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히읗 Dec 20. 2023

청소년과 사상에 관하여

문예창작과 꼭 가야겠니? <7화>

오늘 내가 할 이야기는 사상에 대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해야할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 아주 불편한 이야기가 될 테지만, 그저 학생들을 지도하는 입장의 의견임을 밝혀둔다.


2016년도 이후, 많은 학생들이 내게 '페미니즘'에 대해 물어봤다. 


'생활기록부에 페미니즘 관련 동아리 활동이나 독서활동이 있으면 대학교에서 뽑아주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가요?'


'숏컷을 하고 가면 교수님들이 싫어한다는데 사실인가요?'


'여고 출신은 여대 말고는 못 간다는데 사실인가요?'


내가 여기에서 '사실'이다 아니다. 무엇이 '정답'인가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나는 그저 학생들에게 내가 보고 느끼고 들은 것, 그리고 아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뿐이다. 그리고 언제나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만의 정답을 찾길 바랄 뿐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옛날 내가 고등학생일 때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된다. 


'A사에서 나온 신문을 읽어야 문예창작과에 합격할 수 있데.'


'이번에 선배가 ㄱ대학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선배가 쓴 글이나 백일장에서 탄 상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선배 고향에 대한 질문만 했다고 하더라고.'


2000년대는 이런 시대였다. 정치갈등과 지역갈등이 대학교 문예창작과 입시를 코앞에 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문학 이론 강의를 하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특정 신문사를 언급하며 그 신문사의 신문만 읽도록 시키고,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특정 신문사의 신문만 읽고 다른 정치 성향의 신문사 기사들은 비판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가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부모님이랑 정치적인 싸움을 벌이고는 자기 부모를 멍청한 사람인 양 자신은 아주 깨인 사람인 양 이야기하고 다녔고, 주변에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성향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을 비난하며 계몽시키려 노력했다. 우리가 가장 올바르고 깨어있는 사람인 양 행동했다. 겨우 열아홉 정도밖에 안 되었으면서 말이다. 


나와 친구들이 존경하는 인물도 다 비슷했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고,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서울대 미학과를 나온 그 교수가 우리 모두의 우상이었다.  아니, 그 교수가 우리 우상이어야만 했다. 당시 제일 유명하던 예술학교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그 교수가 쓴 미학에 관한 책을 전부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랑 우리가 꿈꾸던 대학교의 문예창작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쓴 책을 면접에서 꼭 언급해야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우리는 선생들도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미학책을 가방에 넣으며, 마치 우리가 정말 똑똑한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문예창작과에 가기 위해선 이런 정치 성향을 가져야 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선 진보적이어야 한다.'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갖기 위해선 이런 사람을 존경해야 하고, 이런 책을 읽고, 이런 신문을 읽어야 한다.'


먼저 대학을 간 선배들이, 수업을 하는 선생님들이 이런 말을 했다. 어렸던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그 말을 받아들였고, 마치 세뇌당해 가는 것처럼 우리의 정치색을 굳건하게 만들어갔다.


자랑이지만 그때 당시 나는 또래에 비해 화려한 백일장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문예창작과 수시 입시에는 자신이 있었다. 

나 또한 선생님들이 읽으라는 신문을 읽고, 책을 읽고, 존경하는 인물을 만들었다. 대학교 수시 면접을 위해서 모든 대답을 준비했다. 나는 백일장 상을 많이 탄 실력 있는 학생이며,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인 시선을 가진 올바른 학생이었다. 나는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로 대학 입시를 치루러 갔다. 


아직까지 난 면접장에서 만났던 교수의 질문을 기억한다.


'너 좌빨이냐?'


잘못걸리고 말았다. 대부분의 문예창작과 교수가 진보적일 뿐, 모든 교수가 진보적이지 않다는 것을 어린 나는 모르고 있었다. 흑 아니면 백. 흑이 옳으면 백은 틀렸다.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저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대학교 수시에서 모두 다 떨어지고 말았다.


어떤 세대나 갈등은 존재한다.


나의 부모 세대 때는 '지역갈등'이 주였고, 우리 때는 '정치갈등'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학생들과 젊은 세대들에게는 '성별갈등'이 주일 것이다.


갈등은 곧 사상검증으로 이어진다. 서로 자신의 지역색이 어떤지, 정치색이 어떤지 핏대 세워가며 이야기하고 자신과 반대가 되는 성향의 사람들을 찾아내어 공격한다. 자신의 사상만이 옳다 생각하며 다른 사상은 짓밟으려 한다.


