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고 싶은 그대에게 6
집 앞에는 40필지(8천 평) 넘는 너른 평야가 부채처럼 펼쳐있다. 6월 초순, 모내기를 마친 논은 이십여 일 지나자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초록 물결이 넘실댄다. 전주 시내에서 근교로 이사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마치 단독주택에 사는 듯하고, 농촌에 사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논 주변의 풍경은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어,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는다. 무엇보다 이 풍경은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남편의 정서에 꼭 들어맞는다.
비라도 흠뻑 내리는 날이면 초록이 피어난 논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진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탓에, 장화 신고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벗 삼아 서둘러 논으로 나간다. 물기에 젖어 한없이 물컹해진 논두렁을 걷다 보면, 비 오는 날 눈둑에서 물꼬 트느라 분주히 움직이시던 시어머님 모습이 떠오른다.
팔순이 넘은 나이까지도 논농사 지으셨던 어머님은 성실하시기로 유명하셨다.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굳게 믿으며, 평생 근면하게 일하셨다. 도시로 자식들을 다 떠나보내고 혼자 농사 지으시는 일이 결코 쉬웠을 리 없지만, 어머님은 농부라는 직업을 하늘이 내려준 일이라 여기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직하게 일하셨다.
살아 계신 동안 언제나 우리 집 쌀을 대주시던 어머님을 생각하면 감사함을 넘어 경건한 마음까지 든다. 어머님은 자식들에게, 특히 나에게 충분히 인정받을 만큼 직업의식이 투철한 농사꾼이셨다.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는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젊은이들에게 삶, 열정, 도전,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생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어려움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나아갈 것을 강조하며, “우리는 모두 맡은 일을 하도록 선택되었고, 그 일을 정말 훌륭하게 해내고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맡은 일을 잘 해내고, 나무랄 데 없이 유용하게 하려면 반드시 직업의식이 필요하다. 직업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일에 만족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신뢰와 인정을 받는다. 책임감 있게 최선을 다하고, 집중하여 완수해 내며,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전문성을 키우고, 정직하고 공정하게 행동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직업의식을 실천하는 자세다. 이러한 태도를 가진 사람은 결국 성공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작가라는 직업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분야다. 스스로 고안한 이야기를 글로 엮으며 느끼는 창작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게다가 작가는 자신의 일정과 작업 공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집에서도, 카페에서도, 심지어 여행지에서도 일할 수 있으니,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프리랜서 특유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로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 외로움을 느끼거나 사회적 교류가 부족해질 수 있다. 그러함에도 작가는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진실을 포착하고 그것을 언어로 정제해 세상과 나누는 사람이다.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 독자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끊임없이 사유하고 표현하려는 태도가 바로 작가의 직업의식이다. 글은 곧 작가의 인격이자 세계관이며, 그의 문장은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고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기에, 작가는 언제나 성실하고 진심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