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고 싶은 그대에게 3
첫 책 『남의 일기는 왜 훔쳐봐가지고』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나는 일기 쓰는 사람이었다. 매일 하루를 기록하는 일은 즐거웠고, 그 시간은 나 자신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과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은 억눌린 감정을 가라앉히고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활기차게 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던 힘은 일기 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예순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부탁할 일 있다며 받아줄 수 있겠느냐 물었다. 어떤 부탁인지 들어보고 결정하겠노라 했더니 꼭 들어주면 좋겠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남편의 말을 듣자마자 깜짝 놀랐다. 앉아 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펄쩍펄쩍 뛰면서 안된다고 손사래 쳤다.
“아니 뭐라고?”
“내 일기장을 몰래 훔쳐봤다고?”
“몰래 본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걸로 책을 내자고?”
크게 당황했고,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적인 기록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었다. 일기 쓰는 일은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행위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책 내는 일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다. 당시의 나는 쓰는 일 자체가 목적이었고, 출판은 그저 다른 이들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남편의 설득은 오랜 시간 이어졌다. 긴 설득 끝에 마침내 마음을 열게 되었고,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원고가 출판사에 전달되었고, 이틀 만에 긍정적인 회신이 도착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과정은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때 남편이 서두르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글을 나만의 공간에 가두어두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때 남편이 고집스럽게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내 일기는 10개월 가까이 출판사에서 숙성된 후,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계약 출판 과정은 '출판의 다양한 방법들'에서 다루겠다.) 내 일기를 선창 삼아 그 선창에 답가 부르듯, 남편의 짧은 답글이 달려 나왔다. 출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쇄가 인쇄될 정도로 반응이 좋았지만, 곧 COVID-19 팬데믹이 선포되며 붉은 옷 입고 세상에 나왔던 첫 책은 조용히 잠들었다.
출간 직후 느낀 감정은 담담했다. ‘책 한 권 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구나.’ 그것이 당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변화는 조금씩 시작되었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관심 보이기 시작했고, 서서히 나를 알아보는 이들이 생겨났다.
출판사의 적극적인 활동 덕분에 전국의 도서관에 책이 배치되었고, 책을 통해 위로받았다는 메시지를 전해오는 독자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했다는 실감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때로는 지인이 책을 수십 권 구매해 직장 동료와 가족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내 목소리가 누군가의 삶에 스며들어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 무렵부터 나를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책을 낸다는 것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 생각과 통찰을 세상과 나누는 일이다. 더불어,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글을 통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를 끌어낼 수도 있다. 개인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영감이 될 수 있고, 공감과 울림을 줄 수 있다. 기록으로 남긴 경험은 잊히지 않으며,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된다. 또한, 출판 계약, 판매수익, 강의 기회 등의 실질적인 혜택도 따라온다.
책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세상에 내보이는 일이며, 타인과 진실한 소통이며, 스스로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나 자신을 작가라 부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