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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김 Jun 25. 2019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직업이라니

작년까지는 누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응 대학원 다녀' 하면 그만이었는데 요즘은 '박사해?'라는 말에 그렇다고 하긴 조금 복잡해져서, 그리고 더위 먹고 편두통도 찾아와서 일하기도 싫은 핑계에, 그리고 브런치에도 가볍게 글 써보고 싶어서 그냥 써보는 아무 말.


아무래도 십 년만 더 지나면 골동품점에 '직업'이라는 말을 팔 것만 같은 요즘 세상에 직업이라는 건 되게 흐릿한 개념이지만 그래도 굳이 설명해보자면 친구나 가족이 아닌 조금 어색하고 모르는 사람들한테 불리는 이름 정도 아닐까. 예를 들어 우리 엄마는 집에서는 엄마나 여보지만 밖에서는 약사님이고 초등학교 친구 관해는 아마 파일럿이나 기장님이라고 불릴 것 같다. 뭐 딱히 직업이 없는 아빠는 사장님이라고 사람들이 불러주는 것 같으니 뭐라고 부르는지랑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다른 건 분명한 것 같다. 아무튼 직업이라 부를만한 것이 너무나 많지만 각자가 다 고유의 명칭이 있다. 그러나 ‘과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일은 몇 개 되지 않는 것 같다. 예컨대 박사과정이라던가.


대부분의 직업은 이름을 다는 순간 그걸로 충분한 자격이 된다. 예를 들어 내가 목수라고 하면, 형틀이나 프레이머, 건축 구조 같은 어려운 공부의 과정을 거쳐 목수가 된 순간 그걸로 끝이다. 물론 일을 조금 더 잘하거나, 보수를 실력에 따라서 다르게 받을 수도 있지만 그건 ‘잘하는 목수’ 혹은 ‘못하는 목수’라고 뒤에 붙는 말이 달라질 뿐 본질이 목수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못질을 조금 못한다고 갑자기 음식점 사장님이라고 불리진 않는다.


그러나 박사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과정이 아니라 결과다. 아무리 수고롭고 힘들고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한들 박사가 되지 못하면 박사과정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열정이나 보람, 인간으로서의 성장 같은 무언가를 태그로 붙일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으로서의 인정이지 사회나 시스템 차원에서 해주는 보상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는 조금, 아니 심각하게 무거운 편이다. 아니면 너무 가벼워서 아무 의미가 없어져버린다거나. 비슷한 개념을 찾자면 인턴 같은 걸 예로 들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긴 인턴이라고 부르기엔 적어도 4년, 길게는 6년은 있어야 한다. 나야 뭐 카이스트 사정밖에 잘 모르긴 하지만 얼마 전에 듣기로는 미술 쪽은 기본 10년은 하는 곳도 있다고 하더라. 그렇다고 인턴보다 월급을 더 주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말이다. 


따라서 척박한 대학원 생활에 박사과정-인간 들은 과정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결과를 위해서 홀로 달린다. 그것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만 산 사람이 바깥의 사람에게 길을 알려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과마다 다르겠지만 이 달리기는 보통 '이만큼 쑥과 마늘을 먹으며 버텼다니 인정해주마'라고 자격을 받으면 마칠 수 있는데, 보통 이러한 자격을 주는 사람들은 이미 동굴 밖으로 나간 '박사(혹은 교수)'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동굴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아무튼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 이 부분은 쓰지 않겠다. 겨우겨우 버티고 나간 동굴 밖의 열매가 얼마나 달콤한가.. 에 대해야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것도 아직 동굴 안 사람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박사과정은 이정표 없는 도로를 운전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 내게 뭘 하냐고 묻는다면 목적 지향적으로 대답하기가 어렵다. 당부하건대 여러분은 야생의 대학원생을 만난다면 '언제 졸업해?', '졸업하고 뭐해?' 같은 질문을 아끼고 지나친 스트레스로 당이 떨어진 그들에게 달고 맛있는 음식을 건네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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