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준 초라함

by 젠또

2021년 3월, 저는 취업을 했습니다. 입사 후 받았던 첫 월급은 1,392,480원. 프리랜서 세금 3.3%를 떼고 나면 내 손에 쥐어지는 건 약 130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좋고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2021년 연평균 소득 약 211만 원, 2022년 연평균 소득 약 203만 원, 2023년 연평균 소득 약 126만 원이었습니다. 퇴사를 위해 일을 정리하던 시기 외에는 매달 200만 원 안팎의 근로소득이 발생했습니다.

​첫 월급은 뒤돌아보니 없었습니다. 이러다간 씀씀이만 커질 것 같아 다음 달에는 청약 10만 원을, 그다음 달에는 적금 20만 원을 넣으며 저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22년 교회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의 재정 관리사님을 만났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매달 50만 원의 분산투자, 20만 원의 개인연금을 시작하였습니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막연함과 어리숙함에 설레었습니다. 그렇게 숫자를 채워 넣는 매일이 내 미래를 근사하게 바꿔줄 것이라 믿으며, 그 설렘을 원동력 삼아 하루를 살아냈습니다.

​그렇지만 관리사님이 곁에 있어도 '신뢰'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이분은 왜 나에게 도움을 주실까?' 하는 의심이 불쑥 솟기도 했습니다. 그 의심은 내 안의 욕망과 만나 한 번씩 엇나갔습니다. 주변 말에 휩쓸려 이름도 모르는 주식을 샀다 손해를 보고, 더 좋은 상품이 있다는 말에 연금을 해지하는 등 실수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해결되는 부분이 있었고, 재정상태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정신 상태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고, 결국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퇴직금도, 실업급여도 없는 프리랜서의 손에 남은 건 고작 천만 원 남짓한 돈이었습니다.


​지난 2년 8개월의 시간이 고작 천만 원이라는 액수로 치환되는 기분. 그 돈은 내게 위로가 아닌 '초라함'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이 고작 이 정도 숫자로 설명된다는 것이 허망했습니다. 저는 다시는 이 분야의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퇴사 후 한 달, 즐거움 뒤에 찾아온 막막함을 안고 남해라는 지역으로 도피했습니다. 모아둔 천만 원은 한 푼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제게는 그 돈을 스스로를 위해 사용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대신 '카페 톨'에서 일을 하며 여행기를 제출하면 소정의 원고료를 받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음이 울컥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제가 쓴 첫 번째 원고를 본 카페 실장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연아 그 나이 대는 멈춰도, 때론 실패해도 괜찮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툭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며 나를 옥죄던 그 마음을 이제는 조금 내려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아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조심스럽게 건넨 언어재활사 구인 소식. 전 직장보다 더 나은 조건이라는 아빠의 말에 짜증부터 났습니다. 더 정확하기 말하자면 제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내 고통의 시간이 고작 ‘더 나은 조건’이라는 돈 몇 푼에 합의하자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말 없는 자연을 멍하게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바다와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을 보면 제가 하는 걱정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도망치듯 온 남해에서도 여전히 도망치고 있는 저에게는 무엇이 필요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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