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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김 Jul 11. 2019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에 사는 걸까?

종종 심심풀이로 우주 정거장에서 찍는 지구를 라이브로 송출해주는 NASA의 유튜브 채널을 보기도 한다. 그러면 아프리카 대륙 두세 개를 붙여놓은 정도를 방에서 모니터로도 볼 수 있다. 밤의 뉴욕 위라도 지나갈 때면 도시의 빛이 모여 하나의 장관을 이루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사는 지구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하고 놀란다. 제프리 웨스트가 그랬던가, 복잡계(Complex System)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좁은 지구에 인구는 유한 시간 안에 무한하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화성 이주와 같은 대단한 계획을 세워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 사는 걸까 하고 궁금해진다. 확실한 건 내 초등학교 동창 중에 하나는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산다. 잠을 어디서 자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곳에서 커피도 마시고 여행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 친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간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쭉 당신이 건강하셨던 30대 시절을 보금자리로 정하신 것 같다. 덕분에 할머니가 그때는 건강했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으며 그때로 돌아가면 바꿀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다.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이후로 어느 것도 새롭게 시작하지 않고 계시고,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신 적도 없다. 물론 건강은 더 안 좋아지셨지만 적어도 근 몇 년 전까지는 두 다리로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으셨다. 슬프게도 최근엔 그것도 힘들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만 모아 놓은 곳에서 그것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기도하면서 산다. 사람들인테레 그걸 내일이나 미래라고 부르던가. 나 또한 인스타그램 피드나 과거나 미래 어느 중간을 부유하면서 지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현재에 사는 사람들은 이제 없다.


현재에 산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계절은 때맞춰 변하지만 세상은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여름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여름옷을 팔 생각을 한다면 바보라고 손가락질당한다. 아이러니하게 성과주의 사회에서 만족이라는 것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가지지 못한 자는 환영받지 못하고 가지려는 자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그러니 이제는 무언가를 이루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가난해진 사람들은 상처 받고 만다. 외로워진 사람들은 서로를 토닥여주지만 안타깝게도 경쟁 사회에서 빈곤의 결합은 빈곤의 재생산만 가능하게 한다. 학교 다닐 적에 급식을 받으려고 줄을 서면 키 순이든, 가나다 순이든 내가 먼저 먹거나 아니면 내가 누군가의 뒤에 서야 했다. 아무튼 동시에 밥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적응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같은 사람이 되기 전에는 이룰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부지런한 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 유럽 여행 가는 사람, 영어가 유창한 사람, 발성이 좋은 사람, 인간관계가 두루두루 원만한 사람, 노래를 잘하고 끼가 많은 사람이 되어 보려고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고, 전부 성공하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수확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이 되려는 기나긴 여정은 자체적으로 끝을 내버렸는데 왜냐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 스스로가 되는 것이 훨씬 쉽고 재밌다는 비밀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뭐, 나름 어느 정도는 가족 대대로 음치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걸 포기한 것도 결정적 계기였다. 그래서 이제는 완전히 게으름뱅이로 분류되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사람들과 다른 질문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한다. 


퇴근길, 아파트 상가 내 세탁소. 


이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유지되는 것은 퇴근길에 있는 오래된 세탁소 덕분일지도 모른다. 가게는 내가 이 동네에 살기 한참 전부터 같은 자리에 있어왔다. 간판, 문틀, 세탁기 모두 낡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고 인테리어와 함께 오랫동안 가게 주인도 바뀌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럭저럭 가게가 유지되는 모양이다. 나와는 크게 상관없지만 그냥 그것이 사리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자리에 있어줄 거라는 믿음에 내 마음은 안도감을 느낀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사람마저 바뀌어버리는 세상에 구태여 바꾸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이 있다.  나 하나쯤 그 대열에 낀다고 별 일이 생길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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