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서로 인연이 된 사람들
게스트하우스에는 매일 다양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단순한 여행자로 왔다가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뜻밖의 인연으로 연애를 시작하고,
심지어 결혼까지 이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연애하는 게 가능해?”
“게스트하우스에서 사랑이 싹틀 수 있어?”
그런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연을 만들어 본 사람들은 안다.
이 공간에서는 가능하다고, 나는 그런 인연들을 수도 없이 봤으니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인연들이 만들어진다.
그날도 한 팀이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왔다.
“저희, 15년 지기 친구예요!”
여자 두 명, 남자 한 명.
15년이나 된 절친한 친구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중 한 여성은 개인사로 먼저 서울에 올라갔다.
결국, 남은 건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
얼마나 엮기 좋은가?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다? 없다?”
“남사친, 여사친이 진짜 가능하냐?”
파티에 있던 사람들이 둘을 먹잇감으로 여겼는지 그들에게 몰려들어 질문했다.
다들 너도나도 한 마디씩 거들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고 둘을 엮기 시작했다.
“혹시 둘이 썸 아니에요?”
하지만 그들은 단호했다.
“절대 아니에요!”
“저희 진짜 친구예요!”
“저희 같은 방에서 알몸으로 있어도 절대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급기야 여자분이 정색하며 너무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아쉽지만(?) 더는 장난을 칠 수 없었다. 그래도 덕분에 분위기가 한껏 풀려 그날 파티는 더없이 유쾌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
게스트하우스에 여자 손님이 다시 방문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한마디를 건넸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네? 뭐가요?”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때 남사친이랑 왔었잖아요?
그날 그렇게 엮이고 분위기 좋아져서 같이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술김에 용기 내서 고백했어요!
그리고 …
지금은 진지하게 연애 중입니다.”
15년 지기였던 친구들이 이제는 진지하게 만나는 연인이 되었다고 했다.
처음부터 결혼까지 생각하고 고백한 거였는데, 다행히 남사친이 받아줬다고 …
“나중에 결혼할 때 청첩장 나오면 보내드릴게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세상에 영원한 친구는 없구나.’
연락이 끊기거나, 결혼하거나.
무더운 여름. 그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전날 게스트하우스에서 신나게 놀던 손님들과 함께 해수욕장에 놀러 갔다. 다 같이 바다로 나가 물놀이도 하고, 서핑도 즐기면서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
그날 유독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훈훈한 외모를 가진 지인의 친한 동생,
그리고 혼자 여행 온 밝고 쾌활한 여자 손님.
둘은 잘 어울렸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듯, 없는 듯.
뭔가 미묘한 기류가 느껴졌지만,
나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쏠려 있어 정신이 없었다.
따뜻한 모래사장에서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신나게 놀았다.
무더운 여름 바다에서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았다.
며칠 뒤. SNS로 둘이 연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오? 나 말고도 커플이 생겼네? ”
‘그런데 괜찮을까?’
서로 사는 곳이 멀어 금방 끝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둘은 오랜 연애 끝에 작년 6월,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보내왔다.
사랑의 끝은 결혼 아니면, 이별이라고 하지 않는가?
같은 날 연인이 되었는데 이들은 결혼에 성공했고, 나는 헤어졌던 게 아쉬우면서 부러웠다.
우리 게스트하우스에서 시작된 인연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니.
그 소식이 너무 기뻐서,
당연히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주려 했다.
하지만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전 연인이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는 아직 당당하게 그녀와 마주할 자신이 없었고, 준비도 되지 않았다.
결국,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지금까지도 내 마음 한구석을 답답하게 한다.
“얘들아, 결혼 축하해주지 못해 미안했고 행복하게 잘 살아! ”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일본인 유학생이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방문했다.
외모만 보면 누가 일본인인지 알아채기 어려웠다. 그만큼 한국어까지 자연스럽게 구사했으니까.
다만, 중간중간 어려운 단어는 이해하지 못해 되묻곤 했다. 그래도 밝고 사랑스러운 성격 덕분에 빠르게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남자 다섯 명이 눈에 띄게 호감을 보였다. 나는 남자들끼리 그녀를 쟁취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걸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연애한다면, 분명 저 남자 중 한 명과 연애할 것 같았다.
몇 달 뒤.
그녀가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남자친구와 함께 다시 제주로 놀러 왔다고 했다.
덕분에 연애하게 되었다며, 감사 인사도 전할 겸 겸사겸사 점심을 사주겠다고 했다.
공짜 밥이라니, 나는 흔쾌히 그들을 만나기로 했다.
배고픔을 참고 평소에 비싸서 자주 가지 못하던 가게로 향했다.
“어? 잠깐?”
그런데 이게 웬걸?
그녀와 함께 온 남자친구는 호감을 보이던 다섯 명 그 누구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에게 별다른 관심도 없어 보이고, 말도 주고받지 않았던 조용한 남자 손님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합이었다.
식사하며 자연스럽게 연애 이야기를 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고 싶었던 남자는 서울에서 그녀와 만났고, 종종 만나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연애로 이어졌다고 했다.
‘역시 연애는 끝까지 가는 사람이 이기는 건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고 그냥 얻어먹기엔 뭐해서 각자 계산하려고 카드를 꺼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온 한마디.
“어? 안 그러셔도 되는데. 사장님! 감사합니다.”
네…?
이거 뭔가 잘못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