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리엄 오르펜 <윈스턴 처칠>
[명화와 역사] 38. 처칠과 덩케르크
2018년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나란히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 ‘덩케르크’와 ‘다키스트 아워’는 모두 2차세계대전 개전 초기의 영국을 다룬 영화이다. ‘다키스트 아워’에서는 윈스턴 처칠(1874~1965)이 수상에 올라 전시 내각을 꾸리면서 독일과 결사항전을 할 것인가 타협할 것인가를 다룬 내용이었고, ‘덩케르크’에서는 처칠이 수상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수행했던 덩케르크 해안에서 독일군에 포위된 영국군과 연합군 40만명의 철수작전을 다루고 있는 재난영화이다.
2차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은 블래넘 성을 소유한 유서깊은 귀족 가문인 말보로 공작 가문에서 태어났다. 재무장관을 지낸 아버지 랜돌프와 미국 갑부의 딸이었던 어머니 제니와의 사이에 첫째로 태어났다. 처칠은 학교에서는 말썽꾸러기 낙제생이었지만, 학창시절부터 역사만큼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역사적 위인들의 특별한 장점을 자...신의 행동지침으로 삼아 실천하기 시작했다. 해로우 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삼수 끝에 1893년 샌드허스트 사관학교에도 간신히 입학했다. 그러나 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에는 군 경력보다는 종국기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처칠은, 1899년 소위시절에 남아프리카 보어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하여 전쟁영웅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25세에 보수당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으로 옮겨 자유당 내각의 통상장관, 식민장관, 해군장관 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1915년 1차대전시에 해군장관이었던 처칠은 그의 평생의 굴욕인 터키 갈리폴리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게 된다. 당시 터키가 독일의 추축국에 가담하면서, 연합국인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로부터의 보급로를 차단당하게 되었다. 그러자 전쟁의 승리를 위해 러시아의 참전의 유지가 필요했던 영국은 러시아에 대한 보급로 확보를 위해 터키 다르다넬스 해협에 위치한 갈리폴리를 공략하게 되는데, 문제는 해군장관이었던 처칠의 오판으로 준비가 안된 육군을 배제한 채 해군 단독작전으로 무리한 상륙작전을 하면서 7개월간의 전투에서 약 22만명의 사상자를 내고 철수하게 되었다. 처칠은 장관을 사임하고 육군에 중령으로 재입대하여 보병대대장으로 1차대전을 마치게 된다.
전쟁 후 다시 보수당으로 복귀하여 재무장관을 지낸 이후로는 당내 비주류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 대한 순진한 유화정책으로 일관한 체임벌린 수상이 독일의 2차대전 개전이후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1940년 5월 10일 영국 국왕 조지 6세는 처칠을 구원투수로 비상전시내각의 총리에 임명하게 된다. 처칠은 그의 전시내각과 함께 지하벙커에서 전쟁을 진두지휘하면서, 진실되고 화려한 언변으로 영국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독일 공군을 영국 공습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또한 가장 급한 불이었던 덩케르크 해안에 갇혀있던 영국군 30만명을 포함한 40만명의 군인들을 구출하는 작전인 ‘다이나모’철수작전을 진두 지휘했다. 그러나 덩케르크 해안도 독일 공군의 공습으로 8Km에 달하는 해안이 파괴되어 영국 해군 군함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칠은 국내의 모든 선박에 총동원령을 내려서 전국의 어선, 화물선, 요트 등 모든 작은 배들을 구출작전에 투입했다. 독일 공급의 수많은 공습을 뚫어내고 5월 26일부터 6월4일까지 총 9일동안 총 33만8천명이 성공리에 구출되었다. 이 작전으로 영국군의 사기는 크게 올랐으며, 이들은 나중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주역들이 되어 2차대전의 전세를 바꾸게 된다.
처칠은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하였으며, 2차대전 종료 후 그의 총리 시절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역사저작물 ‘제2차 세계대전’으로 195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말썽꾸러기 낙제생에서 2차대전 풍전등화의 세계를 구한 영웅이 되고, 거기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까지 될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가 평생 지녔던 ‘올바른 정의의 자유’라는 신념이었을 것이다. 그가 1965년 향년 91세를 일기로 숨졌을 때, 그의 장례식에는 왕족이외에는 금세기 최초로 국장으로 거행되었으며, 그는 웨스터민스터 사원이 아닌 그의 고향 블래넘 성 근처의 교회에 묻혔다.
처칠의 초상화를 그린 윌리엄 오르펜은 아일랜드 출신의 초상화가로서, 1차대전 때는 종군 화가로서 전장 특히 참호에서의 비극적 장면을 많이 그려 기사의 작위를 수여 받았다. 전쟁 전후로 처칠을 포함한 138명의 장군과 정치가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처칠의 초상화는 1차대전 당시 해군장관을 할 때의 젊은 모습이다.
++ 윌리엄 오르펜 (Sir William Orpen, 1878~1931)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 oil on canvas, (1916), 148 x 102.5 cm,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 게리 올드먼이 윈스턴 처칠로 분하여 전시내각의 긴박했던 상황을 그린 영화 ‘다키스트 아워’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Fre6JBhQUPw
*** 2차대전 초기 덩케르크에 고립된 연합군 40만명을 구출하는 상황을 그린 영화 ‘덩케르크’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XUhRA_ObaDo
**** 2차대전시 영국 국왕이었던 조지 6세가 말더듬이를 교정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연설을 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콜린 퍼스 주연의 영화 ‘킹스 스피치’ (2010)
https://www.youtube.com/watch?v=jU_ClUF1C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