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 꼭 가야겠니? <6화>
학창 시절 내 장점은 스피드였다.
달리기는 100미터에 30초대가 나오는 주제에, 3000자 글 한 편은 1시간 안에 퇴고까지 여러 번 해내는 것이 내 특기였다. 덕분에 나는 '당일 발표 백일장'에서 언제나 선방을 거두는 편이었다. 실기나 백일장 시간이 촉박하거나, 글제가 어려울수록 내게는 유리했다. 내가 합격한 대학교의 실기 시험도, 내가 탄 백일장 상들도 어찌 보면 다 글을 빠르게, 그리고 남들과는 다르게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내게 글을 빠르게, 그러면서도 특이한 내용으로 완성할 수 있는 방법을 자주 묻고는 했다. 사람들마다 다르지만 나는 학생들에게 '꾸준히 연습해야 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자기가 남들보다 잘 쓸 수 있는 소재를 많이 만들어두라 조언해주곤 했다.
글과 요리는 비슷하다.
재료 선정부터 잘되면 요리법이 조금 미숙하더라도 괜찮은 요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글을 쓸 때 어떤 재료(소재)를 찾아야 하는가?
이건 내가 글을 쓸 당시에 잘 통하던 방법 같기도 하지만, 지금도 나름 쓸만한 방법이다.
내가 문예창작과 입시를 준비할 때 당시는 2000년대 후반이었고, 그때는 스마트폰이 보급화되지 않은 시대였다. 글을 쓰다 궁금한 게 생긴다고 바로 찾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으며, 인터넷 검색이 보편화되어 있긴 해도 무언가에 대해서 정확한 지식을 알려고 한다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뒤적거리던 그런 시대였다.
그 당시 나와 내 친구들은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야가 하나씩은 있었다. 한 친구는 영국 문학과 문화를 너무 좋아해서 스스로 많은 책을 찾아 읽었고, 영국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써서 공모전에서 상을 수상할 때 한 작가에게 영국에서 살다왔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영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누구는 아이돌이었고, 누구는 일본이었고, 누구는 스포츠였고, 누구는 동네와 학교에 퍼진 가십거리들을 잘 알았다.
각자 좋아하는 것이 있었고, 잘 쓰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 자신에게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야가 있다면 백일장이나 실기에서도 굉장히 잘 통한다.
글제가 나왔을 때, 자신이 잘 아는 분야를 접목시키면 남들과는 다르면서도 다채롭고 깊이가 있는 글이 나오기 마련이다. 어려울 것 없다. 나만의 특별한 썰이라도 좋다. 글제를 받았을 때, 너무 흔한 것만 생각난다고 울상 짓지 말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잘 아는 것을 생각해 보자. 쓰는 사람도 글을 즐겁게 쓸 수 있고, 완성된 글도 다른 사람이기 보기에 좋을 것이다.
청소년다운건 언제나 잘 통한다. 문예창작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청소년이거나 청소년 시기를 거쳐 갓 성인이 된 존재들이다. 그들만큼이나 청소년과 가까운 존재도 없다.
자신이 가장 잘 알기에 잘 쓸 수 있는 인물이 청소년이기도 하며, 독자인 교수님이나 심사위원들 또한 한 때 청소년이었고 그 시기를 거쳐왔기에 공감을 하며 읽을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또한 청소년은 그 누구보다 문학에 잘 어울리는 인물상이다. 다채로운 감정을 가졌으며, 세상 풍파에 맞서 싸울 힘은 있으나 방법은 모르는 미숙한 존재들. 청소년인 주인공들이 이야기(세상) 속에서 마주하는 사건은 어른에 비하면 더 극적으로 느껴지고, 감정의 변화와 갈등 또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요소 때문인지, 실기나 백일장에서는 청소년 인물과 관련된 소재들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글을 쓰는 학생이라면 평소 청소년에 관한 소재들을 평소 관심 있게 봐두고 머릿속에 저장해 두는 것을 추천한다.
다문화가정, 학교폭력, 짝사랑이나 첫사랑, 동성애, 친구관계, 가족문제, 성적문제, 진로문제 등등
청소년을 소재로 쓸 수 있는 주제는 아주 많다.
개인적인 추천이지만 대산청소년문학상 수상집을 살펴보는 것도 추천한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나는 꼰대다. 이럴 때마다 확실히 느낀다. 나는 이미 꼰대가 되어버렸다.
요즘 세상은 글쓰기 참 좋다. 라떼는 소재를 잡고, 글을 쓰려고 한다면 현장을 뛰어다니며 취재를 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보고 몸으로 뛰었어야 했다. 그런데 요즘 애들은 집 안에서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
유튜브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에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과제를 내주었던 적이 있다. 평소 책을 읽느니 죽고 말겠다고 말하고, 독후감은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으로 써오던 학생이 웬일로 독후감도 잘 써오고 발표도 잘한다 싶어서 물어봤더니만 대답하더라. 유튜브에서 책을 요약해서 설명해 주는 영상을 봤다고 말이다.
입 안에서 쓴 맛이 감돌았다. 학생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글쓰기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학생은 책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영국을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이가 영국이 배경인 해리포터를 읽고 영국 문화를 습득하고, 영국에 관심을 갖게 된다. 띄어쓰기나 맞춤법을 잘 못하고 문장력이 없던 학생들은 여러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문장 쓰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들은 전쟁터가 배경인 이야기를 보며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배운다. 책을 읽고, 간접경험을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요즘은 책 보다도 더 쉽게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세대기도 하다. 책을 극도로 싫어하던 학생이 멋진 독후감을 써서 내게 되는 것처럼. 스마트폰 이후의 청소년 세대는 '유튜브', '스마트폰 검색', '인스타그램', '쇼츠' 이런 것들이 '책'보다 익숙한 세대이다.
학생에게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하고 권장하긴 하지만, 극도로 싫다 하면 어쩌겠는가.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지. 단언컨대 MZ라고 불리는 세대는 그냥 문식성(리터러시)이 아닌, 미디어 리터러시도 같이 배워야 하는 세대다. 어찌 보면 참 좋은 세대 아닌가. 가만히 앉아서 내 어린 시절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세대다.
글을 쓸 때 경험은 정말 중요한 요소이다. 직접경험만이 경험이 아니다. 간접경험 또한 좋은 경험이다.
글을 쓰고자 하는 학생들이라면 쇼츠나 유튜브를 볼 때 아무 생각 없이 보지 않길 바란다. 어떻게든 소재를 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아무 생각 없이 춤을 추는 챌린지 영상을 본다 하더라도, 그 춤을 추는 영상을 올리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보거나, 쇼츠를 올리는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해 보거나, 쇼츠를 통해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거나, 쇼츠 영상을 통해 삶이 피폐해진 청소년의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짧은 영상을 보는 것은 내게 하나의 경험이고, 그 경험으로부터 여러 생각을 펼치면서 이야깃거리를 찾아 나서면서 탐구하는 것은 좋은 간접경험이 된다.
물론 짧고 자극적인 유튜브나 쇼츠 영상보다는 잘 만들어진 광고 한 편, 혹은 드라마나 영화나 만화 같은 하나의 긴 영상 작품들을 분석해 보는 것이 글을 쓰는 데는 더 좋고, 책을 읽는 것이 제일 많이 도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세대를 이해해야지. 여기에 더 어울리는 교육법을 찾아야지.
무엇이든 '생각'을 하고 행동한다면 자신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길 바란다. 심지어 어이없는 쇼츠 영상을 볼 때조차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