페미니즘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는 대학 수업 내내 페미니즘 관련 수업을 들었고, 페미니즘이 사회에 두각을 나타내는 과정을 보았고, 페미니즘이 갈등의 요소가 되는 것을 보았다.


사상은 나쁘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사상에 몰두하는 사람은 실수를 하기 쉽다.


나는 페미니즘이 좋은 사상이라 하여도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강요하지 않는다.

열정이 넘치고,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해야 하는 학생들의 머리와 마음속을 단 한 가지 사상을 채운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너무 자신을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지 말라고. 


나는 '페미니스트'다.

나는 '아나키스트'다.

나는 '진보주의자'다.


한 마디로 자신을 정의하는 것은 멋있고 편한 일로 보인다. 나 또한 그랬다. 남들과 다른 나의 성향을 찾아 나만의 색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이 것도 옳고, 저 것도 옳다는 식의 우유부단한 행동은 피해야 한다 생각했다. 흑 아니면 백. 회색분자는 멍청하거나 비겁한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와서 나는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 자신을 하나의 정의로 규정짓고, 틀에 가두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사상도 여러 가지 갈래가 있다. 급진적인 페미니즘이 있고, 에코페미니즘도 있다. 한국에서의 페미니즘과 미국에서의 페미니즘이 다르다. 사상도 하나의 단어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래서는 안된다.


삶의 형태도 다양하고, 사람도 다양하다.

열아홉 살의 청소년이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인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생각하면서 우리들은 스스로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성장하기도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자신을 틀 안에 가두어버리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적고, 잃을 것이 많아진다.


'생활기록부에 페미니즘 관련 동아리 활동이나 독서활동이 있으면 대학교에서 뽑아주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가요?'


'숏컷을 하고 가면 교수님들이 싫어한다는데 사실인가요?'


'여고 출신은 여대 말고는 못 간다는데 사실인가요?'


내가 첫 문단에서 언급했던 이 질문들에 대해 아니다 맞다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대신 나는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목표가 확실하다면, 그 목표가 대학이나 직업(직장)이 된다면,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하는 것이 좋다. 많은 사례를 보지 않았는가. 때로는 사회 속의 나를 연출하는 것도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학생들이 하는 선택은 언제나 같다. 


그러기에 나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무조건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시작한다. 이런 말을 하게 되어서 내가 다 미안하다고. 네가 가지고 있는 사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어찌보면 내가 하는 말이 학생이 믿고 있던 사상을 부정하거나, 학생의 세상을 흔들어놓는 이야기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속상해할 학생에게 사과를 한다.


젊고 어린이들에게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씁쓸해지는 내 마음을 과연 누가 알까.

그렇지만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건 아무도 틀린 것이 아니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시간이 지나고보면 느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글을 읽고, 많은 일들을 겪다보면 알게될 것이다. 내가 목놓아 외치던 어떠한 사상을 잠시 부드럽게 다듬어 말하거나 숨기는 것이 결국은 내가 다른 사람과 사상을 만나고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를 보여주는 것은 내 실력이나 능력에 관한 것이 되는 것이 좋다.

사상이나 성향이나 취향과 같은 것이 '나를 평가 내리는 사람'이나 '나와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사람' 혹은 '내게 돈이나 학교 합격과 같은 이득을 줄 수 있는 사람'과 다른 성향을 갖게 된다면 내게 좋을 요소는 하나도 없다.  


사회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기업이나 타인의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친구들 사이의 나와 직장에서의 나는 다르다. 가족들 사이의 나와 학교에서의 나 또한 다르다. 청소년들이 이 것에 대해 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제일 좋은 것은 사람의 사상 하나로 그 사람의 실력이나 능력이 평가되지 않는 세상이다. 개인 SNS에 적은 자신의 사상에 관한 이야기 가지고 그 사람이 이룬 업적이 무시당하거나 비난당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성별 갈등 없이, 성별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 없이 사람 그 자체를 바라보고 인정하는 사회가 좋다.


나는 늘 학생들에게 오늘 글과 같은 이야기를 길게 해 준다. 학생들이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않을지는 잘 모른다. 다만, 다음 세대를 이어갈 그 아이들이 내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기억해 준다면 다음 세대는 조금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이전 06화 학교 혹은 주변에서 소재를 찾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