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였던 우리가 점점 숙성되고 변화하는 과정들
입덧을 할 때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면 그 서운한 기억이 평생을 간다 한 던데. 반쯤은 맞는 말 같다. 임신 기간 동안 있었던 고맙고 기쁜 기억도, 서운한 기억도 아이가 태어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무래도 그 기억들은 내 아이와 함께 내 기억 한가운데 크게 자리를 잡은 듯싶다.
남편과 10년을 넘게 연인으로 지내왔지만, 1년 정도 부부로 같은 집에서 함께 살면서 알게 된 점이 더 많았다. 이렇게 둘이 살아도 재미있었을까.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지루했을까.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두 사람의 아이가 생겼다. 우리는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로 시작해 남편과 아내의 시간을 거쳐 아빠와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쪽은 내 쪽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했고, 내가 엄마가 될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임신을 하면서 나는 행복하게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은 거룩하고 평온한 임신과정이었는데, 내가 겪었던 것은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던 몸과 마음의 변화였다. 사람을 하나 몸속에 키워내는 것이 쉬울리는 없었겠지만, 생각보다 많이 아프고 힘들었다.
임신을 했을 뿐인데, 우리 두 사람은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달라져버린 것을 느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몸이랑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많이 울고, 투정도 부리고, 약한 우울증도 왔다. 내 불안과 공포를 오롯이 글과 남편에게 쏟아냈었다.
남편은 어땠을까. 남편은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음험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남편은 겉과 속이 언제나 똑같은 사람이었고, 자신이 옳다 생각한 것을 빠르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남자친구였을 때나, 남편이었을 때나, 심지어 내 아이의 아빠였을 때도 우리는 늘 똑같은 이유로 싸우고 나는 많이도 울었다. 하지만 임신기간 동안만큼은 남편에게 크게 서운한 일들이 없었다. 오히려 고맙고 미안한 일만 가득할 뿐이다.
임신 중의 사건으로 아직까지도 우리가 웃으며 서로를 놀리는 일이 두 가지 있다. 바로 스파게티 라면과 내 생일날 맥모닝 사건일 것이다.
내 남편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만약 그에게 '호'가 붙는다면 그 호는 바로 '라면'일 것이다. 라면 김 선생님. 남편은 라면에 대한 사랑이 아주 각별한 사람이었다. 야간근무를 끝내고 온 아침에, 밤에 자기 전에, 밖에서 일을 하면서, 그리고 때때로 끼니때마다 남편은 라면을 끓여 먹었다. 하루에 라면 한 개? 아니, 라면 두 개씩도 꾸준히 먹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라면을 잠시 줄였던 때가 있었다. 임신 준비를 하면서 건강을 위해 컵라면을 아예 끊어버리고, 내가 임신을 하고 나서는 내 입덧 때문에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지를 못하게 되었다.
그러던 남편은 어느 날, 스파게티 라면이 정말이지 먹고 싶었다고 한다. 남편은 내가 곤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점퍼를 입고, 온 집안의 문을 다 열어두고, 환풍기를 틀고, 정말 조심스럽게 스파게티 라면을 끓였다. 끓인 면 위에 소스를 올리고 볶기 시작한 순간, 냄새가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했고, 내가 울면서 방문을 열고 나왔다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끓여 먹는 거야 뭐야!'
나는 소리를 지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기 시작했고, 당황한 남편은 라면을 먹지도 못한 채 나를 달래고 온 집안의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한 겨울이었다. 나는 패딩을 입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울다 지쳐 잠이 들었고, 남편은 결국 스파게티라면을 먹지 못했다.
남편은 아직까지도 이때의 일로 나를 놀리곤 한다. 나는 괜히 지기 싫은 마음에 서운했던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노력을 해본다. 바로 내 생일날 맥모닝 사건이다.
