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입덧일기 10화

10. 선물 받은 사랑의 맛

임신을 하고 나서 바뀐 세상

by 김히읗
KakaoTalk_20231016_113643120.jpg 결혼식 이후, 다시 만나게 된 내 소중한 친구. 이번 에세이는 가족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언젠가는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더 쓰고 싶다.

작가들은 모두 몽상가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재료 삼아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글로 구현해 낸다. 중학생 때부터 내 글의 재료는 언제나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불안, 공포, 분노, 허무, 외로움. 서른이 되기 전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밝은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밝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언제나 내 안에 꽁꽁 숨겨두고 나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이며, 나를 괴롭히는 어두운 것들은 글로 서서 형체를 만들어 내 안에서 밀어내고 싶어 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누리는 행복들이 적은 양은 아니었지만, 나를 감싸고 있는 불온한 감정들은 너무나도 컸다. 결혼하기 전, 나는 언제나 머리맡에 식칼을 숨겨두고 자는 사람이었다. 자다가도 아파트 엘리베이터 소리에 놀라서 잠을 을 깨고, 별 것도 아닌 작은 것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비극을 상상했다.


그런 내가 임신을 하였다. 나는 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굳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자극적인 글들을 찾아보았다. 끊으려 해도 끊을 수가 없었다. 일부러 부정적인 뉴스들을 찾아보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누군가를 욕하는 글들을 읽었다. 어쩌겠는가.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내가 본 인터넷 세상 속 임산부들은 언제나 공격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임산부배려석에서는 배려는커녕 멸시를 받고 있었으며, 약자를 향한 폭행들도 많았다. 출산율이 바닥을 치닫는 세상이었지만 노키즈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지하철 안에서 아이들이 울 때마다 사람들은 욕을 했다. 아이를 배려해 주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여자의 인생은 변한다고. 아이 때문에 친구관계가 서서히 멀어지기도 하고, 아이를 챙기는 엄마와 아이를 싫어하는 친구가 싸우는 일도 있다 했다. 나는 사람들이 욕하는 엄마가 되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나를 옭아맸고, 친구들에게는 아이를 가진 죄인처럼 행동했다.


시댁은 어떠한가? 시짜가 들어간 것은 꼴도 보기 싫다는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가. 자신은 '시금치'도 먹지 않는다는 어떤 사람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내 시댁식구들에 대해 언제나 예민하게 굴었다. 아이를 낳게 되면, 시댁식구와는 어떻게 될까. 언제나 좋은 것은 자기네 식구를 닮았다 하고, 나쁜 것은 '외탁했구먼.'이라고 말하며 며느리들을 괴롭히던 나의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아이가 여자아이라면, 혹시라도 아이가 나의 안 좋은 점을 닮는다면, 시댁식구들이 나를 가만 안 두지 않을까.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시댁식구들이 나를 힘들게 하면 어떻게 하지?


나는 쓸데없는 고민을 너무나도 많이 했고, 그만큼 지쳐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온갖 비극적인 현실과는 다르게 임신을 한 뒤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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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해 보이는 아저씨가 말없이 자리를 양보해 주고, 모르는 할아버지가 애국자라고 꼭 예쁜 아기를 낳으라고 살갑게 말을 건네어주었다. 음식점에서 직원이 임산부에게 좋은 차라며 루이보스차 티백을 포장해서 선물로 주었다. 빵을 파는 아주머니께서 아기 선물이라며 빵을 하나 더 주셨다. 집 가까이에 있는 카페 앞을 지나가는데 사장님이 나오셔서는 순산하라며 레모네이드를 선물로 주셨다. 지나가는 임산부나 아기 엄마아빠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순산하세요'라는 인사를 받았다. 인터넷창을 끄고 밖으로 나왔을 때, 내가 만나게 된 세상은 생각보다 더 아름다웠다.


