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인 로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처럼 몸의 건강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지만, 세금을 다루는 공무원이라는 직업 특성상 16년 가까이 반복되는 민원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유치원생 자녀의 엄마로서, 또 건강이 무너져가는 남편을 지켜보는 아내로서 본인 역시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 힘듦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버티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내가 겉으로 보기엔 회사를 잘 다니고 있었기에, 제 고민을 진지하게 털어놓는 것이 맞는 일인지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대화를 시작했고, 오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 둘 다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한 가지 결론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리 둘 다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고, 실행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회사를 그만두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퇴사할 수 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쓰기로 했습니다. 사실 회사를 떠나서 조기 은퇴하는 삶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침 그 시기에 ‘파이어족’, ‘조기 은퇴’ 같은 키워드들이 점점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와 관련한 다양한 방법론도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짬이 날 때마다,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짜투리 시간을 쪼개며 그 방법들을 연구했습니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 국제 자격증을 준비할 때 하루 12시간씩 공부하던 시절처럼, 또 승진 시험을 준비하며 화장실에서도 책을 보던 그때처럼,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퇴사를 위한 실행법을 공부하고 분석했습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건 사치였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저는 무조건 방법을 찾아야 했고, 단 하나라도 저에게 맞는 길을 선택해 실행에 옮기는 것만이 중요했습니다. 이런 저의 변화는 회사에서도 빠르게 감지되었습니다. 주변 동료들이 “요즘 무슨 일 있냐?”, “혹시 집에 무슨 걱정이라도 생긴 거냐?”며 걱정해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숨겨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정말 친한 사람들에게만 진심을 담아 “조기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파이어족을 준비 중이에요”라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회사 관련 일로 힘들다는 고민을 나눌 때 그렇게 나를 공감하며 같이 욕해주고 같이 힘내라는 덕담을 건네주던 그들에게서 돌아오는 반응은 제 생각과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일하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다니고 그러잖아. 집에서 놀면 뭐 해?”
“돈도 못 쓰고 아둥바둥 아껴가며 살아야 한다면, 뭐하러 은퇴를 해?”
“네가 그렇게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어. 요즘 무슨 헛바람이라도 든 거야?”
“그래도 직장은 다녀야 술도 마시고 사람도 만나지. 집에만 있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
저에게는 미래가 달린 정말 심각하고 깊은 생각 끝에 이야기한 것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들에게 저는 그저 시키는 일 조용히 하고, 조직에 충성하며 살아가면서 월급 받은 걸로 기계처럼 살아가는 직장인이었나 봅니다. 물론 그렇게 살고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던 제가 갑자기 ‘조기 은퇴’라는 단어를 꺼내니,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겠죠.
결국, 그들이 말한 결론은 이랬습니다.
“지금도 행복하고,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는데 굳이 왜 고생해서 은퇴를 해?”
그들은 정말 일을 즐기고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단지 익숙함에 안주하고 있었던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그들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저처럼 ‘회사를 떠나야만 살 수 있다’는 감정을 공유하지 못했습니다. 몸이 아픈 건 제가 운동을 안 해서 그런 거고, 요새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그렇다는 식으로 단순히 제가 번아웃 상태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번아웃이 아니라, 삶의 방향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신호’라는 것을요. 저는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건강을 회복하고, 아이가 커갈 미래를 함께 지켜볼 수 있는 삶을 원했습니다. 연차 눈치 보지 않고, 보고서 스트레스 없이, 제 시간과 에너지를 저와 가족을 위해 쓰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저에게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충실하고 현실적인 충고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건 그냥 피로해서 그래. 휴가 좀 쓰고 쉬다 와.”
“다들 그렇게 살아. 너만 예민한 거 아냐? 이참에 명상을 좀 해봐.”
“은퇴하려면 최소 몇십억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우리가 월급은 받지만 그 정도 벌려면 로또뿐이다.”
