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이 리히텐슈타인 < 꽈광>
[명화와 역사] 39, 진주만과 미드웨이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편에 서서 어부지리 승전국 지위를 누리며 빠르게 경제가 성장한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처음에는 어느 쪽에 붙어야 할지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독일이 네덜란드에 이어 프랑스까지 점령해 버리자 이들이 동남아에 갖고 있던 식민지에는 힘의 공백상태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은 독일, 이탈리아와 뒤늦게 동맹을 맺고 자원이 풍부하며 무방비상태이다 시피 한 인도차이나 반도로 공격해 들어갔다. 이른바 ‘아시아의 독립을 지키고,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경제권을 만든다’는 대동아 전쟁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러자 미국, 영국에서는 크게 반발하며 일본으로의 석유를 비롯한 물자공급을 모두 중단하게 된다.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은 아무도 예상 못했던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된다. 바로 1941년 12월 7일 미국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것이다. 일본은 총 450대의 항공기를 실은 6척의 항공모함으로 진주만을 공습하여, 정박해 있던 미국 전함 5척과 200여대의 항공기를 파괴시켰으며, 2천명이상을 사망케하였다. 하와이는 미국 태평양 함대가 있던 곳으로 진주만 폭격 후 일본은 무서운 기세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을 점령해 나간다. 그러나 이날을 ‘치욕의 날’로 지정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드디어 중립을 깨고 2차대전에 참전을 결정하고 일본에 선전포고를 내린다.
반격에 나선 미국은 1942년 4월 항공모함에서 두리틀 폭격기를 출격하여 토쿄를 공습하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도쿄 공습에 일본 군부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었고, 일본 국민들은 일본 군부를 크게 비판하게 되었다. 그러자 해군 야마모토 연합함대 사령관은 미드웨이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미드웨이는 하와이와 일본의 중간에 있는 섬으로, 미드웨이섬을 점령하여 초계선을 멀리 하와이 가까이까지 동진시키겠다는 의지였다. 또한 여기에서 미국의 해군 기동부대들을 격멸하여 태평양 전쟁을 끝장내겠다는 포석이 있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진주만 공습이후 계속해서 남태평양과 인도양의 여러 작전에 동원되었던 전함과 항공기, 군인들의 피로가 누적되어 일정기간의 휴식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이러한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이를 밀어부친 일본 해군은 미드웨이 전장에서 먼 북쪽 알류산 열도에 경항공모함 2대를 분산 투입하고 나머지 4대의 항공모함만 출동하는 실수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 태평양 함대 사령과 니미츠 제독은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하고 일본이 미드웨이를 공격할 것을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 해군은 이미 항공모함들이 많이 파괴되어 단 두 척의 항공모함으로 힘겨운 작전을 수행할 수 밖에 없었지만, 반파되어 기동이 어려웠던 항공모함 요크타운도 긴급 수리하여 출동시킬 수 있었다.
일본 항모에서 발진한 함재기들의 미드웨이 1차 폭격으로 저유소, 비행기 격납고, 발전소 등을 폭격하였지만, 공격의 성과가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2차 공습을 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원래 예정되었던 미국 전함 폭격용 어뢰 장전 대신 미드웨이 2차 공습을 위해 일본 항공모함의 함재기들이 육상 공습용 포탄으로 무장 작업 전환이 되면서 항공모함 격납고와 갑판은 극도의 혼란 상태가 되었다. 또한 1차 공격대 함재기 100여대를 수용하게 되면서 무방비 상태가 되었고, 이 틈을 이용한 미 해군 폭격기들의 폭격으로 일본 항공모한 3척과 함께 수많은 비행기들과 군인들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일본 해군은 대패하였고 이 해전 이후로 일본 해군은 거의 궤멸되고 태평양의 제해권을 상실하였지만, 일본은 패배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심지어 육군에까지 비밀로 하면서 전쟁을 이어나가게 된다.
20세기 미국의 팝 아티스트인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초기에는 추상표현주의 그림을 그리다가 펄프픽션 소설이나 만화책의 장면들을 그래도 팝아트의 회화로 재현하여 유명해진 화가이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선명한 검은색 테두리와 그 안을 메우고 있는 망점(벤데이돗)이다. 이 작품은 팝아트의 리히텐슈타인이 1962년 발간된 ‘전쟁에 동원된 모든 미국 남자들’이란 미국의 DC 만화에서 차용하여 사용한 것이다. 전후 대중문화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어난 영웅적이거나 신화적인 사건들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리히텐슈타인은 극적인 사건과 병사와 민간인이 겪은 폭력을 기상천외한 이야기로 표현하면서 2차대전의 참상을 널리 알렸다.
++ 로이 리히텐슈타인 (Roy Lichtenstein, 1923~1997) <꽈광 (Whaam)> (1963년). 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유채, 172×406cm. Tate Modern, London
** 진주만 공격의 사랑과 전쟁을 보여주는 케이트 버킨세일 주연의 영화 ‘진주만’ (2001)
https://www.youtube.com/watch?v=X_gqWd3H94M
*** 올 11월에 개봉예정인 미드웨이 해전을 그린 영화 ‘미드웨이’ (2019)
https://www.youtube.com/watch?v=Z_7eN5ilo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