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 꼭 가야겠니? <4>
'천재의 조건은 요절이야.'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열아홉 살 때의 나와 친구들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천재들은 다 요절했어. 작품도 좋았겠지만 젊은 나이에 죽어서 천재 소리를 들은 거야. 스무 살 이전에 죽어야 요절이래. 우리 지금 쓰는 소설 아주 걸작으로 완성하고 깔끔하게 지금 죽으면 천재로 칭송받을 수 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낯부끄러운 과거이다. 철이 없어도 유분수지.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들었다면 뒷목을 잡고 억장이 와르르 무너졌을만한 이야기들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했다.
나랑 친구들이 했던 망언들은 흑역사가 되었지만,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누구나 한 번쯤은 하는 철없는 소리였다. 사춘기도 적절한 시기에 와야 하는 법이다. 우리의 말과 행동들은 어리다는 핑계 아래서 어느 정도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내가 기억력은 좋지 않지만 과거 내 흑역사는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 덕분에 청소년 학생들이 아무리 철없는 소리를 해도 나는 상관없다. 나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그저 웃으면서 다 들어줄 뿐이다.
그렇지만 열아홉 살 이하의 아이들이 하는 철없는 소리들 중에서도 몇 가지 조언을 덧붙이는 경우가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학생들이 흔하게 하는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쓰면 되는 거 아니에요? 내 글인데!'
'독자를 내가 왜 생각해야 해요? 위대한 작가들은 그런 거 생각 안 해요.'
'원래 천재가 쓴 작품은 보통사람들이 이해 못 하는 법이랬어요.'
결론을 먼저 말하겠다. 그러면 안 됩니다. 어릴 때 버릇을 잘 들여놓는 게 중요해요. 흑역사를 다 기억하는 어른이자 과거 글을 쓸 때 안 좋은 습관을 들였다가 지금까지 개고생 하는 꼰대로서 하는 말입니다. 입시에서는, 자신이 작가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글을 쓰면 안 됩니다.
오늘은 문예창작과를 지망하는 학생(혹은 작가지망생)이 흔히 하는 오해와 착각을 풀어주려 한다.
'작가' 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가?
밤늦은 시간, 아니 새벽. 모든 사람들이 잠든 그 시간에 홀로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는 모습?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책과 종이더미에 파묻혀서 폐인 같은 모습으로 글을 쓰는 모습?
밥보다도 술이랑 담배를 더 챙기고, 가난하게 지내면서 나중에는 폐결핵 같은 병을 앓는 모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작가에 대한 이미지는 화려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고독하고, 가난하고, 어둡고. 이런 이미지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요즘 들어서는 작가라고 하면 웹소설 작가나 드라마 작가나 스토리 작가 같은 직업들을 떠올릴 때가 많지만, 내가 학생일 때까지만 하더라도 작가라고 하면 오직 '순수문학 작가'만을 떠올렸다.)
학생들조차 '글은 혼자 써야 제맛이지.' '천재가 쓴 작품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지'라고 말하곤 한다.
나 어릴 때도 그랬다. 우리는 심지어 더 철이 없어서 '글은 혼자 쓰는 것이야. 그게 천재들이 하는 일이지.'라는 말을 해대며 마치 자신이 고독한 천재 예술가인양 굴었다.
극단적으로 생각해 보자.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나서 공감을 해주거나 '와 재밌게 읽었어요.' '너무 좋은 글이에요.' '작가님 진짜 금손인 듯.' 이런 반응을 해주길 원하는가. 아니면 '이번에 하차합니다.', '졸라 못쓰네.' '노잼.' 이런 부정적인 반응을 원하는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해주길 원할 것인가.
어린 학생들은 한 번쯤은 자신이 고독한 천재 예술가가 되기를 바란다. 나도 그랬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자.
요절해야 천재?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우리가 글을 쓰는 목적은 뭘까. 죽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우리는 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원한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길 원한다.
글은 혼자 쓰는 것이 아니다. 글은 작가가 쓰는 것이긴 하지만 결국 읽는 사람이 있어줘야 작품으로 완성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글을 쓰면서 독자를 유념해야 한다.
독자 눈치를 보며 글을 쓰라는 말인가? 아니다. 이게 어려운 지점이다.
독자를 유념하며 글을 쓰는 것과 독자의 눈치를 보며 독자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은 엄밀히 다른 문제이다.
문학이론에서는 작가가 독자를 유념해야 한다는 것을 다양한 관점에서 지적하고 있다.
장폴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구체적 독자’란 작가가 인식하고 충족시키어야 할 존재이며, 작가와 자유로운 응답이 가능한 존재라고 강조한다.
