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놓고, 나는 급하게 집 앞 마트를 향해 갔다. 마트를 향해 걸어가는 내내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무슨 말이야?'
'그냥 사 먹으면 안 돼?'
'만두 만드는 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건 줄 알아?'
'만두 만들어본 적은 있어?'
집에서 만두 만들기 결사반대를 외치는 남편의 문자를 무시하고 슈퍼마켓으로 들어갔다. 나도 다 안다. 만두를 만들어본 적은 없지만 할머니가 만드는 것을 본 적은 있다. 나는 남편보다 요리를 못하기에 분명 모든 귀찮은 일은 남편의 차지가 될 것이었다. 만두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거보다 사 먹는 게 편하다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지금 당장 우리 집에서 만들던 '이북식 손만두'가 먹고 싶었는걸.
마지막으로 친정에서 만두를 만들었던 것이 언제였을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부터는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진남포'였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 가까이 살았고, 자연스럽게 이북식 음식들을 먹으면서 컸다. 어릴 때는 내가 먹는 음식이 이북식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어느 집이나 꿩고기를 먹는 줄 알고 있었고, 순대와 만두에는 당연히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고향이 이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생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주제로 글짓기를 할 때였다. 엄마가 전해준 할아버지의 고향 이야기는 담백했다. 전쟁이 터지자 새어머니와 동생들을 이끌고 부산으로 피난을 오고, 피난길에 전 재산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같이 피난 온 친구랑 가족들과 함께 다시 재산을 일궈 나가고, 그렇게 서울에 각자 재주를 살린 가게를 세우면서 자리 잡게 된 이야기. 우리 집에서 묵묵히 만들어오던 이북식 손만두처럼 그냥 평범하고 심심한 맛의 이야기였다.
어린아이들은 모르는 법이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맛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말이다. 별거 아닌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재미가 없어서 괜히 '할아버지는 고향을 그리워하셨다.'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눈물을 글썽이셨다.' '나도 할아버지의 고향에 가고 싶어졌다. 다시는 못 갈 그곳에.' 따위의 문장을 넣으며 글을 자극적으로 쓰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때 나는 짜고, 달고, 맵고, 아주 자극적인 맛이 최고라 생각하던 어린애였다.
어른이 되면 집에서 늘상 먹던, 그래서 때로는 지겨워하던 그 맛이 갑자기 끌리는 이유가 왜일까.
스마트폰으로 아무리 레시피를 찾아봐도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 만두와 똑같아 보이는 만두가 없었다. 할아버지 집에서부터 내려오던 손맛이었다. 같은 고향 출신인 할아버지 친구분 집에서 먹는 만두도 미묘하게 맛이 달랐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요리법이란 으레 그런 법 아닌가. 같은 지역에서 만들어진 음식이더라도 우리 집은 간장으로 양념을 하고, 옆집은 소금으로 간을 치고. 그렇게 미묘하게 다른 손맛들 속에서 자손들의 입맛이 만들어지는 법. 나는 정확히 '우리 집에서 먹던 이북식 손만두'가 먹고 싶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우리 집 만두에는 당면 대신 숙주나물이 들어갔다. 어마어마한 양의 숙주나물을 데쳐내고 한 번 짜내고 나면 양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숨이 팍 죽어버린 숙주나물을 씹히는 맛이 살짝 남을 정도로만 다져준다. 이 만두에는 푸석거릴 정도로 물기를 짜낸 두부도 많이 들어가야 한다. 거기에다가 집에서 직접 담근 김치와 국내산 냉장 돼지고기도 잘게 다져서 넣고, 밑간은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때는 고기랑 두부가 많이 들어가서 푸석거리는 우리 집 만두의 맛이 그렇게나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이만큼 커질 수 있었던 것이 다 이 단백질로 가득 채워진 만두 덕분 아니었을까 싶다. 마치 수제비처럼 조금은 질깃하게 씹히는 그 만두피의 감촉과 푸석하고 묵직하게 느껴지는 그 맛을 나는 열망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나는 고기를 몇 그람이나 사야 하는지, 숙주나물을 얼마어치를 사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왼손에는 '부침용', 오른손에는 '찌개용'이라고 적혀있는 팩두부를 들고는 어떤 두부를 만두에 넣는 것이 더 맛있을까 바보 같은 표정으로 두부를 한참 동안 번갈아봤다.
