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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목적인가, 책이 목적인가(글 쓰는 목적과 효과)

책 내고 싶은 그대에게 2

by 김경희

목적 없는 여행을 떠난 적 있다. 하루였지만, 오롯이 혼자만의 길이었다. 어깨에 가방 메고 덜컹거리는 구례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무작정 집을 나선 여행. 어디든 발길 닿는 곳에 머물고, 혼자 밥 먹고, 사진 찍으며, 발에 닿는 돌멩이가 있다면 걷어차 보고 싶은 그런 나들이였다. 거미줄처럼 내 삶을 옥죄던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던 스무 살 소녀의 소심한 반항이자 일탈이었다.


여행지에 도착해 두리번거리다 시장 근처에서 밥을 먹었다. 사거리를 지나 한참 내려가니, 냇물이 휘감아 도는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가방 속 필름 카메라를 꺼내 사진작가 흉내 내며 찰칵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아무 말 없이 홀로 걷던 시골 마을 길은 고요해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렸다. 뭐라도 사 먹을 요량으로 슈퍼를 찾아봤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촌스러운 햇볕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가자, 슬며시 짜증이 올라왔다. 지루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모님 계신 집이 그리워졌고, 오빠, 언니, 동생들 얼굴이 떠올랐다. 꼬박 하루는 아니더라도 반나절쯤은 흡족하게 즐기다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기차에서 내린 지 두 시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기차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요즘은 일부러 목적 없이 여행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이십 대의 반나절 여행은 목적이 없었기에 오히려 즐겁지 않았다. 얼마나 심심한 여행이었으면, 그때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혼자 기차 타고 구례 갔다가, 다시 기차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흐릿한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때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목적 없는 여행은 흥미를 잃게 만들고, 결국 집으로 돌아갈 궁리만 하게 된다는 것을.


등산도 마찬가지였다. 어디까지 오를 것인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산에 오르다 보면, 힘들어졌을 때 쉽게 포기하고 내려오곤 했다. 여행이나 등산뿐이었을까. 목적 없이 글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왜 글 쓰는지 분명하지 않으면 꾸준히 쓸 수 없었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






스티븐 리처즈 커비(Stephen Richards Covey, 1932~2012)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Begin with the End in Mind)”고 말한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 내가 얻고자 하는 결과를 명확히 설정해야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끝을 마음에 두는 시작, 그것이 바로 목적을 향한 도약이다.


주변에 글 쓰는 사람들에게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가’라고 물으면 답이 두 갈래로 나뉜다. 책을 내기 위해 쓴다는 사람과, 그냥 쓴다는 사람. 책을 내기 위해 글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목적의식이 뚜렷한 편이다. 쓰는 주제가 명확하고 통일성 있게 글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연스럽게 퍼스널 브랜딩도 갖추고 있다.


반면 그냥 쓴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감출 때가 많다. 그들은 주변에 책 낸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언젠가 내 이름으로 책을 내야 할 텐데…’ 라며 조바심 내기도 한다. 글 쓰는 주제 또한 명확하지 않아 삶에 대한 넋두리를 쓰기도 하고, 감정을 쏟아놓는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 글 쓰고 싶지 않은 권태기가 왔다고 호소한다. 결국, 글은 그냥 쓰기보다 목적을 가지고 쓰는 글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대학원 시절, 논문 지도 해주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김 선생! 저기 모악산 보이지?”

“모악산 정상에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까?”

“그건 말이야, 정상을 계속 바라보면서 올라가면 돼. 논문도 꼭대기만 보고 계속 쓰면 되는 거야.”

나는 그때 피식 웃었다. 기대했던 대단한 비법이 아니어서 실망했고, “에이, 그걸 누가 몰라요.”라며 반박까지 했다. 하지만 논문 심사가 통과된 뒤에야 깨달았다. 그 말이 바로 진리였고, 정답이었다.


목표를 향해 나갈 때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글 쓰는 것이 목적이든, 책 내는 것이 목적이든 출발선은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방향은 확연히 갈라진다. 당신은 지금 무엇 때문에 글 쓰고 있는가? 글 쓰는 것이 목적인가? 책 내는 것이 목적인가? 당신의 선택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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