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눈 뜬 러닝, 일상인가 유행인가
* 이 글은 패션 라이프스타일 웹 매거진 온큐레이션에 기고한 글입니다.
요즘 러너에게 필요한 능력 중 하나는 ‘오픈런’이다. 최근 마라톤 대회 참가 접수가 조기마감되고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함께 달리는 러닝 크루 모임이 늘어나는 등 러닝의 인기는 좀처럼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국내 러닝 인구는 1,000만명 이상 늘어나며 러닝 관련 제품의 수요도 크게 증가했다. 특히 인기 있는 브랜드의 러닝화는 출시 즉시 품절되는 것은 물론, 리셀 시장에서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최근 발매한 아식스의 ‘파리 시리즈’는 출시 당일 홈페이지에 1만명이 몰려 들어 서버가 마비되는 해프닝이 있었고, ‘온 러닝’과 ‘포스트아카이브팩션’가 협업하여 출시한 ‘클라우드몬스터 2’는 정가보다 2배 가량 높은 리셀가로 거래 되기도 했다. 이처럼 연이은 품절 대란에 러너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요 러닝화 발매 일정을 공유하고 발매 시간에 맞춰 일제히 구매하는 ‘오픈런’도 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러닝을 즐기며 동시에 SNS에 인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러닝 관련 아이템을 패션 트렌드로 인식하는 문화도 생기기 시작했다. 올해 5월 한 달 기준 무신사 내 러닝화 검색량이 전년 동기 대비 80%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은 러닝 패션의 급부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러닝을 패션에 접목하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나이키의 ‘윈드러너’는 80년대부터 러닝과 패션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고, '언더커버' 브랜드의 창립자 준 타카하시가 선보인 '가쿠소우(GYAKUSOU)' 라인 역시 러닝웨어에 하이패션의 감성을 입히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당시 대중의 폭넓은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실패했던 러닝 패션이 지금은 어떻게 대세가 될 수 있었을까? 이러한 변화엔 단순한 우연이 아닌 시대의 흐름과 소비자의 니즈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먼저 러닝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마라톤과 같은 행사를 참여하지 않는 이상 러닝을 취미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즉, 달리기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만이 러닝을 취미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코로나19 이후였다. 당시 외부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여러 사람과 만날 수 있고 활동적인 야외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여기에 러닝은 가장 적합한 운동이었다. 특별한 장비 없이도 시작할 수 있고, 경제적 부담도 적으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진입장벽이 낮은 운동이었다. 이때부터 러닝 클럽이 생기기 시작했고 러닝 크루 간 친목을 도모하며 러닝은 단순한 달리기를 넘어 커뮤니티의 역할을 했다. 그 결과, 러닝은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즐기는 대중적인 운동이 되었으며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러닝크루’를 검색하면 관련 해시태그 게시물이 누적 60만건에 달할 정도로 러닝에 진심인 사람이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