할머니한테 물어보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뻔했다. 내가 만두 만드는 방법을 물어보는 순간,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나서는 커다란 양푼을 꺼내고, 아버지를 시켜 재료를 구해오게 한 뒤 혼자서 만두를 만들고 앓아누울 것이 뻔했다.
어쩌겠는가. 나는 결국 감자를 진열 중이던 아주머니께 가서 물어봤다.
"만두 만들려고 하는데 어떤 두부를 써야 하나요?"
아주머니는 내 손에 들려있는 부침용 두부를 보고는 한참을 웃었다. 그걸로는 안된다면서 내 손을 잡고 데려간 곳에는 내가 들고 있던 팩두부의 두세 배는 되어 보이는 두부들이 판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두부를 한모를 사야 하나 두모를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줌마는 그게 아니라고 했다. 만두를 하려면 두부를 꽉 쫘야 하는 건 알고 있냐면서, 꽉 쫘놓은 두부를 파니까 그걸 사가야 한다고 무언가를 검은 봉지에 담아 내게 건네주었다.
"또 뭐가 필요해?"
그 당시 싱크대에 잔뜩 늘어놓은 만두 재료들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재료를 잔뜩 사 와서 싱크대에 늘어놓고, 그 재료가 모두 들어갈만한 양푼을 친정에서 빌려왔다. 얼마나 많은 양을 샀던지, 싱크대 위에는 도마 하나 올라갈 틈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부엌을 보고는 탄식했다. 나는 얼마나 만두가 먹고 싶었는지, 내가 먹고 싶은 만두가 어떤 모양새인지, 왜 집에서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말했다. 남편은 내가 있어봤자 방해만 된다면서 부엌에서 밀어내고는 투덜거리며 만두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순 자기 마음대로였다. 김치가 들어갔다고? 양념은 뭔데?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만두에 부추가 들어가? 왜? 남편은 한숨을 쉬고는 면포로 모든 재료를 짜고, 자기 집에서 하는 것처럼 양념을 쳐서 재료들을 버무리기 시작했다. 나는 불안했다.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그 만두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장을 볼 때부터 들던 미묘한 감정과 직면했다. 내가 먹고 싶은 만두, 그 만두가 완성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인 줄 알았는데. 조금 달랐다. 이질감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이랑 동생과 함께 넓은 거실에 앉아서 빚던 그 만두를 지금은 좁은 부엌에서 남편과 함께 서서 만들고 있다. 만두를 빚은 지 오래되어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남편이 반죽해 놓은 만두소도 예전에 내가 보던 모습과는 다르다. 만두피까지 빚으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라는 남편의 말에 슈퍼에서 사 온 만두피도 낯설어 보인다. 우리 집에서는 한 번도 시판 만두피를 써본 적이 없다.
나는 여기가 우리 집이라 생각했는데. 아직 아닌가 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을 나와 가까운 곳에 거처를 마련해서 혼자 3년 정도 살다가, 결혼을 하게 되어서 이 집에 이사를 온 지 1년 정도 더 시간이 흘렀다. 예전엔 '우리 집'이라고 부르던 곳이 '친정'이 되었다. 단어가 주는 거리감은 생각보다 컸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친정에 갈 때마다 과일이나 과자를 사들고 갔고, 손님인 것처럼 행동했다.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는 아직도 그 집에서 떠나질 못하고 있었나 보다.