서른 살이 되는 생일이었고, 임신을 한 상태였다. 나는 이 날이 정말 기념적인 날이라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무뚝뚝하고 로맨틱하지 않던 남편 또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아침부터 남편에게 맥모닝을 먹으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날 하루만큼은 좋은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다 하며 자신이 봐둔 곳이 있다면서 나를 다른 빵집으로 데려갔다. 분명 내가 좋아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심하던 때였다. 바이러스 때문에, 그리고 주변의 우려 때문에 나는 내가 좋아하던 장소로 혼자 나갈 수 없는 임산부였다. 그 무렵 나는 환기가 잘 되고, 녹음이 우거져있고, 맛있는 커피와 빵이 있는 카페에 정말 가고 싶어 했다. 남편은 일터 가까이 있는 카페에 나를 데려갔고, 내가 좋아할 만한 빵을 잔뜩 사 왔다. 나는 그 빵을 먹을 수 없었다. 잔잔하게 남아있던 입덧도 있었지만, 내가 그 순간 먹고 싶었던 것은 맥모닝이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나는 맥모닝을 먹으러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임산부에게 그런 음식을 먹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맥모닝, 그것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침식사였지만, 남편은 정말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었다.
임신 기간 중 서운한 기억은 겨우 요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이걸 웃으며 말하며 남편을 놀리는데 쓰곤 했다. 오히려 남편에게 미안한 것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평소의 나는 면이나 빵보다 밥을 좋아했지만, 임산부였던 나는 밀가루로 된 음식만 찾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맥모닝을 사주지 못했던 남편은 내가 먹고 싶어 하던 샌드위치를 사다 주고, 국수를 끓여주고, 열과 성을 다해 예쁜 브런치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밖에 나가지 못해 우울해하는 나를 위해 거실 한편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작은 홈카페를 만들어주고, 내가 좋아할법한 음식들을 사서 상을 예쁘게 차려주기도 했다.
세상에서 내가 이 사람에 대해 제일 많이 알고 있다 생각했었다. 부족한 점도, 좋은 점도 다 알고 있었기에 결혼을 결심했고. 가족들한테 하는 것을 보면 적어도 나쁜 아빠는 되지 않을 것 같고, 이 사람을 너무 사랑했기에 임신을 결심했었다. 내가 사랑했던 남자는 연애할 때 상상했던 좋은 아빠의 모습보다 훨씬 멋진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둘이 아닌 셋이 된 이후, 나보다 남편이 더 부엌에 자주 서있게 되었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 남편이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 늘어났다. 아이와 나를 위해 요리를 하고, 행여나 어린 아기와 면역력이 약한 내가 식중독에라도 걸릴까 봐 싱크대와 부엌 청소를 했다.
내가 몸과 마음의 변화를 느끼며 엄마가 되어갔던 것처럼, 남편은 임신한 나를 배려함으로써 아빠가 되어갔다. 긴 연애와 결혼생활을 하며 우리는 완성이 되어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 우리는 그저 밀가루였을 뿐이었다. 임신이라는 큰 사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 될 것인지 고민했다. 국수가 될 건지, 라면이 될 건지, 아니면 빵이나 달콤한 쿠키가 될 것인지. 긴 고민을 해서 결정하고 행동했더라면 어느 것이든 다 정답일 것이다.
우리는 좋은 엄마와 아빠인가? 아직은 잘 모른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 남편은 좋은 아빠인 것 같지만, 우리는 아직도 미완성인 상태의 밀가루 덩어리일 뿐이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좋은 엄마와 아빠가 되고자 하지만, 완성된 그 모습이 어떤지는 아직 모른다. 숙성을 하고, 발효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재료가 잘못 섞이기도 하고, 다시 밀가루 상태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기도 하겠지.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어떤 엄마와 아빠로 완성이 되는지는 나중에 우리 아이가 판단 내려줄 것이다.
그 날을 위해 남편은 서서히 변화하고 있고, 나 또한 그를 본받아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