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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히읗 Jan 03. 2024

장원과 낙방 그 사이에서 정신 차리기

문예창작과 꼭 가야겠니? <9화>

어린 시절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꿈이 작가인 아이는 아니었다.


중학생 시절 내가 백일장에 나가는 이유는 부수적인 것들 때문이었다. 학교 수업을 합법적으로 빠질 수 있었고, 맛이 없는 급식대신 선생님이 사주시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을 수 있었으며, 상을 타기라도 하면 문화상품권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런 나에게 백일장은 그냥 즐거운 시간이었다.


처음 전국 백일장에 나갔던 날이 기억에 새록새록하다. 학교를 빠지고, 할아버지 손을 잡고 혜화역을 향해 갔다. 야외에서 진행되던 그 백일장은 동네에서 하던 작은 백일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마로니에 공원을 가득 매웠다. 이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내가 상을 탈 수 있을까? 나는 글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그냥 학교나 동네 백일장만 다니는 촌뜨기였다. 긴장을 하며 몇 번이나 글을 고쳐가며 썼고, 떨리는 마음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백일장의 결과를 기다렸다.


장원이었다. 


할아버지도, 가족들도 많이 기뻐했다. 처음으로 큰 상금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학교 신문에 내 이름이 나왔고, 전교생이 다 보는 앞에서 시상식을 다시 했다.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모두 다 내 얼굴과 이름을 알게 되었다. 


백일장에서 처음 장원을 하고, 나는 사람들에게 글에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내 장래희망은 작가로 되었다.


나는 장원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등단을 하거나 큰 상을 타는 것은 글에 악영향을 미친다. 


비극은 위에서 아래로 추락할 때 생기는 것이다. 거지가 어제와 똑같이 배고프고 불행한 하루를 산다는 것이 비극이 아니다. 왕이나 귀족이 일련의 사건으로 인하여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끊임없이 추락하는 것이 비극이다. 


처음 전국 백일장에서 장원을 탔던 내게, 글을 쓰는 모든 일상이 다 비극이었다.

매일 나가던 동네 백일장에서 상을 타지 못했던 날이었다. 교무실에서 교사들의 절반이 나를 천재라고 말하고, 절반은 나를 그저 운 좋은 애라고 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글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동네 백일장에서 친한 친구가 나보다 높은 순위의 상을 탄 날이었다. 나는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안양예고 입학시험에서 떨어졌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글을 쓰고자 했으나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결국 정신과 신세를 지게 되었다.


내 모든 일상들이 '장원을 했던 그날'보다 못했다. 나는 수도 없이 실패를 경험했고, 그때마다 나를 계속 깎아내렸다. 나는 병원 신세를 계속 져야 할 정도로 많이 아팠고, 울고 절망했던 날을 셀 수가 없었다.


나는 다른 학생들보다 많이 느렸다.

안양예고 편입을 하며 글을 다른 동기들보다 늦게 배우기 시작했고, '내가 장원을 했던 앤 데'라는 오만에 빠져서 지식이나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편협한 시선을 가지고, 내가 스스로 만든 틀 안에 나를 가두면서 나는 더디게 성장해 갔고, 그만큼 내 글도 퇴보했다.


학생들은 백일장 상 하나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전국 규모의 이름 있는 백일장에서 3등 안의 상을 타면 문예특기자 자격이 주어지기도 하고, 대학교 백일장에서 장원이라도 하면 그 대학교 문예창작과에는 장학금을 받고 들어갈 수도 있다. 차하(3등 상)를 20개 타는 것보다 장원(1등 상)을 1개 타는 게 더 좋다는 이야기도 있다. 


문예창작과를 꿈꾸는 학생들은 언제나 백일장에서 큰 상을 타는 것을 꿈꾸었다.


글을 쓴 학생들은 모두가 자신의 글을 사랑했고, 자신이 있었다. 그러기에 누구나 다 장원을 꿈꾸었다. 하지만 장원은 언제나 한 명뿐이었고, 셀 수 없이 많은 낙방들이 있어야만 했다.


백일장 심사가 끝난 뒤에는 심사기준이 무엇이었는지 심사위원(보통 작가나 교수)이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지만 그 기준은 언제나 추상적이고 모호했다. 기준을 듣다 보면 내 글이 꼭 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백일장 심사를 하는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학생들은 아무도 모른다. 학생들이 알게 되는 것은 내가 고뇌하며 열심히 쓴 글이 상을 탔는가 떨어졌는가 하는 결과뿐이다. 결과가 나온 다음, 소수의 학생은 기뻐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낙방의 고배를 삼킨다. 그러고는 생각한다.


