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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불고기)

by 김경희


조카는 자기 엄마를 닮아 오목조목 얼굴이 고왔다. 티 없이 뽀얀 피부에 갸름한 턱선, 숱 검장을 발라놓은 것처럼 짙은 눈썹, 그리고 갈색 눈동자, 입술은 얇고 붉었으며 콧날은 뾰족하면서도 보기 좋을 만큼 오똑했다. 요즘 우리나라의 예쁘장한 아이돌처럼 골격마저도 예뻐서 어디를 가도 곱게 빛나는 모습이었다.


몸매도 얼굴도 고운 조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갑자기 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주변에서 정우성이라는 배우를 닮은 조카를 보며 그렇게 권했다는 것이다. 시숙은 겉모습만 번지르르하다고 배우가 되는 거냐며 공부하라고 반대를 했고 시숙의 반대에 부딪힌 조카는 작고 큰 사고를 내며 자꾸 엇나갔다. 그러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갔다. 군대에서 철이 들었는지 제대를 하고 나서 경찰공무원이 되겠다며 지방대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했다. 비로소 공부를 하기 위해 부모 곁을 떠나 생활하게 된 셈이었다.






12월 중순이 되던 어느 날, 3학년을 마친 조카가 우리 집에 온다고 연락이 왔다. 늦은 오후 시간에 조카에게서 먼저 연락을 받은 남편에게 집 밥을 먹여 보내면 어떻겠냐고 전화가 왔다. 12월 중순의 나는 학기말고사 성적 처리도 해야 하고 마지막 주에 열릴 퀼트 전시회 준비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터라 남편의 전화에 짜증이 났다. 안 그래도 요즘 바빠 죽겠는데 올 거면 미리 연락을 하고 와야지 이렇게 갑자기 온다고 하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화를 벌컥 냈다. 내 반응에 당황한 남편이 오늘만 시간이 났을 거라며 조카 역성을 들었다.


바빠서 여유가 없는데 조카가 온다고 하니까 짜증이 나나 보네라고 남편이 반응했다면 나는 또 마지못해 ‘에이 알았어.’라며 집으로 달려가 부산을 피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내 바쁜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조카 역성을 드는 남편이 야속하게만 느껴져서 녀석이 좋아하는 불고기를 하기엔 사다 놓은 고기도 없고 음식을 준비하기엔 시간도 촉박하니 밖에서 저녁을 사 먹이자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함께 시간을 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듯 남편은 음식점 장소를 정해서 나에게 알려주었다.


6시 반이 다 된 시간에 약속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붉은빛이 감도는 조명 아래서 조카와 남편은 다정하게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앉아서 음악 소리에 잠시 언 마음을 녹이며 조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꽤나 열심히 공부를 했는지 검은색 항공 점퍼를 입은 조카는 지난 추석에 봤을 때 보다 얼굴이 까칠해져 있었다. 남편에게 짜증 냈던 마음을 뒤로 감추고 환하게 웃으며 음식을 주문했다. 맛깔나는 메뉴들도 많은데 조카는 치즈 돈가스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지 말고 스테이크를 시키자고 했더니 어려서 자주 먹던 맛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도 조카를 따라 치즈 돈가스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는 사이에 조카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 왔는지 물었다. 조카는 학기가 끝나서 그냥 인사드리러 왔다고 하면서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도 조카를 따라 웃으며 순간 그냥이라는 단어에서 집 밥이 먹고 싶어서 왔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렸고 무얼 먹던지 음식보다는 함께 먹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조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작은 엄마의 미안함을 눌러 버렸다.


주문한 치즈 돈가스가 나왔다. 나는 손잡이가 맨질맨질하게 생긴 나이프를 들어 노릇하고 바삭하게 튀겨진 돈가스를 반으로 잘랐다. 칼질에 빵가루가 부슬부슬 잘게 잘리며 하얀 접시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허리를 잘린 돈가스 배속에선 하얀 우유빛깔 치즈가 꿀처럼 찐득하게 흘러내렸다. 기름 냄새와 육즙 가득한 연분홍색 고기 살에서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니 침이 고였다. 입술을 꼭 다물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침이 주르륵 밖으로 나올 뻔했다. 입 안 가득 머금고 있던 침을 꼴깍 삼기며 조카의 접시에 반으로 자른 돈가스를 옮겼다. 끈끈이주걱 풀 마냥 끈적끈적한 치즈가 내 접시에서 조카 접시로 넘어가기 싫어서 몸부림을 치는 것 같았다. 포크로 끈끈함을 돌돌 말아 잘라낸 다음 물컹해진 치즈마저 조카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젊음이라는 것은 때론 돌도 삭히는 소화력이 있기도 하고, 기숙사의 부실한 밥을 내내 먹었던 조카는 내가 건네주는 돈가스를 받으며 괜찮다는 표현도 없이 그저 간단한 고개 짓 한번 까딱하는 걸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런 조카를 보며 내 것을 마저 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과한 행동이라 생각하며 잘게 자른 돈가스 한 조각을 베어 물었다. 달콤하고 짭조름한 소스가 혀에 먼저 닿았다. 어금니로 바삭한 빵가루를 부수고 말캉한 고기와 부드러운 치즈를 뭉개니 입안에서 코를 통해 머릿속까지 기분 좋은 맛이 번져나갔다. 나이 먹은 나도 이리 맛있는데 젊은 조카는 얼마나 더 맛있었을까. 허겁지겁 씹는 둥 마는 둥 돈가스를 먹어 치우는 녀석을 보며 몇 끼를 굶은 사람 같아 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남편도 먹다 남은 돈가스를 조카에게 건네며 더 먹으라고 권하며 웃었다.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따스한 불빛 아래서 조카와 셋이서 돈가스를 먹는 시간은 다정한 시간이었다.






