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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김 Dec 15. 2022

‘UX리서처’ 말고 ‘리서치 팀’으로 일하기

일 년간의 우당탕탕 리서치팀 집짓기

UX리서처로 일하기 → 리서치팀으로 일하기


같은 팀에서 일한 지 2년 차. 올해도 이런저런 고객 리서치를 했다.


하는 일은 달라진 것이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고객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음성이든 숫자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팀에 전달했다.’


달라진 것은 이것이다.   



1. 팀이 생겼다. 이제는 제품 팀에 속하지 않고 단독적인 리서치팀으로 일하게 되었다. Spotify 리서치 팀에서  따서 Insights라고 이름도 지어주었다.

2. 작은 규모지만, 데이터 분석가와 UX리서처가 한 팀이다. 나를 포함해서 셋이다.


그깟 이름이 뭐 대수라고. 팀 이름이 바뀐 것에 아무도 관심 없다. 단순히 명패 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면 나는 왜 굳이 새롭게 팀 이름을 붙였는가. 역할이 달라지면 일하는 방식도, 성과도 달리 생각해야 한다.


‘리서처’로 일할 때는 ‘리서치를 잘하는 것’이 성과였다. 좀 더 엄밀하게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가공하고 다듬는 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러나 ‘리서치 팀’을 맡게 되면서 성과를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했다.


Q. 리서처가 아니라 리서치팀의 성과는 어떻게 측정하고 만들지?

Q. 그리고, 성과를 잘 내려면 어떤 부분에서 내가 달라져야 하지?


그리고 진짜로 일 년 내내 이 두 가지 질문을 고도화하고, 대답하는 일만 했다. 다는 못하지만, 간단하게 공유해보려고 한다.




Q. 리서처가 아니라 리서치팀의 성과는 어떻게 측정하고 만들지?



리서치 ‘팀’의 목표와 역할, 프로세스 만들기

조직의 3대 요소는 목표, 역할, 프로세스다. 따라서 이 세 가지로 나눠서 조직의 집짓기를 시작했다. 1인가구 900만 시대다. 혼자 살더라도 그럴듯한 집에서 살고 싶은데, 무려 셋이나 일하는데 아무렇게나 일한 순 없지 않는가.




1) 목표 :  “인사이트는 성과가 아니다.”


팀으로 일한다는 것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준 높은 유저 리서치를 한다’는 절대 조직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개인이 해야 할 ‘역할’ 이지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역할은 팀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저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디자인을 하는 것입니다.” 같은 다짐은 좋은 말이다. 하지만 조직은 내가 어떤 디자인을 하는지 관심이 없다. 대표가 듣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저의 목표는 제품을 쓰는 고객이 감동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는 세계 최고의 디자인을 할 것입니다.”


팀을 세팅하면서 여러 사례 조사를 했고(Spotify와 Canva의 사례가 도움이 가장 컸다.) 데이터 분석가와 UX리서처를 한 팀으로 매니징 했던 분의 조언을 참고해서 팀의 목표를 딱 두 가지로 정했다.   


1. 리서치/분석을 수행하여 얻은 데이터를 임팩트 있는 인사이트로 가꾸기.

2. 인사이트로 조직 전체의 의사결정 성과 높이기


그러므로 리서치팀의 성과 = 의사결정 성과가 되었다.



2) 역할 : “역할은 하는 일의 나열이 아니다.”


역할은 하는 일의 집합이 아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Insights팀의 목표는 ‘의사결정 성과 높이기’였다. 이 목표 자체가 팀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리서치/분석하기를 잘하려면 UX리서처가 고객 인터뷰를 (혹은 다른 방법론을) 잘 수행하고, 데이터 분석가가 데이터를 잘 수집하고, 분석하고, 시각화하면 된다. 그런데 조직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는가?

팀을 세팅하면서 UX리서처와 데이터 분석가 모두에게 새로운 역할을 추가했다.   


