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입덧일기 02화

02. 연어회가 통으로 들어간 김밥

임신을 알아채기 전의 이야기 <2>

by 김히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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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날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동생의 입시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동생이 어느 대학을 넣을지 고르고, 논술 시험을 보러 가는데 보호자 역할을 했던 내게 친정엄마가 금일봉을 선사하셨다. 나는 그 금일봉을 가지고 내가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가방을 사기로 결심했다.


소위 말하는 명품가방을 말이다. 엄마에게 받은 금일봉에다가 내가 모은 용돈을 다 털어서 사야 하는 가방이었다. 친구랑 백화점에 같이 가서 대기표를 뽑고 오랫동안 기다렸다. 내가 원하는 가방은 하나였지만 오래 기다렸던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큰돈을 쓰게 되기 직전의 신중함이었을까. 나는 직원이 추천해 주는 다른 가방들도 들어보았다. 친구는 가방을 사는 나보다 더 들떠서는 어떤 가방이 잘 어울리는지, 어떤 크기가 좋을지 나보다도 더 열심히 고민해 주었다.


내가 평소 들고 다니는 짐들의 양(공책, 책, 필통, 우산, 물통, 간식거리나 비상약이나 손톱깎이까지 다 들어있는 거대한 화장품 파우치를 기본으로 들고 다닌다)과 내 취향(각진 것이 좋고, 파티션이 확실하게 나뉘는 것이 좋다)을 생각해 보았을 때는 미리 생각해 간 '그 가방'이 제적격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기저귀가방으로 쓸 수도 있다는 직원의 말에 순간 혹해서 가장 큰 사이즈로 살까 싶기도 했지만, 막상 들어보니 통가죽으로 된 가방이 생각보다 무거워서 중간 크기의 가방을 골랐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도망쳤어야 했다. 마치 내가 그 가방을 사는 것을 신이 말리기라도 하는 듯, 가방을 사는 데 있어 마음에 걸리는 일이 조금 있었다. 우리를 응대하는 남자직원의 태도는 불쾌했다.


'너희가 이런 가방을 살 능력이 있어?'


직접적으로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랑 친구가 가방을 구경할 때마다 딴짓을 하고, 다른 직원과 잡담을 하고, 새 가방을 가져다 달라했을 때는 '그게 있을지 모르겠네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거나 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일부러 손님을 무시해서 불쾌감을 자아낸 다음 물건을 파는 것도 하나의 상술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기엔 우리는 오랜 대기에 지쳐있었고 더 큰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바보 같은 나는 불쾌한 마음보다 가방을 갖고 싶은 마음이 커, 그 직원에게 가방을 가져 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직원이 새 가방을 가져와서는 그럴리는 없지만 혹시라도 하자가 있는지 확인해 보라 하기에 가방을 샅샅이 살펴보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여기 가방 옆에 장식이 없는데요?"


직원은 그럴 리 없다는 듯이 인상을 쓰며 내가 내민 가방을 살펴보았다. 가방 왼쪽 면에는 있는 장식이 오른쪽 면에는 구멍만 나있을 뿐 달려있지 않았다. 직원은 과하게 놀라워하며, 우리 브랜드가 이런 일이 별로 없는데 간혹 이런 일이 생긴다, 제가 새로 다시 바꿔오겠다고 말하며 가방을 들고 다시 매장 뒤편으로 사라졌다. 무려 300만 원 가까이 되는 가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가방을 보기 위해 오랜 시간 줄을 설 정도로 유명한 브랜드였다. 그런 회사에서 이런 하자가 있는 제품을 만든다고? 순식간에 제품에 대한 애정과 신뢰도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때라도 가방을 내려놓고 나는 갈 길을 가야 했었다. 바보 같은 나는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가져온 새 가방을 샅샅이 살피고, 일시불로 그 가방을 사가지고는 들고 매장을 나왔다.


내가 가방을 산 이유는 분명했다. 남들이 다 들고 다니는 것 같아 보였고, 나만 명품가방이 없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멋있어 보였다. 가방만 바꿔든다 해서 내가 유리구두를 신은 신데렐라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부딪힐까 봐, 가방을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은 평소보다 더 꼴사나워 보였다.


