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
막상 제주에 머물기로 결심했지만, 현실적인 고민이 밀려왔다. 당장 생활비를 어떻게 벌어야 할지, 어디서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이 없었다.
그러던 중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탭을 구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일을 도와주고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말에 생활비라도 아껴보자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스탭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히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스탭 생활이 내게 잘 맞았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낯선 공간이 점점 익숙한 집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어느새 스탭 생활이 길어졌고, 자연스럽게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고민하게 되었다.
마침내, 직접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게 되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사람'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제주에 오고, 누군가는 잠시 쉬어가기 위해 온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나는 무수히 많은 삶을 경험한다.
어떤 이는 지쳐서 퇴사를 고민하고,
어떤 이는 헤어져서 힘들어하고,
어떤 이는 인생의 전환점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었다.
여행자들의 사연은 다양했지만,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 정말 많은 이들과 인연을 맺었고 또 끊겼다.
학생, 취준생, 사회초년생, 의사, 사업가, 군인, 소방관…
각자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잠시 이곳에 머물렀다.
누군가는 홀로 여행을 와 자유를 만끽했고, 누군가는 일상의 쉼표를 찍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때로는 잊고 싶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위해 온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낯선 여행자가 친구가 되고, 때로는 가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그중에도 안 좋은 기억을 남기고 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정말 멋있고 배울 점 많은 이들이 남긴 좋은 추억들이 더 많았다. 그들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이 즐거웠고, 같이 웃는 순간들이 좋았다.
그렇게 다양한 인연들이 이곳을 스쳐 지나갔다. 정이 많은 내게는 이별들이 못내 아쉬웠고 힘들었다. 밤새 실컷 웃다가도, 그들이 떠난 후 조용해진 숙소를 보면 마음이 허전해지곤 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적응이 된 건지 지금은 받아들이고 있다.
인연은 만들어지고 헤어지며,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이라는 걸.
그래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손님들이 있다.
그분은 중후하면서도 인자한 인상의 60대 여성분이셨다.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셨고, 제주올레길을 한 바퀴 돌고 있다고 했다.
첫인상부터 배울 점이 많아 보이는 분이었다. 나이와 직업을 떠나 여유 있는 언행은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분의 눈은 배우고 이해하려는 의지가 강한 듯 반짝였고 힘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건, 자신이 많이 안다고 함부로 남에게 충고하고 깎아내리는 법이 없었다.
대화할 때면 차분하게 끝까지 들어주었고, 상대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고 칭찬을 건넸다. 그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나도 나중에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속으로 질문을 던졌지만 가능할지는 의문이었다. 어떻게 절제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분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듯, 20대 손님들과도 금세 어울리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다.
서로 다른 세대였지만, 그날 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이야기로 웃고 떠들었다.
“미성년자도 숙박할 수 있나요?”
검은색 동그란 안경을 쓴 덩치 큰 남자아이였다. 인상이 약간 귀여운 곰 같은 친구였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교성이 좋았고 할 줄 아는 것들이 많았다.
마술이면 마술, 타로면 타로, 뭐든 금방 배우고 수준급으로 익혔다. 과학고를 다니다 최연소 다이빙 강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제주도로 다이빙을 배우러 내려온 친구였다.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한 달 두 달, 한달살이를 이어가다가 스태프로 함께하게 되었다. 띠동갑 나이 차이가 나지만 지금은 형, 동생 하며 지내는 사이. 긍정적이고 나이에 맞지 않게 속 깊은 친구라 배울 점이 많았다.
다만,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2D 캐릭터에 빠져 현실 여자에게 관심이 적다는 것.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을 나이인데, 정말 2D 캐릭터를 좋아하는 동생.
항상 그 점이 아쉽지만, 그래도 본인이 행복하면 된 거겠지!
지금은 군대에 가 있지만, 이 글을 통해 안부를 물어본다.
"아직도 군대야? 언제 전역하냐?“
“형, 나 나중에 육지 올라가면 중국집 차릴 거예요.”
스태프로 함께한 동생이 어느 날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처럼 육지 생활이 버거워 잠시 쉬고 싶어서 제주로 내려온 친구였고, 붙임성이 좋아 형형 거리며 주변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다.
장난스럽게 말하면서도, 눈빛만큼은 진지했다. 사업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며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나는 나중에 가게를 열면 축하 화환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곳에서 몇 개월간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돌아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에 잘 지내고 있겠거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었다.
“형, 이게 뭐예요?”
어떤 스태프가 문자를 보여주면서 한 말이었다.
뭔가 보면 안 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비 때문인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스태프의 굳은 표정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왜? 뭔데?”
애써 별일 아니겠지 생각하면서 문자를 봤다.
문자에는 정말 믿기지 않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항상 밝게 웃고 떠들던 동생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이야기.
너무 갑작스러웠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아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한편으론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삶이 무료해 몰래카메라로 놀리는 건가? 만나면 혼내줘야겠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을 보고서야 실감이 났다.
그때서야 눈물이 터졌다.
개업 축하 화환을 보내기로 했었는데,
내가 보낸 화환은 장례식장 부조 화환이었다.
“뭐가 그렇게 급해서 먼저 갔냐… 거기서는 행복하게 잘 지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