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계획이라는 요새 속에 나를 가두었던 지난날, 남해의 바다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꺾는 용기를 배웠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돈은 늘 '부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전제품의 코드는 무조건 뽑아야 마음이 놓였고, 물을 아끼겠다는 명목으로 머리 감는 횟수까지 줄였다. 사실은 그냥 안 감고 싶었던 마음도 한 스푼 섞여 있었지만, 어쨌든 내 유년의 기저에는 '아껴야 한다'는 강박이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집에 놀러 오면 반가우면서도, 그가 소모할 휴지 한 장, 물 한 컵에 마음껏 베풀지 못하는 옹졸함이 불쑥 솟아나곤 했다.
비교적 풍요로웠던 친척들과 가족들의 도움을 받았고, 외가에서는 첫 아이라 귀한 대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의 저장고에는 유독 결핍의 순간들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가장 압권이었던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 근교 시골 학교로 전학을 갔을 때다. 나는 그곳 아이들 앞에서 "우리 아빠는 천만 원도 못 벌어"라며 잘난 척을 했다.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왜 잘난 척의 소재가 되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아마도 결핍조차 나만의 특별한 서사로 만들어 나를 방어하려 했던 어린 날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받은 첫 월급 1,392,480원. 프리랜서 세금 3.3%를 떼고 손에 쥔 130만 원 남짓의 돈은 신기하면서도 두려웠다. 이때부터 시작된 치밀한 적금과 투자는 사실 미래를 향한 희망찬 설계라기보다, 그 지독한 결핍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쌓아 올린 '요새'에 가까웠다. 나는 전형적인 계획형(J) 인간은 아니었지만, 내가 설정한 이상과 욕심을 '계획'이라는 이름의 틀로 만들어 나를 가두었다. 그 계획에서 한 치라도 어긋나면 세상이 무너질 듯 불안해했고,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다시 숫자를 채워 넣는 매일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요새는 결국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정신 상태는 한계에 다다랐고, 퇴직금도 실업급여도 없는 프리랜서의 손에는 고작 천만 원 남짓한 돈이 남았다. 나는 그 돈을 들고 무작정 남해로 향했다.
당연히 지독한 불안이 엄습해야 했다. 하지만 남해에서의 삶은 나의 '계획된 불안'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배달 앱을 켜도 잡히는 식당이 하나 없고, 편의점 한 번 가려면 20분을 꼬박 걸어야 하는 이 불편한 시골에서 나는 여느 때보다 잘 먹고 잘 지냈다. 통장 잔고가 줄어들까 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었다. 마지노선 아래로 돈을 쓸 일 자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의 헛헛한 공허함은 돈이 아닌 다른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남해에서 만난 사장님, 실장님, 박사님들은 외지에서 온 청년에게 대가 없는 사랑을 건네주셨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과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빛깔은 안 먹어도 배부른 자연의 신비를 선사했다. 사랑에 배불러 본 적이 언제였던가. 전 남자친구의 지극한 사랑까지 더해지자, 공허함을 채우려 폭식으로 스스로를 학대하던 못된 습관도 어느새 잦아들었다. 돈이 없어도 잘 지내지는 것, 그것은 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이웃 간의 따스함과 나눔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과정이었다.
그즈음,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취업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내 전공인 '언어재활' 분야였다. 사실 나는 남해로 오면서 "언어재활은 정말 죽어도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을 때 아니면 다시는 안 하겠다"라고 굳게 다짐했었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계획이자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처음 제안이 왔을 때, 내 안의 '안정'을 추구하던 자아는 거세게 흔들렸다. 그 일을 하며 겪었던 트라우마와 상처들이 떠올라 괴로웠고, 좋은 조건에 마음이 흔들리는 내 모습이 마치 돈의 노예가 된 속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매일 기도했다. 내가 믿는 신에게 "나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고 또 물었다.
결정적인 순간은 아빠의 질문이었다. 아빠는 꽤 긴 시간 간격을 두고 내게 세 번을 물으셨다. 그 세 번째 질문을 받았을 때, 신기하게도 내 안의 고집이 툭 하고 꺾였다. 나는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 보았다. '나는 이 일 자체가 싫은 걸까, 아니면 그 일을 하며 얻은 상처로부터 회피하고 싶은 걸까?'
답은 후자였다. 나는 상처받기 싫어서 내가 가진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다시 그 일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건 단순히 예전의 고통스러운 일터로 돌아가는 '회귀'가 아니다. "절대 안 해"라고 단정 지으며 나를 가뒀던 그 견고한 틀을 내 손으로 부수어 버린 '확장'이다.
남해는 나에게 '나를 꺾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세운 계획 안에서 아등바등하던 고집을 내려놓자, 계획 밖에서 더 근사한 기회들이 걸어 들어왔다. 이제 나는 돈을 이전처럼 대하지 않는다. 돈은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이 삶을 지속하게 해 줄 편안한 도구일 뿐이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내 안의 힘과 유연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이제 내가 만든 감옥에서 걸어 나와, 남해가 보여준 그 너른 바다처럼 내 삶을 흘려보내려 한다. 내가 나를 꺾고 나니, 비로소 진짜 내 인생이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