집에 가면서 나는 후회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베개만큼 큰 가방이 버스 안에서 계속 흔들렸고, 나는 사람들에게 부딪히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가방은 무거웠고, 쇼핑백 끈이 살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지쳐갔다. 분명 일생일대의 사치를 했는데도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행 쪽에 가까운 것 같았다.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상한 보상심리 때문이었을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잊고 있었던 김밥을 떠올렸다.


김밥은 들인 비용에 비해 행복이 큰 음식이다. 소풍 가는 날이면 엄마는 새벽 5시에 일어나 김밥을 싸곤 했다. 김치를 씻어서 넣기도 하고, 다진 소고기를 볶아서 넣기도 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어묵을 넣기도 하고. 손이 느렸던 엄마는 일찍 일어나 가족들의 입맛에 맞춰 속재료를 넣은 김밥을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엄마의 노력에 비해 맛있는 김밥은 아니었다. 밥은 죽에 가까울 정도로 질었고, 김밥김은 군데군데 찢어져있었다. 밥양이 너무 많아서 싱거울 때도 있었고, 속재료들의 맛이 다 따로 놀았다. 하지만 새벽 무렵부터 일어나서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풍기며 열심히 김밥을 싸던 엄마의 모습은 아직도 애잔하고 그립다. 지금 떠올려보면 엄마의 김밥 맛이 그리운데, 어렸던 나는 김밥체인점이 생기자마자 엄마에게 앞으로 소풍에 가져갈 김밥은 사 먹겠다고 말했다.


한 줄에 1000원.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시금치와 어묵, 햄, 단무지, 당근, 우엉. 이 모든 속재료를 넣은 통통한 김밥이 한 줄에 1000원이었고, 이 김밥은 많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었다. 그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김밥을 집에서 만들어먹기보다는 사서 먹기 시작했다. 가격을 추가하면 참치, 치즈, 소고기 등의 속재료를 추가할 수도 있었고, 다양한 김밥 브랜드가 생겨나면서 크림치즈나 진미채볶음이 들어간 특이한 김밥들이 나오기도 했다.

김밥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었고, 그 종류 또한 다양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많든 적든, 취향이 까다롭든 무난하든, 모든 사람들의 입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내가 기억하는 김밥은 다양한 모습과 가격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만족감을 주었다.

KakaoTalk_20230903_235303677_04.jpg 평소 어머님께서 자주 만들어주시는 김밥

우습게도 이번에 내가 먹고 싶은 김밥 또한 밖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연어회를 통으로 넣은 김밥이 먹고 싶었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김밥이 더 맛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 것은 전 남자 친구(현 남편)의 집에서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김밥을 먹고나서부터였다. 어머님은 어묵을 싫어하는 나를 위해 언제나 어묵을 뺀 김밥을 따로 만들어주셨다. 온 가족이 모여서 같이 김밥을 싸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일인당 김밥 서너 줄은 손쉽게 먹을 수 있었다.


집에서 만든 김밥은 고슬고슬한 밥이랑 직접 고른 재료들로 만든 속재료들로 기본적인 맛을 보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 김밥의 가장 큰 매력은 자기가 좋아하는 재료는 많이 넣고 싫어하는 재료는 뺄 수 있다는 자유 아닐까? 나는 내가 지금 원하는 모습의 궁극적인 형태의 김밥을 만들고 싶었다.


썰지 않은 통연어회, 김밥용 우엉과 단무지팩, 흙이 묻은 당근과 시금치, 그리고 김밥김.


통연어회 한 덩어리는 나 혼자 먹기에 많은 양이었다. 남편은 해산물을 아예 못 먹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오늘도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모았다. 대충 재료를 준비하고 있는데 남편이 귀가했다. 만두 사태 제2탄이었다. 싱크대 위에는 김밥 재료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남편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평소엔 안 그랬으면서. 임신이라도 한 거야?"


