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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크루즈 여행의 맛

by 김경희


바이킹 그레이스 호를 타고 스톡홀름에서 밤새 떠내려왔다. 웅장한 배가 아주 느리게 운항을 해서 그러겠지만 선상에서 바다의 출렁거림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떠내려가는지 바다 위에 정박해 있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오늘은 오슬로 시내 관광을 위해 투르쿠에서 하선하는 시간이 아침 6시 반이었다.


나와는 달리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이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갑판 위를 오르고 싶어 했다. 갑판 위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하고 서 있을 때 살아 있음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면서. 오감으로 직접 느끼는 것보다는 상상으로 즐기는 것을 더 선호하는 나는 그이가 하는 제안이 속으론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여행 중이니 가능하면 하자는 것을 거부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머리와 목을 스카프로 칭칭 동여매고 그이를 따라 갑판 위로 올라갔다.


새벽 4시 반 경에 갑판 위에서 바라본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풍경은 어둑하기만 했다. 어둠을 뚫고 나오고 있는 해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구름은 아직 시커먼 색이었다. 0.0001초도 쉬지 않고 뺨을 후려치는 바람을 조금만 더 마주하고 있으면 온몸이 얼어버릴 것 같아서 객실로 서둘러 내려와 헤어드라이어로 몸을 녹였다. 실내에선 추운 줄 몰랐는데 바깥은 무척이나 추운 걸 보니 오늘의 낮 기온이 낮을 것 같아 따뜻한 옷을 입어야겠거니 생각했다.


엊그제 밤에는 2 배드 룸을 배정받아 여행 가방을 펼치려면 비좁아서 많이 불편했다. 다행히 어제는 4 배드 프리미엄 객실로 이동할 수 있어서 그래도 조금은 넓어졌지만 말이다. 프리미엄 객실이라고 해도 배 안에 있는 방들은 여행지에서 묵는 호텔에 비하면 비좁아서 여행 가방을 안 쓰는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배 안에는 카지노, 클럽, 스파, 샴페인 라운지, 레트로 바&댄싱, 커피숍, 뷔페식당, 볼 풀, 환전소, 현금 자동 인출기 등등 많은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는데 공유 공간들은 모두 널찍했다. 12층까지 이어지는 계단과 층마다 있는 라운지까지도 공간들이 여유 있었는데 유난히 객실만큼은 좁았다. 크루즈 선이다 보니 많은 사람을 태우기 위해 공간 활용을 이렇게 했을 테지만 여행과 휴식을 동시에 즐기기 위해 승선하는 여행객 입장에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갑판 위에서 내려와 꾸물대다 보니 5시 반이 되어 11층에 있는 식당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아침을 먹는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환경에 무한히 적응하는 존재이기에 나 역시 선상에서 하는 이른 새벽의 아침 식사가 그다지 거북하진 않았다. 식당 안에선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가릴 것 없이 이른 새벽에 아침을 먹었다.


북유럽 크루즈 여행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노을이 물드는 붉은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하는 저녁 시간과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여명에 바다 위로 떠내려가는 풍경을 눈으로 마음껏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탔던 크루즈 선은 타이타닉호처럼 초호화 크루즈 선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선상에 마련된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눈앞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음식을 먹는 아침 식사 시간이 무척이나 감미롭고 우아하며 기품 있었다.


저녁시간에 배에서 하는 사는 온갖 해산물이 가득한 음식들과 맛 좋은 샐러드, 베리 잼이 예쁘게 얹어진 달콤한 후식들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특히 우리는 싱싱한 연어를 맘껏 먹었다. 와인과 맥주는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 옆 테이블에 앉은 유럽의 젊은 청춘 남녀들이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실컷 즐기는 분위기에 취해볼 뿐이었다. 하지만 산해진미도 여러 차례 먹으니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먹는 양이 점점 줄어들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처럼 배가 고파야 음식이 맛있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선상에서 여유 있는 마음으로 식사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아침 6시 반에 오슬로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배에서 내렸다. 주말로 이어지는 오슬로의 거리는 또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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