'잘 쓴 것 같은데, 왜 떨어졌지?'


열심히 쓴 글이 떨어지기도 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쓴 글이 상을 타기도 한다. 학생들은, 심지어 작가나 선생들도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하기는 힘들다. 장원을 타는 것도, 낙방을 하는 것도 보이지 않는 타인의 평가로 이루어진다. 아무도 모르고 납득하기 힘든 기준에 의해 학생들은 울고 웃는다.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축하한다. 분명 장원을 타고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행복하고, 내가 정말 글을 잘 쓰는 것 같고, 내가 최고인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나랑 같이 글을 쓰던 친구들이 하찮게 보일 수도 있고, 내 글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선생님이나 동료들이 고까워보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원을 한 학생은 몇백 명이나 되는 학생들, 심지어 글을 쓴다는 애들 중에서 내가 1등을 한 사람이다. 우쭐해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 백일장이 네 인생 마지막 백일장이라면 기쁨에 취해 있어도 된다. 그렇게 살아라.

계속 글을 쓸 것이고, 다음 대회나 다음 작품을 준비할 것이라면 '장원'이라는 타이틀을 머릿속에서 빨리 지우는 것이 좋다. 


그 많던 '최연소' 등단자, '최연소' 시인, '최연소' 소설가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는가? 아니, 하물며. 지금 글을 쓰고 있기는 한가?


일찍 높은 상을 받거나 등단을 하게 되는 것은 좋지가 않다. 내가 그랬다. 큰 상을 받았다는 도취감에 취해 나는 공부를 게을리했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내가 최고인 양 자만심에 가득 차서 말도 안 되는 글들을 썼다. 그 시간을 잘 활용했더라면, 지금 내 모습은 어땠을까. 훨씬 더 좋은 글을 많이 쓰지 않았을까. 나는 아직까지도 오만했던 과거를 후회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만화 '라면 요리왕' 중 발췌

백일장에서 낙방을 한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상을 타지 못하고, 낙방이 계속되면 주눅 드는 것이 당연하다. 

이 세 가지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1. 글 한 편을 시간 내에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백일장에서 글 한 편을 제대로 써서 낸 것만 해도 나는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해 보도록 하자.


2. 예술작품은 취향을 타기 마련이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고흐의 작품을 사랑하지만, 고흐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작품에 대해 좋은 평가를 듣지 못했다. 소설도, 시도 마찬가지다. 시기를 잘못 타고나서 혹은 나와 코드가 잘 맞지 않는 평가자를 만나서 내 작품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자. 그러고 낙방의 기운을 훌훌 털어내고 다시 '내가 사랑하는 글'을 써보자.


3. 정신을 다잡고 꾸준히 쓰기만 해도 중간 이상을 갈 수 있다. 결국 꾸준히 노력하며 서서히 성장하고, 오래 버티는 사람이 승리하기 마련이다. 


간혹 백일장에 가서 '자기 스타일'의 글을 쓰고 오는 학생들이 있다. 백일장 스타일에 맞지 않는, 오히려 웹소설이나 장르소설에 어울릴 법한 소재와 주제를 쓰는 학생들은 낙방의 고배를 더 자주 마시게 된다. 그런 학생들에게 난 이야기한다. 상을 타고 싶으면 '평가자'의 기준을 잘 생각해 보고 쓰라고 말이다. 자기 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나는 꾸준히, 끝까지 가보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어렸을 때, 그때는 '순수문학'이 가장 가치 있는 문학으로 평가받던 시대였다. 상업적인 작가들은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곤 했다. 특히 '귀여니'작가가 그러했다. 책 읽기를 싫어하던 학생들이 꾸준히 책을 읽게 만들고, OSMU라는 말이 익숙하지도 않던 시대에 소설과 영화화를 모두 성공시킨 그 작가. 순수문학을 하는 작가들은 모두가 그 작가를 무시했다. 문예창작과 수업에서는 언제나 귀여니의 문장과 글을 욕하였다. 


시간이 지난 지금 한 번 생각해 보자. 귀여니의 작품이 욕할 요소만 가득하고 문학적인 요소가 부족한 상업 소설인가? 아니다. 지금 다시 보면 '캐릭터'와 '연출'에 두각을 보이는 천재적인 학생의 글이다. 웹소설이 흥행하고 있는 이 시대에서 귀여니는 인터넷 소설의 조상이라 칭송받을만하다. 


귀여니는 많은 베스트셀러를 냈고,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그때 귀여니를 욕하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계속 써라. 결국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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