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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종지(배추전)

by 김경희

지름 6.5센티, 높이 3.5센티. 어른의 손아귀에 쏙 들어갈 만큼 자그맣고 아담한 그릇을 사람들은 종지라 부른다. 소꿉장난하는 계집애들이 가지고 놀기에 딱 좋을 크기이다 보니 그릇이라 부르기 마땅치 않고 어색하기도 하여 종지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이 물건의 얼굴색은 달빛에 비친 숫처녀의 얼굴마냥 희고 고와서 명정월색(明淨月色)이라 부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제사상에 올리려고 정성 들여 깎아 올린 밤톨마냥 어디 한구석 더 깎거나 덜 깎인 데 없이 둥그스레한 모양은 귀엽기까지 하다. 종지의 입술 부분에는 파란 띠를 선명하게 둘렀는데, 이는 필시 도공이 간장 종지를 만들면서 남자들 상에 주로 올라갈 것이라 생각하여 그러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종지를 손에 쥐고 뒤집어 보았다. 종지의 엉덩이에 초록색으로 무궁화가 찍혀있고 광주납세필이라는 글씨가 박혀있다. 광주에 있는 어느 도예가의 손에서 만들어 진 것인지, 광주 주변에서 만들어져서 광주에서 도장을 받았는지 모를 일이지만, 요즈음 어떤 물건에서도 납세필이라는 글자를 볼 수 없기에 오래된 물건임이 분명하다. 그동안 이 아담한 그릇에 짜디짠 간장을 숱하게 담아 상에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한구석 짠 물에 찌든 흔적 없이 멀쩡한 것을 보면 작은 물건이지만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지조를 굳건히 지켜온 게 분명하다.






나의 시어머님은 검소하기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상위 1% 안에 들어가실 분이셨다. 부엌살림을 한참 하실 때 밥 한 톨 버리는 일이 없어서 받아놓은 구정물마저 맑았다고 한다. 큰 아들이 취직해서 사다드린 원피스는 30년이 넘도록 입으셨다. 유행이 지났으니 이제 그만 입으시라고 해도 입을 때마다 새것이라고 우기셨으니 유행과는 아주 멀고도 먼 분이었다. 무엇보다 집안으로 들어온 어떤 물건이든 오래도록 사용하셨기 때문에 물건마다 세월의 흔적을 입고 낡을 데로 낡은 것이 많았다.



이렇게 얌전한 분도 나이가 드시니 치매가 왔다. 치매 초기에 정신이 오락가락하시기에 무엇이라도 어머님의 손 때 묻은 물건을 하나 간직하고 싶어서 찬장을 뒤졌다. 어머님의 부엌 살림살이는 오래된 것들이었지만 고풍스러운 그릇은 없었다. 찬장 안에 포개져 있는 투박한 국그릇과 밥사발은 너무 흔하게 생겨서 관심이 가지 않았다. 손바닥만 한 하얀 접시는 촌스럽게 느껴졌다. 이리저리 눈을 굴려도 가지고 싶은 물건을 찾지 못한 아쉬운 마음으로 찬장 문을 닫다가 구석에 박혀 있던 작은 종지가 눈에 띄었다.



꺼내 들고 한 손으로 감싸 쥐니 손아귀 안으로 쏙 들어왔다. 앙증맞기까지 한 이런 물건이라면 집에 가져다 두어도 자리 차지할 일 없으니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골동품을 찾아낸 양 의기양양하게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저 이 그릇 주세요.”라고 하자 흔쾌히 가져가란다. 그러면서 덧붙이시기를 “너 훤한 그릇 많더구먼, 찌짠한(‘못나다’의 방언) 것을 가져다 어데다가 쓰게?” 하신다. 어머니 생각에는 우리 집에 있는 그릇이 보기 좋으셨던 것 같다. 어쩌면 당신이 사용하시던 종지가 나에게 별 쓸모없을 거라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머니께서 사용하시던 그릇이라서 간직하고 싶어서 그래요.”라고 말한 다음에 그 종지를 화장지에 돌돌 말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의 간장 종지를 어디다 두어야 좋을까 고민했다. 크고 번쩍이는 유리 그릇 틈에 두 자니 너무 작아 기가 죽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무 데다 처박아 두 자니 어머님의 손때 묻은 그릇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 놓고 저리 놓고 하다가 결국은 화려한 색감과 무늬가 현란한 폴란드 그릇 옆에 앉혔다. 생각보다 제법 잘 어울렸다. 동서양의 조화로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작은 간장 종지가 조선의 단아함과 소박함, 그리고 도도한 절개까지 몰고 와 서양의 화려한 그릇 틈에서 전혀 기죽지 않았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나니 작은 종지가 어머님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간장 종지를 보고 있으면 유난히 작았던 어머님의 손과 발이 생각났다. 어머니께서는 작은 손과 발을 한시도 쉬지 않고 농사철에는 논과 밭을 일구셨다. 밤에는 졸음을 물리치며 길쌈까지 하셨다고 했다. 거짓말이라곤 농담으로도 해본 적이 없는 분이셨다. 남편 없이 시어머니와 긴 세월을 함께 하신 지조 있는 분이셨다. 하얀 모시적삼을 최고로 가치 있는 옷이라 생각하신 분이셨다.



