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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다

책 내고 싶은 그대에게 5

by 김경희

삼십 년 전, 남편은 원고지에 글을 써서 출판사에 우편으로 보냈었다. 아날로그 시대의 원고 작성과 출판 기고 방식이었다. 자필로 쓴 원고가 두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온 후(1992년 4월), 우리 집 서재에 286 컴퓨터가 들어왔다. 남편은 그 앞에 앉아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컴퓨터로 완성된 원고를 복사한 후, 커다란 봉투에 넣고 우편으로 출판사에 보냈다. 지금처럼 버튼 하나로 파일을 전송하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책을 내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은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원고를 보내놓고 나면 답장이 오기까지 몇 주는 족히 기다려야 했고, 우체부가 서류 봉투를 들고 대문을 두드리는 순간, 집 안 공기는 작은 설렘과 긴장으로 가득 차곤 했다.


출판사에서는 오랜 시간 전반적인 내용을 정리한 뒤, 교정·교열을 거친 최종 시안을 다시 우편으로 보내왔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교정 작업이 시작되었다.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며 여러 번 읽고, 빨간 펜으로 수정 표시를 했다. 밤이 깊도록 책상 위에는 원고지가 수북이 쌓였고, 잉크 냄새와 종이 특유의 바스락 거림이 방안을 메웠다. 어렵게 교정을 마치고 다시 출판사에 우편으로 원고를 보낼 때면, 마치 긴 여정을 마친 여행자처럼 피곤함이 뒤따랐다.


이제는 남편도 출판사에 이메일로 원고를 보낸다. 교정 역시 맞춤법 검사기를 활용해 효율적으로 진행한다. 출판사는 최종 시안을 이메일로 보내오고, 표지 시안은 메신저를 통해 작가의 의견을 묻는다. 모든 것이 손끝 하나로 가능해진 시대, 책을 내기 위한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편리해졌다.






출판 방식은 시대마다 크게 달라졌다. 기술 발전은 물론 문화적 변화의 결과다. 고대 및 중세에는 모든 책이 필사본이었다. 수도원에서 성경이나 문서들을 손으로 일일이 베껴 쓰는 작업이 이뤄졌고, 책은 성직자나 귀족들만 소유할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다. 평민은 책을 손에 쥐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 이후 책은 대량 생산되었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에는 출판 산업이 본격화되면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사람이 급증했다. 그리고 21세기, 디지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전자책과 오디오북이 널리 퍼졌고, 출판은 더 이상 출판사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누구나 자체 플랫폼을 통해 직접 책을 출간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종이책을 소량 인쇄해 주문형으로 제작하는 POD(Print On Demand) 서비스, 전자책 플랫폼을 통한 독립 출판,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책 제작, 작가 모임이나 출판 동아리를 통한 협업 출판 등 다양한 방식이 생겨났다. 예전처럼 거대한 출판사만이 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제는 개인이 직접 출판의 주체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기술의 도움과 환경의 변화 덕분에 우리는 책 내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책은 더 이상 먼 꿈이 아니다. 마음속에 오래 간직한 기억 한 장면, 작은 일상의 기록, 나누고 싶은 사소한 깨달음조차도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


책을 낸다는 일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기회가 아니다. 펜을 드는 작은 용기, 첫 문장을 적는 결심만으로도 길은 열리기 시작한다. 쓰는 이의 마음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결국, 누군가의 삶으로 들어가 등불이 된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자. 당신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독자가 어딘가에 있다. 글이 되는 순간, 이미 책은 당신 안에 잉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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