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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샘 Jan 28. 2020

#124, 고통과 죽음을 구원과 부활의 아름다운 예술로

- 라파엘로 <몬드의 그리스도 수난도>

[명작산책] #124, 고통과 죽음을 구원과 부활의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한 라파엘로 <몬드의 그리스도 수난도>


- 라파엘로 산치오 (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1520) <몬드의 그리스도 수난도 (The Mond Crucifixion)> 목판 위에 유채. 279 x 166cm. 런던 내셔널갤러리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는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수많은 화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르네상스 3대 천재인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비롯하여 한스 홀바인, 루벤스, 렘브란트는 물론 우리가 너무나 좋아하는 인상주의 화가 마네, 모네, 르느와르, 고흐, 고갱 그리고 세잔까지.. 1824년 은행가였던 존 앵거스타인의 컬렉션 38점으로 시작된  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그 소장품이 너무 많아져 한계에 이르자 1991년 영국의 존경받는 유통 재벌인 세인즈베리 가문에서 기증하여 신관인 세인즈베리관이 세워졌다. 이곳에는 1250년부터 1500년 사이의 중세시대의 작품들과 원근법이 반영된 르네상스의 종교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세인즈베리관에서 오래된 종교화들을 보고 구관으로 이동하는 복도에서 뒤를 한번 돌아 보라. 여러분의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보일 것이다!

라파엘로 자화상

복도의 기둥들 사이로 한 가운데에 그동안 보아 온 르네상스 원근법 그림을 보는 듯한 모습이 펼쳐지며 그 소실점 부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림이 펼쳐진다. 그 그림은 바로 르네상스 3대 거장 중의 하나인 라파엘로 산치오의 <몬트의 그리스도 수난도 (The Mond Crucifixion)>이다. ‘몬드(Mond)’라는 이름은 이 그림의 원 소유자의 이름인 독일계 유대인이며 영국에 정착한 ‘몬드 박사(Dr. Mond)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그림은 라파엘로가 19세의 약관이었을 때 그린 그의 초기 작품이다. 그래서 그의 스승인 페루지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림이다. 원래 이 그림은 라파엘로의 고향인 이탈리아  우르비노(Urbino)와 가까운 ‘치타 디 카스텔로(Citta di Castello)’의 ‘성 도메니코(San Domenico)’성당의 제단화로 그려졌다. 

라파엘로의 연인 <라 포르나리아>

이 그림 <몬트의 그리스도 수난도>는 그림의 중심주제인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고통’이라는 엄숙하고 참담한 주제를 거룩하고 아름답게 승화시킨 작품이다. 라파엘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내하신 고통과 참담함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아름답고 평화롭게 그렸다. 그러면서도 절정기 르네상스 회화 스타일에 충실하기 위해 완벽한 그리스도를 그리고 있다. 이는 이런 이상적인 모습보다는 있는 그대로 즉 실상을 보여주고자 했던 동시대의 북유럽의 화가들과는 다른 접근법이었다.

라그래서 이 그림에서는 회화 감상의 미적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고통과 죽음이라는 충격적 장면을 오버렙시켜서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우선 십자가가 정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그 위에 완전하게 균형을 이룬 그리스도의 몸이 그림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룬 그림에는 여섯 명의 인물이 또한 대칭적으로 그려져있다. 이 십자가 뒤편으론 이상적이고 신화적인 풍경을 말하는 아카디아 풍경(arcadian landscape)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십자가 위의 구름에는 태양과 달이 동시에 떠 있다.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해와 달, 낮과 밤이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낮과 밤이 동시에 있다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전지적 관점에서의 하느님의 관점임을 나타낸 것으로 인간의 시간이 아닌 신의 시간, 즉 ‘영원한 시간’을 상징한다.


