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봄날의 그리움
산 너머 들판을 지나더니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초록이 밀려온다
풀빛 진한 연두라 해야 할까
싱그러운 녹색이라 해야 할까
속살 드러내는 나무마다
시스루 멋지게 차려입은
황록색 생명 가득하다
갈맷빛 차오르기 전
순하고 착하게 사셨던
내 어머니 돌아가시던 날
가지마다 앞다투어
파릇한 새순이 돋아났다
*갈맷빛: 짙은 초록빛
거리에 연두의 향연이 가득하다. 겨우내 알몸으로 지내던 가지마다 새순이 파릇하게 돋아나니 어머니 생각이 난다. 앞산 뒷산 할 것 없이 연두빛 생명이 피어나는 좋은 계절에 어머님은 이 세상 소풍을 마치셨다.
장례를 마치고 묘비에 쓸 글귀를 고민하던 남편에게 어머님 묘비명은 내가 쓰겠노라 손을 들었다. 어머님 생전에 살아오신 모습을 떠올리며 “순하고 착하게 사시다가 아름답게 떠나가신 어머님 고맙습니다.”라고 썼다. 어머님 묘지를 찾을 때마다 “순하고 착하게”라는 묘비명을 가슴에 담아온다. 생전에 순하고 착했던 어머님을 생각하면서.
요즘은 순하고 착하게 살면 세상 살기가 힘들다고 한다. 순하게 살면 남들이 나를 무르게 보아 무시하기 때문일 것이고, 착하게 살면 손해 보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님의 일생을 떠올리면 누구에게 무시를 당한 적 없었다. 착하게 사시면서 손해를 입은 적도 없었다. 오히려 우직하게 순하셨고 착하게 사셨기에 남 앞에서 당당하셨고 번민이 없으셨다.
젊은 시절 밭일 논일 들일 하시느라 고생하셨다지만, 나이 들어서 내 앞에서 환히 웃으시며 항상 하시던 말씀은 “ 내가 만고 땡 할머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였다. 순하고 착하게 살아할 이유 충분하다. 가지마다 돋아나는 연두의 물결이 어머님 닮아 무척이나 순해 보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