-장폴 사르트르(1998), 『문학이란 무엇인가』, 정명환 옮김. 민음사. p. 209 인용
작품을 읽어주는 존재인 독자 없이는 작품도, 작가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반면에 독자에게 작가는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독자가 자신의 작품을 읽기를, 그리고 독자의 읽기를 통해 자신의 작품이 완벽하게 완성되기를 유도한다.
-김희원(2019),「웹소설에 나타나는 독자참여연구-웹소설에 영향을 끼치는 독자의 유형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p.26 인용
대다수 글쓰기 연구자들은 ‘독자’가 글을 쓸 때 내용 생성에 도움을 주며, 글을 수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하였다. 작가들은 독자를 인식하며 글을 써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인지주의 글쓰기를 통해 글쓰기 과정을 연구한 린다 플라워(1998)는 인지주의 글쓰기에서 독자들을 인지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전략을 이야기한다. 어떠한 작가이든 독자에 관하여 알아야 글을 쓸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읽게 되는 대상이 누구인지, 그 대상이 텍스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능숙하게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읽는 대상에 관하여 알아야 한다는 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독자를 둘러싸고 있는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맥락과 수사적 상황을 작가가 아는 것이 글을 쓰는 데 있어 아이디어를 생성하거나, 수정하는데 도움을 주며, 독자와 상호작용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해 준다.
-김희원(2019),「웹소설에 나타나는 독자참여연구-웹소설에 영향을 끼치는 독자의 유형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p.27 인용
작가가 독자를 유념하며 글을 쓰면 더 좋은 글이 나온다는 연구 이론들은 있지만, 그냥 우리는 쉽게 생각해 보자.
내가 친구들 앞에서는 '천재는 요절해야 한다던데 좋은 소설 쓰고 그냥 빨리 죽어야지.'라는 말은 장난 삼아하더라도, 어른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친구들 앞에서는 욕도 하고 온갖 철없는 소리는 하는데 교장선생님이나 할아버지 앞에서 욕이나 철없는 소리를 할 수 있는가?
과연 내가 철없는 소리나 욕 혹은 그들이 듣기 불편할만한 소리들을 하면 어른들은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것이다. 독자를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른들이 불편한 이야기를 일부러 그들 앞에서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상황에 따라 말을 조심하고, 듣는(읽는) 사람의 마음을 고려한다는 것. 나는 이런 최소한의 공감과 배려가 작가에게는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입시에 맞춰 생각해 보자. 내가 대학교에 가서 쓰는 실기 글을 누가 볼까?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 아니다. 결국 그 글은 부모님 연배의 교수님들이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예창작과를 꿈꾸는 학생들이 실기장에 가서 쓰는 글의 독자는 결국 누구인가. 어른들이다. 내 글을 보는 독자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가? 적어도 '아, 어른들이 불편해하거나 모르거나 눈살 찌푸릴만한 이야기를 쓰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다시 강조하지만 독자를 유념하라는 것은 독자에게 무조건 다 맞춰서 글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내 글을 누가 읽을지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만 하더라도 글의 방향성이 잡히고 문장들이 정리되기 마련이다.
작가는 자기 스타일이 확실히 있어야 한다. 자기 주관, 자기 색깔, 자기 취향이 있어야 자기만의 글을 쓸 수 있는 법이다.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글을 쓴다 했을 때, 어린이가 읽는 글과 어른이 읽는 글의 주제는 같을까? 어린이가 읽는 글을 쓴다 하면 '산타가 등장하는 동화'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이 읽는 글을 쓴다 하면 '크리스마스에 사진을 예쁘게 찍는 법'이나 '여의도 더현대 주차팁' 같은 글이 나올 것이다.
독자의 모습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하더라도 작가의 본질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A란 사람이 원고지에 '크리스마스에 헤어지는 연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쓸 때, B라는 사람은 인스타그램에 '여의도 더현대랑 잠실 롯데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타운 비교해 보았습니다.' 이런 글을 쓸 수도 있다. 같은 '어른'독자를 위한 글이지만, 어떤 어른을 위해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는 작가 본인 스타일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예전이랑 다르게 요즘 글을 쓸 때는 독자를 더 쉽게 마주하기 마련이다. 웹소설을 쓸 때 독자가 쓰는 댓글들을 보게 되고,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글을 쓸 때도 '좋아요'라는 기능을 통해 독자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독자를 생각하라는 것은 글의 방향성을 정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글을 쓸 때 현실을 자각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또한 독자와 공감하는 글을 쓰는 작가의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받기 마련이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다. 혼자 고독하게 자기만 만족하는 글을 쓰다가 잊히느냐, 혹은 자신도 만족하면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쓰느냐. 이건 내가 강요할 수 없는 선택지이다.
그건 결국 작가 본인이 선택할 문제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