“재테크로 성공할 능력은 있니? 회사에서 승진도 지금 못하고 밀리고 있는데 그 열정을 승진하는 데 써서 돈 더 받고 여유로워지면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을까?”
그전의 저라면 저런 충고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술 한잔 하며 하하호호 웃으며 털어버렸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저에게 그 방식이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살아야만 했습니다. 회사를 탈출하면서 살아남아야 했으니까요.
그때부터 저는 회사와 거리를 두는, 회사 안에서 다른 삶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프다는 핑계와 어린 자녀 핑계로 항상 참석하던 회식은 거절하고, 사람들과의 대화 대신 틈날 때마다 책을 보며 순간순간의 생각들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회사와 거리두기를 시작했습니다. 하루 두 번 출근하고 두 번 퇴근했습니다. 오전에 출근하고 점심시간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갔습니다. 직원들과 같이 식사하지 않고 혼자 도시락이나 샌드위치를 먹으며 걷거나 공원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1시간 내외였지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이후 오후 시간에 다시 출근하는 마음으로 집중해서 일하고 정확히 6시에 퇴근했습니다.
물론 야근을 하지 않기 위해 일하는 시간에는 쉬지 않고 일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시간에는 회사와 점점 거리를 두며 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켰습니다. 누군가는 “요즘 쟤 많이 변했네”라며 수군거렸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변한 것’이 아니라, 제 삶의 무게 중심을 회사에서 제 자신에게로 옮기는 과정이라는 걸요.
저는 그동안 회사에서는 예스맨이었습니다. 갑작스레 부서에 주어진 업무들은 거의 제게 왔었고, 그런 업무를 해내며 뿌듯해하던 과거의 제가 이제는 미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못하겠다고 과감하게 말했고, 주어진 일만 정확히 했습니다. 누가 욕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회사를 떠나는 연습을 하나씩 해 나갔고, 회사에 남아 있으면서도 제 안의 독립을 준비했습니다. 이때가 2021년 상반기까지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하반기에 저는 육아휴직원을 제출하였습니다. 기존에 휴직은 병가 외에는 여직원들의 육아휴직이 전부였고, 남직원들은 눈치 보며 1년만 겨우 사용하는 분위기였지만, 저는 처음부터 2년 육아휴직을 신청했습니다. 회사 최초라는 말과 함께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수군거림이 들려왔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미 그때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회사를 떠날 수 있는지 어느 정도 감이 왔습니다. 하지만 정말 내가 회사를 떠나서 살 수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퇴직은 아니지만 정 안 되면 돌아올 수 있도록 육아휴직을 하면서 미리 퇴직 이후의 삶을 일부 경험해보고, 과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인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침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시기와 맞물려,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자녀의 뒷바라지를 위한 결정이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그때까지도 공무원 생활을 잘하고 있었고, 2022년에는 휴직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제가 먼저 휴직하고 자녀 케어를 했습니다. 이후 2023년에는 함께 동반 휴직을 하면서, 부부가 함께 회사를 떠나서도 살 수 있을지 실험해보기로 했습니다. 휴직 1년 차에는 급여가 나왔지만 2년 차에는 전혀 나오지 않기에 조건은 조금 달랐지만, 회사를 떠난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휴직계를 제출한 뒤, 근 두 달 동안 제 책상 위 달력에는 하루하루 빨간 X자가 늘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X가 달력을 가득 채운 날, 저는 마치 회사를 완전히 떠나는 사람처럼 모든 짐을 정리해 들고 나왔습니다. 휴직일이 다가올수록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 숨통이 트이길 바랐고,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2022년 1월, 육아휴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 밖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러나 저는 제게 주어진 상황에서, 이 방법이 무너져가는 삶을 지키는 유일한 선택지였다는 걸 확신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속편해 보일 수 있는 2년간의 육아휴직이라는 선택이, 제게는 회복과 회생의 길이었습니다. 그 2년이라는 휴직 기간이야말로 제가 조기은퇴를 할 수 있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