눈물이 나진 않았다. 우울이나 불안과는 가까우면서도 먼 낯선 감정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마음이 가라앉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리고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정말 갑자기 말이다. 나는 빨갛게 버무려진 만두소를 보면서 '김치를 씻어 넣었어야 했나'라고 중얼거리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남편과 시댁은 매운 음식을 좋아했고, 남편이 혼자 양념을 하다 보니 매운맛이 더해졌을 것이다. 한껏 지친 남편이 만두 속으로 가득 찬 양푼을 거실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 둘이서는 도저히 안 되겠어."
우리는 주변에 사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가구를 옮기거나, 맛있는 음식이 많이 생겼을 때 주저 없이 부를 수 있는 친구들이 가까이 산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었다. 친구들은 집에 오자마자 남편이 준비해 둔 만두소를 보고 기함했다.
"장사라도 하려고?"
내년까지도 충분히 먹겠다면서 농담을 건네고는 자리에 앉은 친구들은 별말 없이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서로 근황을 이야기하고, 어제 보았던 유튜브를 이야기하는 간간이 '다음부터 만두는 좀 사 먹자'라는 말을 했다. 보통 때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이런 일은 벌이지 못하는 나였는데, 그날은 정말 이상했다. 그냥 '그 만두'가 먹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있었다. 친구들도 사실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군말 없이 그 이상행동에 따라준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고마웠다.
그날 우리는 저녁 여덟 시까지 만두를 빚었다. 늦은 저녁식사는 온통 만두뿐이었다. 찌기도 하고, 굽기도 하고, 국으로 끓여 먹기도 했다. 남은 만두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쟁반에 가지런히 쌓아 그대로 얼려버렸다. 서른을 갓 넘긴 우리들은 만두를 냉동 보관하려면 한 번 찌고 보관을 해야 하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결국 남은 만두들은 서로 찐득하니 붙어버려 한 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한껏 배불리 만두를 먹은 친구들은 누구는 커피를 타고, 누구는 주스를 따르고, 누군가는 맥주를 까서는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매일 통화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꼬박꼬박 만나면서도 우리는 할 이야기가 많았다. 언제나 이 무리 안에서 제일 많이 떠드는 것은 나였다. 오늘도 할 이야기가 많았다. 왜 이 만두가 먹고 싶었는지, 만두를 만들다 갑자기 왜 우울해졌는지 말이다.
남편이 만들어준 만두는 조금 맵긴 했지만, 내가 먹고 싶던 그 만두와 비슷한 맛이 났다. 담백하지만 살짝 매콤한 맛이 나는 그 만두가 나는 마음에 들었고, 안심했다.
나는 밥을 먹자마자 바로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잠결에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남편은 담요를 가져와서 내 위에 덮어줬다. 그 모든 것이 꿈결처럼 느껴졌다. 나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던 그 시절, 할머니는 한 해동안 먹을 만두를 엄마와 함께 만들곤 했다. 나는 주로 먹는 역할만 했던 손녀였고 딸이었다. 가끔 옆에서 만두 빚는 것을 거들 때도 있었다. 예쁜 아이를 갖고 싶으면 열심히 빚으라던 할머니와 엄마의 말소리가 여즉 귀에 맴돌았다. 할머니와 엄마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친구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진다. 그리고는 모든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진다. 마치 한 덩어리가 된 이상한 만두처럼 말이다. 남편이랑 나, 둘이서 만든 만두는 할머니가 만들어줬던 만두랑 조금 달랐다. 하지만 내가 찾던 바로 그 맛이었다. 내가 먹던 맛에 더 좋은 맛이 더해진 그 맛.
다시는 집에서 만두를 만들 일이 없을 거라며 남편은 계속 투덜거렸다. 거의 반나절 동안 혼자 고생을 했으니 그럴만했다. 하지만 분명 다음번에도 내가 집에서 만든 만두가 먹고 싶다며 일을 벌이면 투덜거리면서 만두를 만들어줄 것을 알고 있다.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든 손만두는 그만큼 특별한 맛을 가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