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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숨, 땀, 그리고 생각

책 내고 싶은 그대에게 4

by 김경희

몸이 근질거릴 때가 있다.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다 보면,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있는 탓에 몸을 격하게 움직이고 싶어진다. 글 쓰기 시작할 땐 수업 시간처럼 50분 쓰고 10분 쉬자고 다짐하지만, 글쓰기에 몰입하면 서너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고 만다. 그렇게 온몸이 혹사당한 뒤엔 러닝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뻐근한 목과 묵직한 허리를 돌려가며 집을 나선다.


집 옆에는 작은 초등학교가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낮은 담장을 따라 스무 걸음 정도 걸으면, 샛길로 통하는 작은 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삐걱거리는 작은 문을 밀고 들어서면, 시멘트 계단 열 칸 아래에 흙모래가 깔린 조용한 운동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턱 밑에 숨이 차오를 때까지 운동장을 두세 바퀴 돌고 나면, 근질거리던 몸이 어느새 풀린다. 아마도 이런 움직임은 뇌를 유연하게 만드는 준비 과정일 것이다. 존 메디나( John Medina 1956~)의 『젊어지는 두뇌 습관』에 따르면, 운동은 뇌세포를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말이다.


운동장을 두 바퀴 힘껏 뛰고 나면 숨이 차서 마지막 한 바퀴는 천천히 걸으며 숨을 고른다. 이때 머릿속에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이 사유의 공간에 단정하게 자리 잡는다.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 시간에 생각이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며 쓸거리들이 정리된다.






책이 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책이 되는 글이라는 게 따로 정해진 형식이 있는 건 아니다. 어떤 글이든, 그것이 진심에서 나왔다면 모두 책이 될 수 있다. 다만, 쓰기 전에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글은 단숨에 써지지 않는다. 특히 책이 될 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옹달샘에 물이 고여야 퍼올릴 수 있듯, 생각이 고여야 글을 쓸 수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떠오르는 방식과 시간은 다르지만, 독일의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처럼 산책을 통해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다. 칸트는 매일 점심 식사 후 같은 길을 같은 시간에 산책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고 한다. 그는 매일 산책하는 시간을 생각하는 시간으로 여겼다. 생각은 글의 뿌리이자 줄기다. 거미줄이 거미의 실젖에서 줄줄 풀리듯, 생각이 많을수록 글도 막힘없이 흘러나온다.


책이 되는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주제를 생각해야 한다. 주제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를 선택하면 좋다. 물론 잘 알지 못하는 주제라도 관심이 있다면 괜찮다. 자료를 모아가며 천천히 연구하고 쓰면 된다. 고상한 주제든, 사소한 주제든 상관없다. 남들이 하찮게 여길지라도, 진지하게 붙들고 깊이 생각하면 독창적인 글을 완성할 수 있다.


또한, 책이 되는 글을 쓰기 전에 목차 구성에 대해서도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목차 구성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어떤 장르로 글을 쓸 것인지도 미리 고민해야 한다. 각자 선호하는 장르가 있겠지만, 쓰고자 하는 주제와 어울리는 형식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표현력은 다른 작가들의 글을 필사하며 연습할 수 있다. 그들의 문장에서 감동받은 구절을 따라 써보는 것만으로도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각 글의 분량은 어느 정도로 정할지, 제목은 어떻게 붙일지, 목차는 어떤 흐름으로 구성할지, 프롤로그에는 무엇을 담을지, 심지어 출판 방식까지도 미리 고민해 보고 기록해 두면 좋다.


한 권의 책은 모든 글쓰기의 바람을 담는 그릇이다. 쓰는 이의 지극한 열망과 절실한 몸부림을 품고, 그의 정신과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이다. 당신의 삶을 담아낼 넉넉한 그릇, 이런 한 권의 책을 당신도 가지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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