조직의 의사결정을 이해하고, 각 이해관계자 관점 및 요구 이해하기


의사결정 성과를 높이려면, 의사결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결정하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의사결정 성과를 높일 수 있나?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 주요 의사결정을 팔로우 업하는 자리를 만들거나, 팔로우 업하는 활동을 업무에 추가했다. 이는 리서치팀이 주도적으로 ‘조직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의사결정’을 찾아서 일을 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


3) 프로세스, “프로세스가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다.”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이전에 쓴 글도 있거니와 퍼블리에도 기고한 글('데이터 파워'를 잘 내는 조직의 비밀, UX 리서치)이 있어서 길게 쓰진 않겠다. 핵심은 리서치나 분석이 조직 전체에 스며들게끔 하는 ‘참여와 공감’을 원칙으로 하는 프로세스를 만들고, 지키며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운영하면서 느낀 점은, 규칙이나 체계를 만드는 것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매우 어렵고도 도전적인 부분이다. 만들어 놓은 내가 지키지 않으면, 혹은 지키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어떤 팀원이 그렇게 일하려고 하겠는가.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지만 주기적으로 회고하면서 나아가고 있다. 그래도 스스로 칭찬할 점은, 지금 스케일에서는 꽤나 잘 지켜진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협업하는 사람의 수’가 적을 때는 프로세스를 굳이 만들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프로세스가 오히려 일을 방해한다.



야심한 밤, 두 명이서 라면 하나를 끓인다고 가정해보자. 물을 끓이는 사람, 봉지를 뜯는 사람, 수프 양을 결정하는 사람을 나누고 그 순서(프로세스)를 정하고 라면을 끓여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 그러지 않는가? 그러는 시간에 그냥 끓이는 게 빠르기 때문이다. 프로세스는 목표와 역할이 명확하고 서로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라면을 100명이 먹어야 한다면, 사람 10명은 필요하다. 10명이 넘게 일할 땐 상황이 다르다. 역할과 프로세스가 명확하지 않으면 서로 물을 붓다가 맹맹해지거나, 라면을 다 끓였는데 젓가락이 준비되지 않아 찾다가 라면이 다 불어버릴 것이다.


‘리서처’로 일할 때는 협업 상대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조직이 매우 작았다.) 그러나 리서치 팀으로 일하면서 협업 상대(팀)는 훨씬 많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세스를 다듬는 작업을 연초에 서둘렀고, 나머지 1년은 다듬고 발전해나가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리서치팀 내부는 여전히 3명이기 때문에 (라면 하나 끓이기 상황) 내부에서 협업할 때는 목표와 역할만 나누고 프로세스는 아직 느슨하게 두고 있다.



Q. 그리고, 성과를 잘 내려면 어떤 부분에서 나/팀이 달라져야 하지?


옆 팀의 역량, 레버리지 해서 리서치하기 : ‘따서 갚을게.’ 식 리서치를 하자.


‘리서치팀’으로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내가 리서치에서 기여하는 바가 적어졌다는 것이다.(엥..?)


나 혼자 무언가를 분석하는 것보다 둘이 하나의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토론을 통해 데이터의 해석이 더 풍부해진다. 마찬가지로 ‘리서치팀’도 다른 팀의 관점과 역량을 흡수하면 더 좋은 리서치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역량과 관점을 흡수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의 답은 ‘그냥 같이 일해버리기’였다. 제품 개발은 혼자 못한다. 디자이너도, 개발자도, 기획자도, 마케터도, 모두가 협업해야 한다. 그렇다면 리서치는 왜 우리끼리(리서처, 분석가) 하나?


돌아보니, 리서치팀의 성과를 ‘내’ 성과라고 부르기엔 참으로 애매하다. 왜냐하면 나보다 다른 사람이 한 일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저기요 00님들, 제가 이런이런 기능을 검증하는 리서치하려고 하는데 저 대신 마케팅도 해주시고 프로토타입 디자인도 좀 해주시고.. 개발도 좀 해주시고 그러시면 안 될까요?”

“제가 왜요?”

“2배로 따서 갚을게요.”

“….?”


정말 이렇게 말하진 않았다. 근데 정말 2배로 가치 있는 일을 해야 그들이 협조해준다. 실제로 거의 모든 팀의 협업을 통해 진행한 리서치가 있었다. 제품 개발이 바쁜 시기를 틈타 프로토타입 리서치 아이디어를 냈고, 운영팀이 흔쾌히 리소스를 투입해주었다. 개발도, 마케팅도, 디자인과 운영, 콘텐츠 제작 모두 필요한 꽤 무거운 리서치였다. (그만큼 중요했다.)


