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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주는 위로, 음식과 연결된 우리들의 삶

by 김경희


바쁘게 살았기 때문이었을까? 먹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요리하는 일은 즐겁지 않은 일이었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부터 음식 먹는 일과 요리하는 일이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일로 다가왔다.


우리의 삶은 음식과 연결되어 있다.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 속에는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이 있었고, 결혼 후 먹었던 음식 속엔 남편과 아들, 딸, 그리고 시부모님과 시댁 형제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 나와 지인들을 연결해 주는 것 또한 음식이었다. 무엇보다 어린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느꼈던 희로애락의 감정이 음식과 함께 버무려져 있었다. 어떤 음식은 그리움과 허전함을 메워주었고 아픔과 슬픔을 치유했으며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어 주었다.


젊었을 적에는 누군가 만들어주는 음식이 좋았다. 음식을 만드느라 수고하는 시간이 값있어 보이지 않았고 부엌에 서 있는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소문난 음식점의 음식이 훨씬 맛있었고 손님이 되어 대접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반찬가게로 향하는 발걸음도 언제나 가벼웠다.


몸이 아프고 난 후부터였던 같다.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음식이 약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좋은 식자재를 구매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은 결국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는 일에 관심을 가지자 요리하는 즐거움이 생겼다. 나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예술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만드는 일에 정성을 기울이다 보니 가사 노동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옛 아낙들의 삶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손에 물기 마르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요리하는 시간을 단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읽으면서 “식사를 간단히, 최대한 간단히”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식사 준비하는 데 시간을 줄여서 시를 쓰고 바느질을 하며 글을 쓰자.”라는 헬렌 니어링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였다.


신선한 음식 재료 구하는 일에는 계속 신경 썼지만 복잡한 요리 과정과 긴 조리 시간은 피해 나갔다. 어려서 먹던 엄마의 깔끔하고 단정한 음식과 시어머님께서 해주셨던 채소 반찬과 소박한 음식을 자주 만들게 되었다. 번들번들하게 기름진 고기와 수많은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과는 서서히 멀어졌다.


간단히 만들 수 있으면서도 먹고 나서 속 편한 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확신이 생겼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내가 만들어 먹고 있는 소박한 음식을 소개하고 싶어서 음식에 담긴 이야기의 꼬리에 음식 재료와 만드는 방법을 매달아 놓았다. 엄마처럼, 시어머님처럼 대충 눈짐작으로 하는 두루뭉술한 주먹구구식 요리법들을. 또 다른 맛의 위로를 주고 싶어서 어쭙잖은 그림도 그려 넣어 보았다.


나의 음식 이야기들을 통해 누구라도 자신이 먹은 음식에 깃든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좋겠다. 독자들이 음식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음식에 얽힌 이야기 속에는 변주곡처럼 내용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삶의 철학이 들어있기 때문에. 음식을 먹으며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 음식에 깃든 에피소드, 그 음식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 그리고 물건 등등 음식에는 인생의 맛이 담겨있기 때문에.




작가의 부엌에서

김 경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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