요즘은 옛날처럼 간장 종지를 상에 올리는 시대가 아니지만 작은 간장 종지는 이따금씩 우리 집 식탁 위에 오른다. 어느 날은 그릭 요거트가 담겨 순백의 미를 돋보인다. 그때마다 파란 테두리를 자랑하며 어찌나 식탁 위에서 뽐을 내는지 새침한 아가씨의 도도함은 저리 가라 한다. 빵을 굽는 날은 딸기잼이나 사과잼이 담긴다. 잼 때문에 잠시 붉어지기도 하지만 세수를 하고 나면 언제 물들었냐는 듯 이내 또다시 순백의 미를 자랑한다.



사용한 종지를 물로 씻고 있자면 어머니께서 살아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이 난다. “높게 올라가려 하지 마라. 떨어질 때 무섭다.” “쓸 만큼 있으면 됐지. 욕심 부리지 마라. 몸 상한다.” “가늘게 먹고 가늘게 싸라. 그게 편하다.” 소학교도 못 나오신 분이 어디서 이런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셨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멋진 깨달음이다. 어머님의 소박하고 지조 있었던 삶, 그러한 삶이 간장 종지에 담겨 지금도 내 곁을 꿋꿋이 지켜주고 있다.



속 좁은 사람을 간장 종지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나는 간장 종지가 담아내는 만큼이라도 나 아닌 타인을 온전히 담아낼 줄 아는 사람인지. 타인에 대한 배려와 타인에 대한 사랑이 간장 종지만큼이라도 진실한지. 무엇이 담기든 결코 물들지 않고 나만의 색을 오롯이 간직하며 살아왔는지. 밥그릇, 국 대접 부러워하지 않고 주어진 종지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어머님의 간장 종지를 보며 되돌아보곤 한다. 작다고 결코 작지 않은 간장 종지를 보면서.



배추전이 먹고 싶어서 배추 전을 부쳤다. 넓적한 배추 잎을 하나씩 따서 두툼한 부분을 방망이로 잘근잘근 두드렸다. 주르륵 흐를 정도의 반죽 물에 배추 잎을 적셔서 프라이팬에 지져냈다. 어머님의 간장 종지에 간장을 담았다. 어머님의 맑은 간장과는 다른 붉은 고춧가루와 파를 송송 썰어 넣은 양념간장을. 노릇하게 익은 배추 전을 쭉 찢어 간장에 찍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짭조름한 간장의 맛과 달큰하게 지져진 배추전의 설컹거리는 식감이 아주 잘 어울렸다. 간장종지 앞에서 먹는 음식은 먹을 때 소박한 맛이 난다. 어머님의 맛이 난다.




주먹구구 요리법 <배추전>

재료: 배추 속잎 10장, 밀가루 2 큰 술, 물 1/2컵, 액젓 1/2술.

1. 배추의 속잎은 따서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준다.

2. 배추 잎의 도톰한 부분을 방망이로 두들겨서 편편하게 펴 준다.

3. 밀가루 2 큰 술에 물 반 컵과 액젓 1/2 술을 넣고 잘 저어준다.(반죽 상태는 주르륵 흐르는 정도)

4. 밀가루 반죽 물에 배춧잎을 적셔준 다음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노릇 하게 지져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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