도 더 큰 하얀 덩어리를 보았다.


'그게 난황이에요. 엄마가 입덧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해도, 그 난황에 있는 영양분 덕에 아기는 잘 자랄 수 있어요.'


내 입덧도 그 난황에서 오는 호르몬 변화 때문이었다. 나는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계란 노른자를 떠올렸고, 그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다시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내가 안 먹어도 아기는 큰다. 임신 초기에 내가 걱정한 것은 '탈수'와 '속이 비어있는 것'이었다.


임산부가 열 명 있으면 그 열 명의 입덧이 다 다를 것이다. 내 입덧은 이상했다. 물도 비려서 못 먹을 정도로 식욕이 없었고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단 한 번도 토를 하진 않았다. 원래 토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인지, 입덧이 그냥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신물을 끊임없이 삼켰고, 나중에는 식도염까지 걸렸지만 단 한 번도 토하지 않았다.


뱃속이 조금은 차 있어야 속에서 신물이 덜 올라왔다. 설상가상으로 입에 무언가를 넣기만 하면 나는 설사를 했다. 의사는 다른 건 문제가 없으나 계속 이런 증상이 지속되면 탈수 현상이 올 것이라면서 물이 안 먹히면 다른 이온음료라도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야 했다.


'입덧방지'

'입덧할 때'

'입덧 음식'

'입덧, 탈수'

'입덧 이온음료'


'입덧'이라는 단어를 아무 단어에나 붙여서 검색을 해도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 정보들을 추려내는 법을 먼저 배워야만 했다.


'아이비와 참크래커'

'이프로 부족할 때와 포카리스웨트, 레모네이드, 게토레이, 자몽주스'


수많은 임산부 선배들이 있는 만큼, 그들의 입덧을 가라앉힌 음식들도 제각각이었다. 대부분 아무것도 삼키지 못해 비어있는 속에는 쿠키나 버터크래커보다는 소다크래커를 추천했고, 탈수 예방으로는 이온음료를 추천했다.


소다크래커는 종류가 적어 고르기 쉬웠다. 참크래커는 반쪽으로 나눠 먹을 수 있는 것이 편하고 좋았으나 미묘하게 맛이 묵직하게 느껴져 삼키기 힘들었고, 아이비는 포장지의 푸른색 때문인지 조금 더 가볍고 산뜻하게 느껴져서 먹기 편했다. 문제는 이온음료였다. 매일같이 마시던 자몽주스에서는 이상한 쇠맛이 느껴져 바로 뱉어버렸고, 레모네이드도 비슷했다. 게토레이는 병부터가 보기 싫었다. 결국 남은 것은 포카리스웨트와 이프로 부족할 때였다. 평소 나는 포카리스웨트를 상비약처럼 집에 구비해 놓을 정도로 애정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텁텁하고 마른 입을 축일 때도, 장염에 걸려서 죽조차 먹지 못할 때도 나는 포카리스웨트를 마셨다. 지금 상황에 가장 맞는 것이 이 음료일터인데, 나는 그 청량한 음료를 단 한 모금도 머금지 못하고 뱉어냈다.


그나마 마실 수 있는 것이 이프로 부족할 때였다. 그것도 시원한 것은 먹지를 못했다. 나는 작은 페트병에 든 그 음료를 잔뜩 사다가 안방 침대에, 식탁에, 책상 위에 배치해 두고 목에서 신물이 올라오려고 할 때마다 마셔서 속을 잠재웠다. 그렇게 복숭아맛 음료가 우리 집을 점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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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었다. 나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은 이후, 노상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다. 각종 맘카페나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베스트 게시글을 확인하였고, 어느새 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은 전부 '아기'나 '육아'에 관련된 것들로 도배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런 것들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이 세상 속에서 정보란 곧 독이자 약이었다.


사실 내가 대학원을 오래 다니며 듣고 읽어본 전공 중 하나가 '미디어 리터러시'였다. 아직 배움이 부족하여 남들에게 설명할 정도는 못되지만 간단히 내가 이해한 바를 말해보자면, 미디어 리터러시란 미디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적절하게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미디어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하는 것이 바로 이런 능력이다.


