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본기 다지기 1
퀼트를 취미 삼아 바느질한 지 30년이 넘었다. 처음 몇 년은 퀼트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하기 바빴다. 천의 색깔 배열도, 모양도, 크기도 모두 선생님의 작품을 그대로 모방했다. 똑같이 만들기 위해서는 작품을 유심히 관찰하고, 만드는 방법을 스스로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정성 들여 완성한 작품을 바라볼 때면, 어깨가 으쓱해졌다. 선생님의 작품과 흡사하게, 아니 어쩌면 더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느질 솜씨가 늘고, 점차 나만의 색감과 형태, 크기로 조절해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을 때 자나 깨나 ‘어떤 모양으로 무엇을 만들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뒤로 수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 아이디어를 실제 작품으로 구현해 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퀼트 작품을. 지금은 손가락과 어깨가 아파 창작의 열정이 한동안 가라앉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온 정성과 시간을 쏟아붓는 창작의 기쁨 속에 살았다.
글이 되는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일도 퀼트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무엇보다 관찰력이 요구된다. 관심 있는 분야나 주제를 세심히 관찰하고, 관련 정보를 찾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러한 깊은 이해는 책을 통해 가능하다.
『독서 천재가 된 홍 대리』를 쓴 이지성 작가는,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100권 정도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렇게 하면 책을 쓸 만큼의 지식이 축적된다는 것이다. 물론 꼭 100권이 아니더라도, 몇십 권만 읽어도 그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책을 통해 다양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접하면서 내 생각을 발전시키는 힘이 생긴다. 실제로 같은 분야의 책을 여러 권 읽고, 그 분야에 대해 책을 쓰는 작가들도 많다.
글의 아이디어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때도 생긴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글감이 된다. 나는 2023년 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을 접하며 글감을 얻었다. 신규 교사가 자신의 교실에서 삶을 마감한 이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언론의 관심은 식었고, 몇몇 교사의 절규는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부조리는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 그 어떤 기관도 이 질문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나는 이 문제를 바탕으로 단편소설을 써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결과는 비록 탈락이었지만, 우리 교육현장의 아픔을 인식하고, 작게나마 해답을 모색해 본 뜻깊은 시간과 경험이었다.
죽기 전에 꼭 써보고 싶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숙제 같은 주제도 있다. 일제강점기 징용으로 끌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시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2015년 5월, 정부가 공개한 사망자 명단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확인했던 ‘권윤학’ 시할아버지. 그 이름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 시대에 같이 살지도 않았고, 할아버지의 삶에 대해 아는 바 거의 없지만, 상상력을 동원해 그의 마지막 순간을 복원하고 싶다. 작가 한강이 『소년이 온다』에서 동호의 삶과 5·18 광주 민주항쟁의 진실을 지금의 현실로 불러온 것처럼, 시할아버지의 부재를 상상하고 기록하고 싶다.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신 그분, 매일 버스 정류장에서 남편을 기다렸다는 시할머니의 애틋한 시간을 되살려 위로해드리고 싶다.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자료 조사와 이야기의 실마리가 될 단초들을 모으고 있다. 이처럼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글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문제는 물론이고, 사회 각층에서 일어나는 문제 역시 훌륭한 글감이 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글 쓰는 사람 나름의 해결책을 고민해 보는 과정이 글의 재료가 되어 글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또한, 자유롭게 생각을 펼치는 브레인스토밍은 아이디어를 얻는 데 유용하다. 어떤 생각이든 떠오르는 대로 적어놓으면, 나중에 거기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도출되기 마련이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장소를 경험하는 것도 창의적인 글쓰기의 원천이 된다. 많은 작가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 타인의 관점을 듣고 생각을 공유하다 보면, 글에 대한 또 다른 방향이 열린다.
이러저러하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나는 핸드폰에 녹음하거나 메모해 두는 습관이 있다. 기록해 두지 않으면 아이디어는 새처럼 멀리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기억력의 감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아이디어는 본래 찰나적이기에, 붙잡아 두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도 사람과의 관계처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좋은 인연으로 발전한다. 떠오를 때 알아차리고, 메모해서 기록으로 남겨주는 정성. 그것이 아이디어를 ‘글’로 발전시키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