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입덧일기 09화

09. 엄마와 함께 한 호캉스

친정엄마라는 존재에 관한 고찰

by 김히읗
KakaoTalk_20231007_204128972.jpg

첫째 딸과 엄마의 관계를 단 한 단어, 아니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둘의 관계를 글 한 편, 책 한 권으로도 설명하기 부족하다 생각한다.


사랑한다. 하지만 밉고, 슬프고, 그립고, 원망스럽고, 그럼에도 사랑한다.

딸에게 연인보다도 더 복잡한 감정들을 갖게 하는 것이 바로 엄마일 것이다.


우리 집안 여자들의 기억은 모두 '서운함'으로부터 시작된다. 나의 엄마는 66년도 서울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경상도에서 이름 있는 가문의 성씨를 가진 사람이었다. 족보가 중요하고, 그만큼 아들이 중요한 집안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첫 딸'이 태어났다. 그것도 미숙아로. 외할머니는 딸을 살릴 돈이 없다고 그 딸을 산부인과에 놔두고 오셨다고 한다. 식모를 거느리고 사는 유복한 집이었는데 말이다. 그런 엄마를 데리고 아랫목에 뉘어서 식모들에게 돌보게 해서 살린 것은 외할아버지였다.


내 태몽은 집채만 한 호랑이가 할아버지의 방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아들일 것일 생각했다. 91년 가장 더웠던 여름날, 나는 서울에 있는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쓸데없이 딸을 낳아가지고."


아기를 낳은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처음으로 들은 말이었다. 아빠와 친가 식구들은 예쁜 딸이 태어났다고 굉장히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날 엄마는 아빠에게 커다란 곰인형과 장미꽃다발을 선물 받았고, 너무 예쁜 딸이라고 아들만 낳은 다른 며느리의 질투를 받았다. 하지만 그날 엄마에게 남은 감정은 서운함과 서글픔 뿐이었다. 내 엄마가 처음으로 엄마가 된 날의 기억은 자신의 엄마에게서 받은 상처로부터 시작되었다.

KakaoTalk_20231005_144419958.jpg 어린아이들이 티 없이, 행복하게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가슴 한편이 찡해져 온다. 부모님이 내게 주었던 사랑과 추억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오로지 엄마에 대한 고마움뿐이다. 늦둥이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내 엄마랑 아빠는 외동딸 하나만 잘 키우겠다면서 나를 위해 많은 것들을 해주었다. 내가 산타를 믿지 않을 때까지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손편지와 선물을 내 머리맡에 놔둬주고, 유치원을 빼먹고 갑자기 바다로 놀러 간 적도 많았다. 나는 엄마한테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른 적이 없었다. 엄마는 그때 어디서 그런 것을 알고 왔는지, 텔레비전에서 광고가 나오기도 전에 새로운 장난감과 신발, 옷들을 내게 사주곤 했다. 친구들이 부러워하던 2층짜리 인형집, 인형옷, 수많은 인형들이 있었다. 혼자서 어린 딸을 데리고 예술의 전당에 가서 온갖 음악회에 참석하고, 발레공연을 보여주었다. 박물관의 전시 품목이 바뀔 때마다 나를 데려가서 보여주었다. 자연농원을 정기권으로 끊어놓고 매 주말마다 자연농원에 가서 놀아주었다.


뚜렷이 기억나는 추억들도 있고, 가물가물한 것들도 있지만. 내 어린 시절은 매 계절마다 그에 걸맞게 알록달록하고 좋은 기억들로 가득 차있었다. 내 모든 행복들은 다 엄마와 아빠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어릴 때는 몰랐다. 그저 공부 때문에 혼내기만 하고, 날 서운하게 한다고 엄마를 미워한 적도 많았다. 머리가 크고 나서는 엄마를 무시하며 매번 싸우기만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과연 지금의 내가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나도 지금 엄마가 되었지만, 내 자식에게 그만큼 잘해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외할머니가 된 우리 엄마가 내 아들을 데리고 좋은 데로 놀러 다니고 있다. 어릴 때 나한테 해줬던 것처럼 말이다. 엄마는 내가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자라게 해 준 정말이지 좋은 엄마였다.


엄마는 어떤 딸이었을까? 내가 보는 엄마는 좋은 딸이었다. 언제나 외할머니 가까이에서 살면서 외할머니를 돌보고, 외갓집 제사까지도 돕던 사람이었다. 좋은 음식이 생기면 언제나 외할머니에게 나눠드리러 가고, 혼자 사는 외할머니를 걱정하며 매일 연락을 드리고 일주일에 몇 번씩이고 외갓집으로 찾아가던 엄마였다.


하지만 외할머니에게 엄마는 그저 딸이었다. 아들보다 못한 딸. 손주인 나를 아껴주시긴 했지만 친손자와 남동생이 태어나고, 사춘기 이후 내 외모가 예쁘지 않게 변한 다음부터 나는 그저 뒷전이었다. 내 나이가 찬 다음에는 빠르게 좋은 집에 시집보내서 아들을 낳게 해야 하는 손녀였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아들에게 시키지 못하는 궂은 말과 일을 시키는 존재였다.