90년대생인 내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미디어가 정확히 무엇을 나타내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저 우리는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알고 있었고, 드라마나 영화나 만화가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현시점에서 '미디어'를 배척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디어와 정보들이 범람하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에게 쓸모 있는 것을 취하면서 효과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나도 그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버리고 말았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뜨는 정보들은 내게 필요한 것보다 나를 불안하고 두렵게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저 입덧에 좋은 음식을 찾고, 다른 엄마들의 임신 경험담을 찾아보고, 임신 주수별 아기 성장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나아가 신생아에게 필요한 물건들 무엇을 사야 하나 검색해 보았을 뿐이다. 그 이후로 알고리즘은 내게 아픈 아이들의 이야기들이나 아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은 부모들의 이야기들을 추천해 주기 시작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나는 너무나도 많은 걱정을 해버렸다. 속이 메슥거려 잠을 못 자는 날이 허다했는데, 속이 조금이라도 잠잠한 날에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걱정하면서 잠을 설쳤다. 늘 불안했고, 그만큼이나 많이도 울었다. 임산부가 울면 아이가 예민해지거나 병이 생긴다는 속설을 또 어디선가 본걸 기억해 내고는 모든 게 다 내 잘못이고 내가 모자란 것이라며 숨죽여 울었다. 잠을 자면 악몽을 꿨고, 눈을 뜨면 신물을 삼켜내며 악몽보다 더 끔찍한 상상을 했다.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하고 어두운 감정에 빠져들 때면, 나를 구해주는 것은 나의 아버지와 내 남편이었다. 아버지는 늘 비슷했다. 나와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면서, 조수석에 앉은 내게 가볍게 말을 건네곤 했다.


요즘은 참 정보가 많다고. 나는 그래서 요즘 인터넷을 안 본다고. 인터넷도 그렇고 뉴스도 그렇고 보면 다들 안 좋은 이야기뿐이라고. 좋은 일은 인터넷이나 뉴스에 다 안 나온다고. 주변을 보라고. 친구도, 가족들도, 친구의 아는 사람도, 가족의 아는 사람도, 그 누구에게도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는 나오지 않는다고. 세상 사는 게 그런 거라고. 쓸데없는 걱정 하면 오히려 몸이 축나는 것이라고.


남편도 똑같았다. 내가 울다 지쳐 침대에 쓰러져있으면 묵묵히 내 옆에 앉아서는 나를 쓰다듬어주었다. 내가 훌쩍거리면서 불안하고 무서웠던 것들을 이야기하면 논리 정연하게 그럴 일이 없다고 내게 설명하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내 남편은 내 아버지보다 더 무뚝뚝하고 현실적인 남자였지만, 내가 나아갈 길을 말해주었다.


가만히 누워서 쓸데없는 것들을 보면 불안이 커지고 병에 걸리는 것이라고.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활동을 하고 몸을 움직여서 기분을 전환시켜야 한다고.


'건강하게 태어날 애들은 뭘 해도 건강하게 태어나는 법이야. 나 닮은 애라면 무조건 괜찮을 거고.'


남편은 자기가 7개월 만에 태어난 조산아였지만 가난해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내게 수시로 해주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형제들 중에 가장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는 남편의 말을 들으면서 나도 마음을 바꿨다.


나는 되도록 맘카페나 커뮤니티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유튜브로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나 음악을 찾아보았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육아에 관한 영상은 뜨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으로는 친한 친구들의 소식만 보았다. 그리고 나는,


내 불안과 공포를 글로 끄집어내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내가 두려워했던 모든 것들을 소설로 적어 내리면서 나는 내 안에서 나를 괴롭히던 감정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작업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내 안에 있는 감정은 벌레와 같은 것이었다. 흰개미처럼 작은 것이 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를 갉아내리면서 무너트리고 있었다. 나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기에 그 작은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무언가가 거대한 존재가 나를 잡아먹으려 든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글을 적는 동안은 입덧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첫 소설이 완성되게 되었다.


내가 보는 미디어가 모두 다 흰개미는 아닐 것이다. 나는 미디어에 대해 공부를 했던 사람이지만 많이 약해져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잘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몸이 아프면 약해지기 마련이니까. 내게 필요한 정보를 골라낼 정신이 아니라면,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갉아먹는 그 흰개미 같은 정보들을 잡아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아예 끊어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이다.


결국 입덧기간 동안 내 옆에 계속 있었던 것은, 내가 직접 수많은 음료를 마시고 뱉어가며 찾아낸 투명한 복숭아 음료뿐이었다.


우리 엄마는 육아에 대한 대백과 책을 딱 한 권만 읽으며 나와 동생을 키우셨다. 시어머니는 할머니에게 육아에 관한 것을 배우셨다. 책에 나오는 정보는 오래된 것들이라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는 것도 더러 있었다.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에는 미신에 가까운 것도 많았고, 현실적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도 많았다. 나랑 남편은 그런 부모 밑에서 나름 잘 자랐다.


책 한 권만 보고, 이전 세대들에게 육아를 배우던 우리 부모세대는 육아를 하며 행복했을까. 뭣도 모르고 애를 낳아서 길렀다면서 웃던 우리 엄마와 어머님은 나름 즐거워 보였다. 그런 어머님들이 부럽고도 존경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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