그림의 상단의 두 명의 천사는 작은 구름조각을 가볍게 밟으며 십자가 양쪽에서 그리스도의 두 손과 옆구리의 피를 성배로 받고 있다. 그림의 하단 뒤편으로 보이는 사람은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오른편에 서서 슾픈 표정을 짓고 있다. ‘다빈치 코드’의 저자 댄 브라운은 다빈치의 불후의 명작 <최후의 만찬>에서 여성스런 모습의 사도 요한에 착안하여 그가 사실은 막달라 마리아라고 소설을 쓸 정도로 여성적인 모습의 사도 요한이 여기서도 여성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앞쪽에는 6세기에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한 성 제롬과 성녀 막달라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를 향해 위로 고개를 들고 있다. 시대가 전혀 틀린 사람인 제롬이 등장한 이유는 성 도메니코 성당이 바로 제롬을 추모하기 위한 성당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라파엘로의 성화는 역설적이고 모순되는 추함과 아름다움,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 지상과 천국을 절묘하게 한 폭에 담아내며 이 양립되는 모순들을 조화롭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 라파엘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지상과 천상’의 매개가 된다는 사실을 회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즉, 이 그림의 십자가는 생명의 나무(Tree of Life)가 되었다. 지상과 천상의 매개는 오직 이 십자가와 그 십자가위에 죽은 그리스도뿐이다. 그래서 이 십자가는 하나님과 지상을 연결시켜준 사다리 역할을 하며 땅에 박혀 있지만 사실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의 은총인 것이다. 그래서 이 검은색 신비의 십자가 사건은 특정한 시간에 발생한 한 역사적인 사실을 넘어 ‘전우주적 사건’임을 알려준다.


또 주목할 것은 이 그림은 천주교 미사와 관련하여 각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표정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 중앙의 예수님은 눈을 감고 있다. 이는 육체적 죽음을 넘어 천성에 가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오른쪽의 붉은색 옷을 걸친 천사는 아래의 사도 요한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요한 복음을 쓴 복음사가이기에, 이는 미사의 첫 번째 부분인 ‘말씀의 전례’를 의미한다. 셋째, 왼쪽 녹색의 천사는 흐르는 성혈을 응시한다. 즉, 미사의 두 번째 부분인 ‘성찬의 전례’를 상징한다. 넷째,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은 그림 밖의 관람자를 향해 있으며 이는 이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도록 초청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앞의 두 성인은 무릎을 꿇고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몸, 즉 성체와 성혈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행위로 ‘영성체’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혈로 말미암아 드디어 인간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이 왔다. 이 피의 색깔은 붉은색이다. 그래서 그림 속 등장 인물들을 자세히 보면 모두가 이 붉은색을 포함하고 있다. 성모님의 검은 상복 속의 옷과 사도 요한의 겉옷, 성 제롬의 붉은 띠와 성녀 막달라 마리아의 겉옷이 모두 붉은 색이다. 즉 예수님의 성혈이 부활의 새 생명으로 인간 모두에게 전해졌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아테나 학당>

라파엘로는 궁정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페루지노의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으면서 수제자가 되었으나, 피렌체로 가서 피렌체파의 거두인 바르톨로메오에게서 장대한 화면구성을 배웠으며, 다빈치에게서 명암법을 매우면서 스승을 뛰어넘게 된다. 그후 로마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픽업되어 <아테나 학당>을 비롯한 대작을 그렸으며, 베네치아파의 거두 델 피옴보에게서 그의 색채를 배웠으며,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보면서 공교한 율동적 구도까지 받아들이는 가히 스펀지같은 습득력의 천재였다. 이를 바탕으로 고전적인 격조 높은 걸작을 이룩하는데 성공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정점에 서게 된다. 그가 그동안 습득한 르네상스의 모든 대가들의 테크닉을 집대성 하여 마지막 2년동안 그리다 37세에 요절하며 미완성으로 남은 <그리스도의 변용>은 그래서 르네상스시대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변용>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여 승천하는 <몬트의 그리스도 수난도 >와 <그리스도의 변용>은 처참한 고통과 죽음을 구원과 부활의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하고자 한 라파엘로가 필생의 작품이었기에 5백년이 지난 지금도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있다.


(십자가의 INRI는 라틴어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로 번역되는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의 라틴어 약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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