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고 싶은 그대에게 1
해 질 녘이었다, 물이 방방해진 논 위로 지는 해가 반사되고 있었다. 논 수(水)에 비친 붉은빛이 주위로 찬란하게 번져나갔다. 눈이 부실 정도로 어릿어릿한 낙조(落照)의 아름다움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나도 모르게 벌어진 입 사이로 ‘와’하는 감탄사가 군침 흐르듯 흘러내렸다. 하지만 기막히게 아름다운 순간은 어찌 그리 짧은지, 발갛게 익은 해는 어스름한 빛을 남긴 채 순식간에 사라졌다.
해가 지고 나니 영화의 장면이 바뀌듯 어둠이 밀려왔다. 어둑해진 논길 사이를 걷고 있자니, 물이 가득한 논에서‘맹’,‘맹’ 울어대는 맹꽁이 소리가 들렸다. 한 마리가‘맹’하고 울면 다른 한 마리가‘맹’하고 대답한다. 마치 맹꽁이 부부가 논 가운데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저들은 무슨 사연 있길래, 어둠이 깔리는 이 시간에 울고 있는 것일까? 혹여 시집간 딸을 그리워하며 “언제 오려나” 아내가 남편에게 묻고 있는 것일까? “시간이 나면 오겠지”라며 아내의 어깨를 토닥이며 남편이 대답하고 있는 것일까?
논에서 울려 퍼지는 맹꽁이 소리가 마치 우리 부부의 대화처럼 느껴졌다.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며 걱정되기 시작했다. 논에 심은 모가 자라나면서 벌레가 생기면, 대개 농부들은 논에 농약을 뿌린다. 만약에 저 논 주인도 그렇게 한다면 맹꽁이들은 어떻게 될까? 요즘은 친환경으로 농사짓는 이들도 많다고 하던데, 이 논의 주인도 제발 농약을 사용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저 맹꽁이 부부가 무사했으면 좋겠다. 눈으로 직접 본 적 없는, 다만 소리만으로 존재를 느낀 작은 생명체가 소중하게 다가왔다.
산책을 마친 후 손만 씻고 급히 노트북을 켰다. 맹꽁이에 대한 감정을 그대로 글로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쓰다 보니, 친환경 농사의 중요성과 농약의 해로움을 일깨워준 레이철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의『침묵의 봄』 글귀들이 떠올랐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제인 구달 (Jane Morris Goodall, 1934~)처럼, 나약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지구인이 되고 싶었다.
기록하는 행위란 단지 사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인 김춘수 님의 시구처럼, 쓰는 사람은 기록을 통해 많은 것을 잊히지 않는 존재로 이 세상에 남긴다. 결국, 펜을 쥔 자는 죽어가는 것을 살려내는 마법사다. 잊혀가는 것들을 붙잡아 세대와 세대를 잇는 ‘사이꾼’(이어령 선생의 표현)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에드워드 불워 리튼 (Edward Bulwer-Lytton, 1803~1873)이 남긴 이 말은 흔히 언론의 힘을 설명할 때 인용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록의 힘이 얼마나 깊고 강력한지를 일깨우는 명언이기도 하다. 반대에 부딪히더라도 옳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은 결국, 글에서 나온다.
기록의 힘이 얼마나 세차고 변화의 가능성이 큰지에 대한 사례는 역사 속에 가득하다. 미국의 사실주의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우(Harriet Beecher Stowe, 1811~1896)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선량한 노예와 잔혹한 백인을 대비시키며 노예제도의 실상을 폭로했다. 이 작품은 결국 남북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링컨 대통령으로부터 “당신이 이 큰 전쟁을 시작한 여인”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은 전체주의와 권위주의를 경고하며 『1984』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진실의 가치를 설파했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는 자신이 글을 통해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프랑스의 작가 에밀 졸라(Émile Zola, 1840~1902)는 드레퓌스 사건을 둘러싼 권력의 부패를 비판하며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했다. 이 글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무고한 드레퓌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의 작가 한강(1970~)은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통해 비극적인 희생자들의 고통을 오늘의 독자에게 되살려 전달했다. 기록을 통해 비극을 기억하게 하고, 공감과 성찰을 가능케 한 문학이었다.
이처럼 수많은 기록의 사례들은 글이 단지 개인의 감정을 담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시대를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친 사례가 아니더라도 기록의 힘은 개인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성장하고 치유를 경험하며 고해(苦海)와 같은 삶을 버텨낼 힘과 용기를 얻는다. 그러하기에 쓰는 사람이라면 기록(記錄)의 힘이 얼마나 강렬한지 의식하며, 비록 짧은 글일지라도 진심을 담아야 한다. 진심으로 쓴 글은 언제나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힘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