그럴지도. 장난스럽게 말하는 내 말에 남편은 웃었다. 당근은 왜 안 볶았느냐. 김밥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줄 아느냐. 남편은 투덜거리면서도 내가 펼쳐놓은 재료들을 사용하여 김밥 속에 들어갈 재료들을 손질해 주었다. 나는 투덜거림이 섞인 남편의 자상함과 남편의 손맛을 사랑했다.


우리는 만두를 빚던 그날처럼 다 함께 김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남편과 남편 친구는 김밥을 썰고, 남편 친구의 여자친구와 나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김밥을 말았다. 오이를 싫어하던 그녀는 오이가 없어서 다행이라면서 웃었고, 나는 그걸 알고 오이를 안 사 왔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언제나 재미있는 말을 하는 다른 친구 하나는 자신은 먹는 것만 할 거라면서 소파에 앉아서 자기 김밥에는 연어만 두 줄 넣어달라는 요구를 하다가 김밥을 만드는 모두에게 욕을 먹기도 했다.


만들어진 김밥은 속재료도,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남편을 위해서는 연어가 들어가지 않은 야채김밥을 만들었다. 나랑 친구들은 '연어회'라는 호화스러운 재료에 홀려 길게 썬 연어를 두 줄씩 김밥에 넣기도 하고, 밥보다 연어를 많이 넣기도 한 이상한 김밥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가서는 연어가 부족하여 참치마요를 가져와서 넣기도 했다.

KakaoTalk_20230903_235303677_05.jpg 연어가 두 줄이나 들어간 욕망의 김밥

김밥에 이런 말을 붙여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름다웠다. 주황빛 영롱한 연어회의 기름기가 보기만 해도 사람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이걸 어디에 찍어먹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나 고민을 하다 모든 양념을 다 가져와서 찍어먹기도 했다. 와사비, 소금, 간장, 초고추장, 마요네즈. 집에 있는 양념종지를 모두 가져와 각종 양념들을 담았다. 설거지거리도 많이 나왔지만 괜찮았다. 화려한 사치의 뒷면이란 원래 번거로운 일들 투성이인 법이었다.


혼자서 도대체 몇 줄이나 먹은 것일까. 오랫동안 욕망해 왔던 가방을 샀던 순간보다 나는 김밥을 배부르게 먹은 이 순간에 더 만족스러웠다. 그건 그냥 김밥이 아니라 아주 화려한 욕망이 잔뜩 얹어진 김밥이었기 때문이리라.


내 앞에서 오늘 산 내 가방을 어깨에 끼워놓고는 패션모델 흉내를 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임신을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임신 기간 동안 내내 그 가방이 나를 더 후회하게 만들 것이란 것도 몰랐다.


'아이에게 그 돈을 썼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식의 후회를 할 정도로 나는 모성애가 넘쳐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남들보다 모성애를 학습하는 것이 더디고 느린 사람이었다. 그때 내가 가방을 산 것을 후회한 것은 정말 단순했다. 물욕 대신 식욕! 그 가방을 살 돈이었으면 비싸서 잘 사먹지 못하는 연어회를 얼마나 먹을 수 있는 거지? 김밥에 육회를 얹어서 먹을 수도 있는 거잖아. 300만 원으로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떠올린 다음, 내가 가질 수 있었던 다른 것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한참이나 나의 소비를 아까워했다. 그때의 나도 말은 안 했지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 가방을 그 값어치만큼 활용하지 못할 것이란 걸.

KakaoTalk_20230903_235003100_01.jpg 나도 들고 나가보지 못한 가방을 왜 네가 이상한 포즈를 취하면서 들고 있니 남편아

아이를 낳은 지금까지도 나는 그 가방을 다섯 번도 채 들지 못했다. 소심한 내 성격에 그렇게 비싼 가방을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가방을 신줏단지 모시듯 들고 다니는 내 모습은 굉장히 촌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가뜩이나 무거운 가방을 긴장한 상태로 들고 다니다 보니 외출을 하고 난 다음에는 늘 왼쪽 어깨에 담이 결리곤 했다. 나에겐 그냥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에코백이 제일 어울렸는데. 그때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바보같이.


그냥 그 돈으로 연어나 더 사 먹었으면 좋았을 것을. 반짝반짝 빛나는 그 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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