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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김 May 16. 2020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독후감

생각이나 아이디어의 영속성은 유리알과 같다. 어제의 생각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다. 지난 세기에 쓰인 책이 보여주는 통찰력은 오늘날에 올수록 낡아지기는 커녕 여전히 유효하며 훨씬 날카롭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에 대한 요약과 감상을 남긴다. 일부 문장은 그대로 인용했으며, 개인적인 해석과 구분하지 않고 적었다.


인간의 본질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아이처럼 공이 굴러가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다. 대신에 높은 빌딩과 사회적 직위나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한다. 인류는 마귀나 가나안족의 우상숭배를 극복한 줄 알지만, 바뀐 것은 대상뿐이다. 우리는 사물을 숭배한다.


인간과 사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질>이 당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18세기 철학자까지 인간의 본질을 들먹이며 노예제도를 변호하고 국수주의와 인종주의를 탄생시켰다. 히틀러는 특정 민족의 본질이 우월하다는 주장으로 6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렇다면 인간 본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까?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본질이 없다면 모든 인간에게 타당한 가치와 규범도 약속할 수 없고,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 심리학과 인류학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본질을 정적 요인과 가변적 요인을 통해 설명한다. 인류가 존재한 이후 인간에게 변치 않고 동일하게 남는 정적 요인, 즉 본성이 있고. 창의, 생산, 진보를 가능케  하는 가변적 요인이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동시에 자연을 초월하기 때문에 '자연의 변덕'이다. 이러한 모순은 갈등을 낳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찾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을 만드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자유는 사실이라기보다 가능성이다.


자유처럼 이중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말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그로 인해 수많은 선동가가 우리를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다고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공룡이나 변신 로봇을 좋아하지 않을 자유가 주어진 남자아이가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자유 두 가지 가능성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 비합리적 열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자유는 사실이라기보다 가능성이다. 플라톤의 동굴은 좋은 비유다. 동굴 속에 사람들이 갇혀있다. 그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고 실체라 믿는다. 자기 발의 족쇄를 끊고 동굴의 가파른 벽을 기어올라 태양을 보겠다는 노력이 없다면 자유가 존재할까? 자유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피곤한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 염세주의자는 자유에 도달할 수 없다. 심리학적으로, 퇴보에 빠지지 않고 전진하고 진보하려 노력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현대인은 모두 자아실현을 염원한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안다는 착각에 빠지지만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우리는 목표라고 우기는 것을 위해 엄청난 모험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지만 목표 자체를 정하는 데는 심각한 공포를 느낀다. 혼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증거라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우리는 모든 에너지를 가지고 싶은 것을 갖는데 쏟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는 묻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씩 의문이 밀려들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 자리에 오르면? 이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허망한 목표를 좇아 달리는 건 아닐까?" 현대인은 이런 불안이 떠올리면 최대한 빨리 떨쳐버리려고 노력한다. 그런 의문으로 괴로운 것은 그저 피곤하거나 기분이 울적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현대인은 깊은 무력감에 빠져있으며, 본질적으로 무력감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무력감을 학습한다. 아이들도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고 믿는가? 아이들은 창의적 사고에 능숙하다. 그들은 자신의 지적능력과 감정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결합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감정적'이라는 말은 불균형이라는 뜻으로, 나아가 정신 장애로 해석된다. 많은 정신의학자들은 너무 슬프거나 너무 분노하거나 너무 흥분하지 않는 '정상적' 인격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들은 '유아적' 혹은 '신경증'과 같은 단어를 이용해 '정상'이 아닌 인성 유형과 특징을 비난하였다. 이런 식의 영향은 대놓고 욕을 하는 과거보다 더 위험하다. 누가 과연 '과학'에 저항할 수 있겠는가? '유아적'인 아이들의 독창적 생각을 어른들은 시시하게 여긴다.


아이들은 대신에 '자신의 것' 아닌 감정을 학습한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무비판적으로 친절하며 미소를 지어야 한다. 교육이 다 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사회적 압력이 해결해준다. 웨이트리스, 세일즈맨, 의사가 되어 서비스를 팔려면 상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친절과 명랑, 미소는 전기 스위치처럼 능숙하게 켜고 끌 줄 알아야 한다. 물론 그것이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짜 감정과 자발적 친절을 구분하는 법도 잃어버린다. 진짜 친절 역시 가짜 감정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아이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손색이 없는 특정한 장난감이 있다. 바로 장난감 전화기다. 장난감 전화기는 진짜 전화기와 똑같이 생겼고 아이는 수화기를 들어 번호를 누를 수 있다. 다만 그 누구와도 연결이 안 된다. 아이는 누구와도 연락을 할 수 없다. 전화를 하는 어른과 똑같이 행동했음에도 아이의 행위는 그 어떤 결과도, 영향력도 없다. 이러한 아이의 무력감은 어른이 되어서도 반복된다.

무력감에 빠진 사람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나는 어떤 것도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어떤 것도 움직일 수 없으며 나의 의지로 외부 세계나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아무도 나를 진지하게 대우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공기와 같다. 이 사람들은 누군가 그를 사랑하거나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자신을 바꾸는 것보다 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은 없다.


갈등이 해롭다는 생각은 오류다.


어젯밤, 제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끊이지 않는 수많은 논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교내 게시판에 누군가 자전거를 손 놓고 타는 사람들은 비판하는 글을 올렸고, 그 뒤로 자전거 타는 사람의 자유라는 의견과 보행자의 안전을 배려할 줄 모르는 몰상식한 사람들이라며 끊이지 않는 댓글과 새로운 글이 등록되었다. 우리는 이런 식의 논쟁은 훨씬 다양하고 심각한 양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대부분 필요 이상으로 과열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개 사람들은 문제와 관련해 자신이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권위(주로 학계나 정부가, 적어도 공식 기관이 인정한 사실)가 충분한 사실이 아닌 이상 타인의 생각은 들을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토론장에서 지적인 논의를 추구하는 현대인 집단은 아이러니하게 서로를 헐뜯거나 비난을 무한대로 이어갈 뿐이다.


제이는 상상으로 너무 과열된 토론장에 웃음 터지게 하는 가상의 기능을 추가했다. 순간 웃느라 맥이 빠져서 자신들이 불필요하게 끓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대화의 본래 목적이 지적인 면모를 뽐내거나 누군가를 상처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그리함으로써 자신을 존중받는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야 한다. 발전된 기술을 계속해서 갈등을 낳는다. 우리는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우리의 지적인 능력과 감각에서 비롯된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을 활용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야 한다. 


에리히 프롬은 '진짜 삶'을 강조한다. 회사와 학교와 식당과 뉴스에선 갈등을 강조하고 우리는 이를 모두 무시하려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진짜 삶을 얻기 위해서는 용기 내어 갈등을 마주하고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믿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믿음이 우리의 용기에 힘을 더 해줄 것이다.



에리히 프롬 지음, 장혜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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