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찾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퇴사를 결심하는 순간까지 나는 무수히 많은 이유를 머릿속에서 되뇌었다.
안정적인 직장,
익숙한 일상,
그리고 보장된 월급.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미련 없이 퇴사하고 무작정 제주로 떠났다.
처음 마주한 제주의 공기는 도시에서 느낄 수 없던 낯선 자유로움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고민을 안겨주었다.
집, 생활비 그리고 생계 문제.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익숙함을 벗어나야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서울이 좋았다.
지방에서 나고 자랐던 나는 상경하는 것이 하나의 꿈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마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거대한 무대에 올라선 기분이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지하철, 새벽에도 환하게 불 켜진 거리, 수많은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수십 개의 이력서를 넣었고,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렇게 회사에 입사했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내 생각보다 고단했다.
매일 야근이 이어졌다.
시간에 쫓기며 문서를 작성하고,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끝없는 수정 작업을 했다.
처음에는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점점 땅거미 진 듯 눈 밑 다크서클이 짙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언제부턴가 거울 속에는 웃음이 사라졌고, 무표정하게 수염 자란 아저씨만이 있었다.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문득 떠나고 싶어졌다. 시끄럽고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
막연하게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즈음 노래가 들려왔다.
떠나요 둘이서
힘들게 별로 없어요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그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지쳤잖아요
(중략)
(오연준, ‘제주도의 푸른 밤’ 中)
노래를 듣다가 제주를 떠올렸다.
바다가 보고 싶었고, 조금은 천천히 살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고민 끝에 퇴사 버튼을 눌렀다!
처음부터 제주에서 살겠다고 결심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한 달만 살아보고 다시 서울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려 첫발을 내디딘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공항을 나서자 불어오는 바람은 서울과 달랐다.
바닷바람에 섞인 짠 내음,
한적한 도로,
높이 뻗은 야자수.
제주도는 생각보다 더 여유롭고 아름다웠다.
무엇보다도 혼자 떠난 첫 여행이기에 모든 것이 낯설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낯선 골목을 걸으며,
잔잔한 음악이 들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느긋하게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머리칼을 어지럽히는 것마저도 여유로웠다. 서울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이 여유가 이상하리만큼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흘렀다. 예상보다 더 제주에 머무르고 싶어졌다.
어느 날은 태풍이 부는 밤이었다. 창밖으로 거센 비바람이 창을 두드렸다.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어둡고 소란스러운 난장판이었다.
나는 고요한 방 안에서 조용히 재즈를 틀어둔 채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창밖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는 풍경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걱정과 불안이 전부 멀어지는 듯했다.
조금은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 하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조바심이 사라졌다. 이 여유를 조금 더 즐기고 싶었다.
결국,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대신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