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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사를 떠나야 하는 병, 왜 나만 힘든 걸까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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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말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싶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은 제 마음속에 독처럼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숨이 가빠지고, 회사 건물 앞에 서면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괜히 호흡이 흐트러지고 손끝이 저려오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게 바로 ‘이제 도망쳐야 한다’는 신호라는 걸,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14년 넘게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답답하고 불합리한 규칙도 묵묵히 따랐고, 맡은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버텼습니다. 조직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늘 저 자신을 낮추고, ‘나 하나만 참으면 된다’며 스스로를 억누르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제 시간과 에너지를 회사에 쏟아붓는 삶이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요즘 어디 아프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그 전부터 제 몸은 계속해서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들어오는 월급과 대기업이라는 자부심에 기대어 그 신호를 외면했습니다. 승진 대상자가 되었지만, 이상하게 경쟁자들에게 하나둘 밀리기 시작했고, “더 열심히 해야 승진할 수 있다”는 상사의 말에 묵묵히 더 많은 업무를 떠맡았습니다. ‘지금만 버티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생각으로 저를 다그치며 견뎠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였고, 그 스트레스는 제 몸을 무너뜨렸습니다.


탈모는 급격히 진행됐고, 숙면은 사치가 되었습니다. 체중은 20kg 넘게 늘어나면서 수수로에 대한 자신감마저 잃어버렸습니다. 회사에서는 저를 두고 “자기관리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수군거림이 들려왔습니다. 건강검진 결과는 해가 갈수록 살벌해졌고, 결국 당뇨병을 포함한 각종 성인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은 “이대로 가면 정말 위험하다”라며, 모든 원인이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거의 화를 내듯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남들은 아무 일 없이 다니는 회사가, 나에게는 이렇게 몸이 부서질 정도로 힘든 곳이었구나…’

그때부터 저는 스스로에게 자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라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쯤에서 멈춰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회사는 저를 쉬게 두지 않았습니다. 경고를 받고서도 저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다시 일에 매달렸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은 수없이 반복되었고, 몸과 마음은 점점 삐걱거리며 위태로운 줄다리기 속에서 힘겹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2020년 10월 어느 날, 평소처럼 출근하던 아침이었습니다. 집 앞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커다란 덤프트럭이 제 차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위험하다’는 생각보다도 먼저, 제 머릿속에 이런 문장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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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대로 덤프트럭에 뛰어들어버리면, 출근도 안 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놀랍도록 차분하게 떠오른 그 생각에, 저 스스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트럭은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갔지만, 그 순간 저는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이건 병이구나.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병’… 아니, ‘회사를 떠나야만 나을 수 있는 병’이구나. 몸이 망가지기 전부터,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져 있었던 겁니다.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왜 다들 잘만 다니는 회사를, 나만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걸까?’
‘왜 나는 견디지 못하고 모든게 무너지고 있는 걸까?’

저는 그때부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반드시 찾아야 했습니다. 아니, 찾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제는 살기 위해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습니다.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이 마음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피로와 절망이 쌓여 만들어진, 제 몸과 마음이 보내는 마지막 생존 신호였습니다.


물론, 이런 감정에 모두가 공감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이 병은, 하루하루 몸이 무너지고 마음이 말라가는 과정을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이 병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회사를 ‘무작정’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떠난 후의 삶’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제 절박하게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회사를 계속 다니다가는 분명히 제가 무너질 것이 뻔했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그만둘 수도 없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 회사를 나선 뒤에도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결국, ‘살기 위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해 줄 방법을 찾기 위해, 말 그대로 ‘발버둥’을 치기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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