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고 싶은 그대에게 7
“왜 작가가 되었나요? 그것도 육십이 넘은 나이에?”간혹 누군가 이런 질문을 건네면, 나는 “퇴직 후 심심해서요.” 혹은 “글 쓰는 일이 재미있어서요.” 하고 웃으며 대답한다. 하지만 스스로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는 쉽게 답하기 어렵다. 유명해지고 싶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도, 성공하거나 멋져 보이기 위해서도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왜 작가가 되었을까?
나는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럿이 함께하는 일보다 혼자 할 때 훨씬 편하고 집중이 잘 된다. 생각해 보면, 공동작업에서는 속도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성격이 급한 나는 일을 빨리 처리하는데, 속도가 느리거나 반응이 더딘 사람을 만나면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다 보면 기다림에 지쳐 목표를 향한 열정이 사그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혼자 일하는 걸 즐기고, 이런 성향은 글 쓰는 데 도움이 된다. 글은 결국 혼자 써야 하니까.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겉으로만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씀이세요?” 하고 믿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특히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쉽게 지친다. 물론 오랜 시간 사회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가르치는 현장에 있었기에 타인과의 소통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혼자 있어야 비로소 에너지가 충전되고, 다시 살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성격 역시 글쓰기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또 하나, MBTI 인식의 영역에서 직관(N) 형인 나는, 실제 너머를 인식하려는 성향이 강해서 상상력이 풍부하다. 여덟 살 무렵 한 살 아래의 외사촌 동생이 집에 놀러 오면, 안방 벽에 걸린 풍경화를 소재로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다. 풍경화 속에는 강물 위에 배 한 척이 떠 있었다. 그림을 담고 있는 액자 오른쪽 아래에는 흰모시 저고리를 입은 할아버지의 증명사진이 꽂혀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그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다니며 물건을 팔고, 온갖 모험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동생에게 들려주었다. 신밧드의 모험처럼 말이다. 이런 상상력은 글 쓰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왜 작가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정확한 답변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글 쓰는 일이 내 성격에 잘 맞았기에 자연스럽게 작가가 된 것 같다. 쓰는 일이 좋아서 글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작가로서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원고가 쌓이면서 글 쓰는 행위를 단순한 즐거움으로만 대할 수 없었다. 즐거움을 위해서만 글을 쓰는 일은 배부른 돼지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 수많은 작가의 글을 읽으며 ‘작가의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소설가 김형수는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에서 “글 쓰는 사람은 작가가 되기에 앞서 가치관을 확립하고 창작에 임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작가라면 누구나 작가의식을 지녀야 하며, 각자가 자신만의 가치관을 확립한 뒤에야 비로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초월하기 어려운 존재다. 하지만 작가는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초월적인 삶을 글로 풀어내는 창의력, 막히고 어긋나는 상황에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써 내려가는 끈기,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작가의 글은 단지 개인의 기록을 넘어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창작자는 자신의 글이 편견이나 차별을 조장하지 않도록 늘 성찰해야 한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작품에 반영하여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데 기여하는 일, 그것이 작가의 윤리적 책임이자 가치관이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감정의 우물에서 허우적거리는 글, 얕은 지식을 자랑하거나 뽐내는 글, 미사려구(美辭麗句)를 써서 수려한 것 같지만 알맹이가 없는 글, 고민한 흔적 없이 인기몰이를 위해서 휘갈긴 글, 다른 사람의 글을 흉내 낸 글, 글쓴이의 삶과 어울리지 않는 글, 개인사에 매몰되어 관조(觀照)의 미학을 찾아볼 수 없는 글, 이런 글로는 울림을 주기 어렵다.
홀씨처럼 가볍고, 바람에 날리듯 사라지는 글이 아니라, 무게가 있어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을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작가는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할까. 사회적 변화를 위해, 보다 진실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가치관을 점검해야 한다. 나아가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부족한 점을 인식하며, 끊임없이 성장해 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글 쓰고 있는 그대여!
찾아서 읽어보라.
세기를 넘어 지금도 독자의 가슴을 흔드는 글들을.
살펴보라.
이런 글을 쓴 작가들의 삶과 그들의 가치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