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입덧일기 11화

11. 먹지 못한 홍어 무침 2kg과 영주 떡볶이

갑작스러운 양수 파수와 출산

by 김히읗
KakaoTalk_20231019_124037208.jpg 저 물건을 다시 사용할 날이 올까?

태명을 갑자기라 했어야 했나?

35주간의 임신기간 동안 내 모든 일상은 '갑자기' 펼쳐지곤 했다.


갑자기 생겨난 입덧에 새로운 걸 찾아 먹기도 하고, 평소에 먹던 것을 먹지 못하기도 했다.

입덧은 갑자기 사라졌다가 또 갑자기 나타났다 하며 35주 내내 반복되었다.


임신 35주 2일 차였던 그 가을날,

나는 갑자기 새콤한 홍어 무침이 먹고 싶었다. 그 길로 재래시장에 있는 반찬가게에 가서 홍어무침을 2kg이나 샀다. 투명한 플라스틱 병에 담기는 홍어무침을 보며 그렇게 침을 삼켰는데, 집에 오고 나니 입맛이 갑자기 떨어져 그 통을 김치냉장고 안에 넣어두었다. 저녁 무렵에는 입맛이 돌아오겠지 하면서 말이다.


유기농 과일과 야채가 들어있는 임산부 꾸러미가 배달 왔고, 나는 그 안에 들어있는 음식들을 정리했다.

부기를 빼주는 단호박과 계절보다 조금 이르게 나온 작은 귤을 냉장고에 넣으며 나는 '뀰'이라 이름 지었던 내 아이를 언제 만나게 될지 그려보았다.


아이를 만나게 되는 날을 상상하면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몰려왔다. 바로 전 날, 산부인과에 가서 아이의 머리가 많이 크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었다. 아이의 머리가 크고, 어깨가 넓어 자연분만으로 출산을 진행할 경우 아이의 쇄골이 부서지거나 산모의 골반이 부러지거나 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의사는 수술을 고려해 보라 했었다.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을까. 내게 출산과정은 공포 그 자체였다. 자연분만을 진행하다 내가 힘을 잘못 줘서 애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무통마취를 못하게 되거나 약 부작용이 나타나면 어쩌지. 피 뽑는 것도 무서워하는데 척수에 놓는 주사는 어떻게 맞고, 환부 봉합은 어떻게 견디지. 나는 아이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내가 겪게 될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고통들이 두려웠다.


두려움과 불안 때문이었을까. 식욕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시댁 식구들이 영주로 성묘를 다녀오면서 나와 남편이 좋아하는 가래떡 떡볶이를 사다 주었는데도 나는 단 한 입도 먹지 못했다.


그날 나는 쓰려오는 빈속을 물로 달래면서 늦게 잠에 들었다. 그 무렵의 나는 거의 2시간에 한 번씩 자궁에 눌린 방광을 비우기 위해 잠에서 깨곤 했고, 그날도 새벽 3시 무렵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에,


갑자기 양수가 터졌다.


그 순간 든 생각과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말이 같았다.


'아, 이놈의 임신 생활은 뭐 하나 예정대로 되는 게 없네 진짜.'


갑작스러운 상황들이 너무 자주 일어나다 보니 이제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남편을 깨웠고, 담담하게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어 현재 내 몸 상태를 이야기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그러고는 산부인과 의사의 지침에 따라 미리 싸둔 출산 가방을 가지고 산부인과를 향해 갔다.


아직도 이때를 생각하면 포지션의 'summer time'이 BGM으로 뇌내에서 재생이 된다. 남편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양수가 터진 산모를 데리고 산부인과로 가는 와중에 음악을 틀었고,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한산한 새벽 도로를 바라보았다.


낮까지만 하더라도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나는 생각보다 무던했다. 마치 게임 캐릭터가 퀘스트를 하면서 조금씩 레벨업이 되어가듯이, 임신 기간 중에 내 앞에 갑자기 등장하는 상황들을 이겨내며 나도 엄마가 될 준비가 어느 정도는 되어 있었다.

KakaoTalk_20231019_124210210.jpg 주사와 진통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마스크를 끼고 호흡을 하며 출산을 하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코로나가 심할 때 결혼과 임신 출산을 다 경험했다.

나는 갑자기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건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었다. 나는 담담하게 내가 해야 할 일들을 견뎌냈다. 수술용 링거 바늘을 꽂고, 진통을 겪고, 관장을 하고, 무통주사를 맞고, 무통주사를 제거하고, 촉진제를 맞고, 기억이 다 날아갈 정도로 최악의 진통을 겪고, 간호사들이 내 다리에 매달려 다리를 찢는 아픔을 견뎌내고, 이를 악물지 않으려고 소리를 지르고,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내 몸에서 빠져나오고 정신이 서서히 차려지는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회음부를 꿰매는 고통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의 피가 다 식다 못해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옆 병실에서도, 옆옆 병실에서도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알았다. 산모의 비명소리보다 더 크게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와 같은 병실에서 나온 내 아기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나를 진정시키려는 간호사와 의사의 말도 전혀 들리지 않고 계속 아기가 괜찮은지 내 아기만을 찾았다.


아기는 건강했다. 다만 특이하게도 전혀 울지 않고 눈을 뜨고 태어났을 뿐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의료진의 품에 안겨 깨끗한 물이 받아진 욕조로 향해갔다. 그곳에서 몸을 씻겨내며 첫울음을 터트렸고, 그 소리가 멀리 있던 내게는 들리지 않은 것이었다. 남편은 내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내가 시킨 대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씻는 장면을 카메라로 찍고 있었을 뿐이었다. 산모가 불안해하고 있다며 간호사가 씻긴 아기를 안고는 내게 데려와주었고, 눈을 뜨고는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건강한 아기를 보고 나서야 나는 안정된 호흡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 앞에 무슨 일들이 벌어질지. 아이를 낳고 난 바로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불안 없이 그저 내 냉장고 속 음식들만 걱정할 뿐이었다. 남편에게 이야기하여 냉장고에 있는 홍어무침과 과일, 야채들을 모두 시댁과 친정에 나눠주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를 낳자마자 입맛이 돌아 그 음식들이 그립긴 했지만, 오랜만에 속 편하게 병원식을 먹으며 친구들이랑 시시덕거리며 문자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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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 진행하던 식단일기에 올린 그 날의 흔적. 약기운 때문인지, 오랜만에 돌아온 식욕 덕인지 많이 들떠있었다.


나는 임신을 하고, 출산을 겪으며 내가 정말 많이 성장했다 생각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이라 느꼈고, 임신기간 내 무탈해서 다행이었고, 그만큼 출산 또한 무난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그냥 착각이었을 뿐이었다.


출산을 하면 다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했다. 아이의 건강도, 내 안위도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란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내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는 1막이 겨우 막을 내렸을 뿐이었다. 새롭게 시작되는 극은 더 다채로운 맛과 새로운 감정이 넘쳐나고, 모든 이야기들이 갑작스럽게, 정신없이 진행되리란 것을 그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 이후로 다시는 내가 홍어 무침을 사 먹을 수 없게 되리란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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