친구들은 내가 갚지 못할 선물들을 해주었다. 아기를 위한 선물을 해줄까, 널 위한 선물을 해줄까 물어보는 친구도 있었고, 무조건 널 위한 선물을 할 거라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준 친구도 있었다. 연락이 뜸하다가 내 결혼식 이후로 연락을 이어가게 된 친구에게 너무나도 큰 액수의 상품권을 받아 무안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기 태명이 뀰이라는 것을 듣고는 생각나서 샀다면서 생전 처음 보는 간식을 선물로 보내준 친구도 있었다. 그 마음이 너무 예뻐 아껴먹다가 결국 다 먹지 못하였다. 비혼, 비출산주의라는 친구들에게도 너무나도 많은 선물을 받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매번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매년 친구들 생일 때마다 조금씩 갚아야 하지 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있지만, 행복에 이자가 마치 복리처럼 붙어 아직까지 다 갚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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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30925_115231470_04.jpg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지만 가족들 그 누구도 먹지 않는 간장게장. 시엄마가 오로지 나를 위해 만들어 주신 간장게장은 내가 먹어본 음식 중 최고였다.

시댁은 어땠는가. 나는 임신 이후 시댁이란 말을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시댁식구, 시어머니, 시아버지. 모두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언어들이었고, 나는 그 언어가 가진 이미지가 싫었다. 시댁 대신 의정부집이라 부르게 되었고, 시어머니 대신 시엄마라 부르거나 때때로 어머님이나 엄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임신 전에 나는 시댁식구에게 참 못난 며느리였다. 매번 불안과 스트레스 때문에 식도염이랑 위염을 달고 살아서 제사 때마다 시댁 안방에 드러누워있지를 않나, 맨발로 자기 집 돌아다니는 게 싫다고 양말 신으라고 시부모님께 지랄을 하질 않나. 생각해 보면 정말 못난 며느리였는데, 어머님 아버님은 그때, 아니 그 이전부터 나를 딸처럼 여기고 계셨나 보다.


임신을 하고 나서 친정엄마는 오히려 내게 '나는 입덧을 하나도 안 했는데, 넌 이상하다.'라고 말하며 웃었고, 시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어떻게 입덧까지 나랑 똑같냐. 네가 고생이 많다.'라고 말씀하시고는 내가 좋아하거나 조금이라도 잘 먹는 음식이 있으면 수시로 해서 가져다주셨다. 나는 친정엄마가 해주는 음식보다 시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더 좋아했다.


'뱃속의 아이가 확실히 아빠를 닮았나 봐요. 어머님 음식을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까.'


나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어머님께 늘 맛있다 감사하다 말했고, 경상도 남자들과 살면서 그런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으신 어머님은 수줍어하며 좋아하셨다.


친구에게 받은 축의금과 선물을 다 기록해 두고, 그 값어치보다 더 큰 것을 돌려줘야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예의였고, 그들의 사랑에 대해 보답하는 방법이었다. 시댁식구들이 내게 주는 사랑보다 나는 더 큰 사랑을 드리고 싶었다. 나는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했고, 어머님이나 아버님에게 필요한 것이나 좋아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해드리려 노력했다. 때로는 쑥스러운 마음에 남편이 대신한 것이라고 말하며 어머님과 아버님에게 용돈이나 선물을 가져다 드릴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머님은 '저 무뚝뚝한 놈이 평생 이런 걸 챙기는 걸 못 봤다. 저 놈은 그런 것을 할 놈이 아니다.'라면서 내게 고맙다고 하셨다.


임신 이후 내가 주변에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남편이 아니라 시댁 보고 결혼을 했다는 말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언제나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다. 주기만 하는 사랑도, 받기만 하는 사랑도 건강한 사랑의 형태는 아니다. 사랑을 줬으면 어느 정도는 받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이고, 사랑을 받으면 어느 정도는 돌려줘야 하는 것이 예의다. 나는 도대체 내 친구들, 그리고 내 새로운 가족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돌려줘야 할지 늘 고민하고, 그들에게 조심하며 살고 있다.

KakaoTalk_20230917_232807451_07.jpg 입덧 때문에 고기를 잘 먹지 못하던 내가 먹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시엄마가 급하게 만들어주신 LA갈비와 갈비찜. 나는 세상에서 우리 시엄마 음식이 제일 맛있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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