자세히 공유하기는 어렵지만, 리서치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선제적인 행동, 적극적인 도움을 통해 좋은 성과를 냈다. 조직이 나아갈 핵심 고객을 개발했고, 제품의 가치제안을 검증했으며, 새로운 가치제안을 추가하기 위한 빠른 아이디어 검증을 위해 거의 모든 직군의 힘을 빌렸다. 나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뭐하러 그 일을 할까? 그 사람들의 능력을 아웃 소싱해서 임팩트를 키우는 게 훨씬 좋다. 이런 게, 결과를 돌이켜보니 네트워킹 드리븐이라는 방식이라고 한다.  연봉 10배가 오르는 비법이라는데 그건 좀 오버인 것 같고..




1년 동안 ‘리서치 팀’을 운영하면서 배운 것


1. 일 뒤에 사람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여러 번 이야기하는 말이지만, 리서치를 잘하려면 리서치 하나 하는 것보다 의사결정자와 커피를 마시는 편이 더 좋은 성과가 나온다.


의사결정은 누가 하는가? CDO, CEO, CPO.. 조직마다 다르겠지만 요점은 리서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한다. ‘사람이 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절대로 ‘디자인팀’이나 ‘PM팀’이 의사 결정하지 않는다. 디자이너 00님, PM 00님, 대표님이 의사 결정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의’ 의사결정을 돕고 있는 것인지, 그 사람이 진지하게 그 의사결정을 고민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 사람이 깜빡하거나 잊고 있는 소중한 고객 경험은 무엇인지 자주 대화해서 알려줘야 한다.



2. 목적, 목표에 얼라인 시키고 공감시켜서 ‘각자가’ 일을 잘할 수 있게 해 주기.


리서치팀이 다른 팀의 리소스를 쓰게 될 경우, 일을 주도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내 맘대로’ 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000 검증을 하려니 디자인을 이러저러하게 해 주세요 ~ 라던가. 그러나 그러지 않는 편이 더 결과가 좋다.


협업하는 이유는 쟤가 나보다 잘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일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일이 어떤 형태로 흘러갈지 까지 정하고 싶다면 그건 욕심이다. (내 개인의 능력이 모두보다 높고, 시간도 충분하다면 협업은 시간 낭비다. 애초에 서로의 강점이 다르지 않은 멤버 구성이라면 채용 자체가 잘못되었다. 채용으로 통해 강점이 보완되는 것이 아니라 ‘추가’ 되어야 한다.)


목적, 목표에 대한 얼라인먼트를 만들면 협업 상대자는 더 좋은 아이디어를 스스로 고민해서 가져온다. (개꿀 ~)



3) 남을 도와주겠다는 태도가 중요하다.


기부는 안 해도 팀원은 돕자. 왜 바빠 죽겠는데 남의 일을 도와주는가?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 편이 시간이 더 절약되기 때문이다.


공통의 목표가 잘 설정되어있다면,‘ 내 일’을 잘하는 게 아니라 ‘쟤’ 일을 도와주는 것이 좋다. 왜냐면 그의 일을 도움으로써 내 일이 더 빨라지기 때문이다. 00 영역은 네가, 00 영역은 제가 할게요. 보다는 “당신의 고민이 무엇인가요? 제가 어떻게 000한 방법으로 도와드릴 수 있는데(혹은 어떤 도움이 필요하세요?)라는 말만 건네도 협업이 빨라진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어떻게 하면 제 리서치가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요?라는 말에 누군가 진지하게 대답해줄 것 같은가? 같은 말도 다르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당신의 의사결정을 도와줄 수 있을까요? 당신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도움받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램프의 요정은 자신이 무엇이 할 수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 알라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을 뿐이다.





조직의 수가 늘어나면 ‘성장’ 이라고들 많이 말하는 것 같다. 작년엔 100명이었는데 올해는 몇백 명이고 어쩌고 저쩌고.. 모두 맞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리서처나 분석가는 수 보다는 효율이 훨씬 중요한 직군이다. 1점짜리 분석 10개를 하는 방법도 있고, 100점짜리 하나, 10점짜리 9개를 할 수도 있다.


올해는 레버리지 해서 ‘리서치 효율을 높일 준비’를 마쳤다면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갖춰둔 프로세스와 역량을 통해 10배, 100배짜리 의사결정을 만드는 팀이 되는 것이 목표다.


우당탕탕 리서치팀 빌딩 하기 회고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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