이듬해 5월 25일. 이 날은 세월 호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하고도 아흐레가 되는 날이었다. 새벽 4시에 남편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받던 남편이 창자까지 쏟아낼 정도로 깊은 한숨을 몰아쉬더니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자다 말고 놀란 토끼처럼 눈을 버쩍 뜨는 나에게 남편은 조카가 위독하다는 말을 전하며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세수하는 것도 잊고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나도 옷을 갈아입고 남편을 따라나섰다.


자동차로 새벽의 어두컴컴한 도로를 달리다 보니 미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한 30분 정도를 아무 말 없이 달리고 있는데 작은 시누이한테 다시 전화가 왔다. 조카가 방금 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실 앞에서 남편과 나는 입을 다문 채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슬픔이 한순간에 밀려들며 자동차 안을 가득 메웠다. 팽창된 슬픔은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조카의 주검이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배우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조카의 영정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참을 넋 놓고 서 있었다. 흩어져 사는 형제들이 소식을 듣고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먼 하늘에선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는데 슬픔을 견디다 못한 시누 남편이 부모를 앞서 가다니 이런 나쁜 놈이 어디 있냐며 울음을 화내듯 토해냈다.


무엇이 그리 바빠서 나이 든 제 애비 어미 앞서서 그리 바쁘게 가버렸는지 문득문득 아들 같은 조카가 생각날 때면 야속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집 밥이 먹고 싶어서 찾아왔을 녀석에게 좋아하는 불고기 한 접시 넉넉히 대접해 주지 못한 그날의 미안함이 가끔씩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찌른다. 그날의 인사가 마지막이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그때 나는 어떻게 했을까. 불고기를 상에 올릴 때마다 치즈 돈가스를 우적우적 먹어치우던 아들 같은 조카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날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불고기를 재웠다. 명절이라 다 같이 모인 식구들에게 먹이기 위해서. 선홍색 핏물이 가득한 소고기에 간장 양념을 하니 고기가 가을 나무 색으로 변했다. 마늘, 양파, 파, 표고버섯, 채 썬 당근도 넣었다. 이런저런 재료들과 어우러진 소고기를 달구어진 팬에 올리니 치익 소리를 내며 오그라들었다. 다 익은 불고기에 참기름 서너 방울을 넣고 뒤적이니 조카와 한데 어울려 음식을 나누던 시골집 밥상이 생각난다.






주먹구구식 요리법(소불고기)


재료: 소고기 불고기감 900그램(1근 반), 당근 1/2, 표고버섯 2장, 대파 2대, 다진 마늘, 양념장 (양조간장 90ml, 맛술 2 큰술, 설탕 2 큰술, 매실청 2 큰술, 배 1/3개, 양파 1/2개, 생강 1쪽, 통깨 2 큰술, 참기름 1 큰술, 후춧가루 약간)


1. 키친타월을 이용해서 소고기의 핏물을 충분히 빼준다.

2. 양파 반 개, 배 1/3개, 생강 1쪽을 갈아 즙을 낸 다음 소고기에 넣고 재워둔다.

3. 표고버섯, 당근, 대파는 얇게 썰어주고 마늘은 찧어준다.

4. 양념장 만들기 (간장 6 큰술, 설탕 2 큰술, 매실청 2 큰술, 맛술 2 큰술, 참기름 1 큰술, 통깨 2 큰술, 후추 약간, 마늘 2큰술을 넣고 섞어준다.)

5. 양념장을 소고기에 넣고 조물조물 버무린 다음 대파, 양파, 당근, 표고버섯을 넣고 뒤적여준다.

6. 양념장에 30분 정도 재워 둔 불고기를 달구어진 프라이팬에서 센 불로 핏기가 가실 때까지 재빠르게 볶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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