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 꼭 가야겠니? <8화>
"선생님은 몇 번 찍으셨어요?"
스무 살부터 과외를 했었다. 대학원에 간 다음부터는 모교에 글쓰기, 문학이론 강사로 출강을 나갔었다. 수업을 하는 동안 수많은 선거들이 나를 지나갔고, 그때마다 학생들은 내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우리나라는 비밀투표가 원칙이야."
초등학교 때 안 배웠냐고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넘어가려 해도, 학생들은 끈질겼다.
쌤은 1번 뽑을 거 같아. 야, 그건 욕이거든? 2번 뽑을 거 같아. 아냐 쌤이라면 3번이나 4번이지.
끝까지 대답해주지 않는 나를 두고 자신들의 의견을 펼치던 학생들은 이내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한다. 아직 투표권도 없는 학생들이 웬만한 어른들보다 더 지저분한 정치싸움을 하곤 했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잡담을 듣다 보면 나는 학생들의 부모님이 몇 번을 뽑았는지,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어느 당을 지지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학창 시절 선생님들에게 정치색을 주입당했다.
어떤 신문사 신문을 읽어야 하는지, 어떤 정치인의 자서전을 읽고, 어떤 정당을 지지해야 하는지.
가족들은 학교 선생님과 정반대의 정치색을 가지고 있었다.
뉴스에서 특정 정당의 정치인이 나올 때마다 욕을 했고, 내가 처음 선거를 하러 가는 날에는 굳이 같이 가자며 따라나서서는 내가 찍은 표를 감시하려고 하셨다.
우리 세대는 이런 세대였다. 어른들의 정치색이 아주 강하고, 그 정치색을 자신의 제자나 자녀에게 강요하던 세대. 이런 강압적인 정치교육의 반발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세대의 선거율은 현저히 떨어진다.
학생들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나는 선거권을 가진 어른이고 학생들은 아직 선거권을 가지지 못한 존재이다. 곧 투표를 하게 될 어린 새싹들에게 잘못된 정치의식을 심어주면 안 된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정치색을 주입당했던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선거를 할 때마다 '누구를 뽑아야 하나.' 늘 주저하고는 했다.
학생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학생들의 정치색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만,
청소년들은 윗세대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보다 반발을 하는 것을 즐겨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나 선생이 정치색을 주입할 경우,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곤 했다. 내가 만났던 청소년들 대부분 인터넷 커뮤니티에 의해 자신의 정치색을 표현하곤 했다.
위험했다.
저번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상도, 정치색도, 너무 빠르게 하나로 결정해 버리면 좋을 게 없다.
내게 누구를 뽑았는지 묻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한참 자신의 정치색을 표현하며 싸우고 난 뒤에,
나는 두 가지를 이야기해주곤 했다.
1. 어른이 되면 투표는 무조건 해야 한다.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다. 자신의 권리를 먼저 져버리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뽑을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말이야.'
시니컬하게 말하면서 선거장에 가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꼭 이렇게 말한 애들이 나중에 가서 정치인 욕을 한다.
욕을 할 권리는 투표권을 행사한 사람에게 있다. 정치에 관심이 있거나, 이 나라에 살아가고 있거나, 세상이 바뀌길 바라거나, 혹은 그냥 정치색을 표하고 욕을 하고 싶거나. 무조건 투표를 해야 한다.
'진짜 뽑을 사람이 없는데 어떡해 그럼.'
'내 표 하나로 뭐가 바뀌겠어.'
무효표도 하나의 표다. 그리고 그것조차도 의견표력이 된다. 정말 뽑을 정치인이 없다는 그런 의견이 된다. 표 하나는 크게 효력이 없을지는 몰라도 그 표 하나하나가 모여서 거대한 의견이 되는 것이다. 마치 촛불시위 때처럼 말이다.
최선을 위한 투표가 가장 좋겠지만 때로는 최악을 피하고 차악을 선택하기 위해서라도 투표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내가 지지했던 사람이 당선되지 않는다 하여 실망하지 마라. 적어도 내가 무슨 표를 던지든, 투표를 했다면 나는 우리나라가 '최악'으로 가는 것을 막는 일에 동참하였던 것일 수도 있다.
2. 지금 어떤 정당을 지지할 것인지, 자신의 정치색을 미리 정하지 마라.
투표를 할 때는 사람을 보고 뽑는 것이 좋다.
학생들은 내게 묻는다. 어떤 정당을 지지하냐고. 나는 대답한다. 딱히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그렇다면 투표를 할 때 누구를 뽑느냐 물어보면 나는 대답한다. 그때마다 달라진다고.
투표를 하는 본질적인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나 대신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당과 야당으로 나눠지는 특정 정당을 밀어주기 위한 투표를 주로 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잘 봐야 한다.
내 경우는 투표 전에 날을 잡아서 투표에 출마한 사람들의 이력을 찾아본다.
특히 범죄이력을 주로 보는데, 특정 시기에 있었던 폭력 이력은 예외처리를 하기도 한다(운동권이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투표를 할 때 소거법을 사용한다.
범죄이력만 찾아보는데도 기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결국 무효표를 던지고 오는 날도 많았다.
그다음으로는 공약을 본다.
어린 시절 반장선거를 할 때도 반장으로 나온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그다음에 공약을 듣지 않았는가. 엇비슷한 공약이긴 하지만 '현실 가능한 공약'인지, '현실 가능하더라도 공약을 시행하게 되면 세금과 같이 국민에게 주는 부담이나 피해는 어떤 것이 나타나는지' 이런 요소들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두 가지를 다 통과했거나, 혹은 통과하지 못했다면
전체적으로 투표에 출마한 사람들을 본다.
어떤 사람이 되면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인지를 보고, '최악'이 당선되지 않도록 '차악'이나 '차선'에 표를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지지하는 정당을 미리 정해버리면, 세세한 것을 보지 못하고 결국은 안 좋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것은 투표를 포기하는 방향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나 나라의 미래를 보기보다는 그저 정당에만 집중하여 편협한 시선으로 투표를 진행하게 될 수도 있다.
지난 글부터 강조하는 것이지만, 학생들이 부디 자신을 하나의 '색'과 '틀'안에 가두지 않길 바라며, 사람들을 바라보며 성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