어른이 된 이후 내 모든 원망과 서운함은 다 외할머니를 향해 갔다. 나는 외할머니의 폭력 아래 내 엄마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외할머니를 만나지 말자고 엄마에게 간곡히 부탁했지만, 엄마는 외할머니의 전화를 외면할 수 없었고, 자신은 괜찮다면서 언제나 외갓집을 향해 갔다.


엄마는 좋은 딸이고 싶었고, 내가 보기엔 완벽한 딸이었다. 엄마는 누가 봐도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 평가는 오로지 외할머니가 내려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엄마는 좋은 딸이 될 수 없었다.


나는 가끔 내게서 외할머니의 모습이 보일 때가 있어서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 잘해주는 엄마를 무시하거나 상처 입히는 말을 할 때, 그때마다 나는 내가 외할머니의 핏줄이 맞는구나라는 것을 떠올리며 자책하고는 했다.


내 엄마에게는 보상이 필요했다. 엄마 생신을 맞아 만삭의 내가 호캉스를 계획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이 누리는 좋은 모든 것들을 엄마가 누렸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누리고 살 좋은 것들은 다 한 번씩 엄마가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엄마는 참 이상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먹방을 볼 때마다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참 많고, 부러운 것도 많은 사람인데 막상 딸이 뭔가 해준다 하면 딸의 지갑 사정부터 걱정했다. 외할머니처럼 대놓고 뭐 해달라, 다른 집 자식은 뭐 해준다는데 너는 뭐 없냐라고 해도 내가 엄마를 미워할 일은 없을 텐데. 엄마는 언제나 딸의 돈을 걱정했다.


생일을 맞아 둘이서 호텔에 놀러 가자는 말을 들은 엄마는 질색했다.


엄마가 없으면 아빠랑 할머니, 그리고 동생 밥은 누가 챙겨주느냐. 그게 돈이 다 얼마냐. 엄마는 그런 거 돈이 아깝더라. 엄마는 그런 거 안 가도 된다. 엄마는 그런 거 싫어한다.


코로나가 심할 때인 데다가 비수기라 인터넷을 할인을 많이 해서 얼마 안 든다. 나 입덧하느라 만삭여행도 못 갔는데 호텔 가서 쉬고 오고 싶다. 그거 돈 얼마 안 한다. 내 용돈만으로도 충분히 된다. 동생도 다 컸고, 아빠도 밥은 차려먹을 줄 안다. 하루 정도는 괜찮다. 엄마도 하루 정도는 쉬어야지. 엄마 아니면 나 아무 데도 안 간다. 나 여행도 못 간다. 엄마랑 같이 가고 싶다.


몇 번이나 전화를 하고 설득을 했을까. 엄마는 단 한 번도 나를 이긴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엄마는 내게 지고 말았다. 그렇게 만삭의 딸과 나이가 든 엄마는 함께 호텔을 향해 갔다.

KakaoTalk_20230917_230320405_07.jpg 엄마가 제발 한 점만 더 먹어달라고 애원했던 로스트비프
KakaoTalk_20230917_230320405_16.jpg 지금 가면 다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때는 못 먹었다. 너무 아쉽다.

후회는 없었다. 엄마랑 여러 여행을 다녔었지만 한 번도 안 싸우고 평화로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나. 사실 이 세 여자는 정말이지 많이 닮은 사람이었다. 그러니만큼 수도 없이 싸우던 사이였다. 여태까지 엄마랑 나랑 그토록 싸웠던 이유는 '앎'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엄마의 인생을 몰랐고, 희생을 몰랐고, 사랑을 몰랐다. 심지어 여행을 다닐 당시 엄마의 무릎이 얼마나 아픈지, 몸이 아프다는 게 일상을 어떻게 무너트리는지도 몰랐다.


엄마와 호텔에서 지낸 하룻밤은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엄마는 모든 것을 즐겼다. 호텔 뷔페를 맛보며 연거푸 맛있다는 말을 하고,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다던 전망대에 가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야경을 보며 감탄하시고, 무섭다고 안 올라가겠다는 딸까지 억지로 끌고 전망대까지 올라가 사진을 찍고, 많이도 웃으셨다.

엄마와 행복하게 지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습게도 내가 내린 결론은 '돈'이었다. 돈이 풍족하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엄마의 무릎이 아프더라도 편하게 호텔 바캉스며, 해외여행을 다 누릴 수 있다. 엄마의 삶에 여유가 생기고 건강도 챙길 수 있다. 엄마가 못 누리고 살았던 것들을 다 누리게 해 줄 수 있다.

KakaoTalk_20230917_230320405_12.jpg 엄마가 높은 곳에서 예쁜 풍경을 내려보는 걸 좋아하는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로 좋아하실 줄은 몰랐다.

세속적인 마음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평생 열심히 일해서 자식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주고 싶어 하는 부모 밑에서 부모가 부족함 없이 살았으면 좋겠는 자식이 나오는 법이다.


나는 결국 이 것이 엄마와 딸 사이의 사랑이라 생각한다.



keyword
이전 08화08. 밀가루와 함께하는 임신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