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동생에 이어 딸이 마침내 주식시장에 입성하던 날,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제자를 데려온 스승처럼 뿌듯했다. 동생과 딸의 카톡방은 이미 ‘주식 특강 방’으로 변해 있었다.
“지금 들어가야 돼,”
“이건 진짜 기회야.”
“차트 봐봐, 눌림목이야, 눌림목!”
하루에도 몇 번씩 동생에게 차트를 캡처해서 보내고, 수익 인증샷을 올리며, 주식 유튜버들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링크했다.
“언니, 이거 정말 괜찮겠어?”
동생은 염려하는 마음을 내비치면서도 결국 추천 종목을 사들였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니까…”
딸도 내가 추천한 종목을 사들였다. 그렇게 우리 셋은 같은 종목의 주주가 되었다. 처음엔 정말 찬란했다. 주가가 하루, 이틀 오르자 단톡방에 환호가 터졌다.
“역시 언니야!”
“엄마 최고!”
동생과 딸의 반응에 살짝 들떠 다음 종목을 분석하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내 인생의 황금기가 시작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기쁨은 길지 않았다.
7월의 태양이 아스팔트를 녹이던 날부터 주식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움직이지 않는 척하며 우리의 간을 서서히 졸였다. 하루는 조금 오르고, 다음 날은 그만큼 빠졌다. 캔들은 오르내리면서도 결국 제자리. 아니 오히려 오를 땐 조금 오르고 내릴 땐 더 많이 내렸다. 그래프를 보면 파도라기보다, 해변에 밀려 왔다 더 멀리 밀려가 버리는 썰물 같았다.
“언니, 이거 왜 이래? 점점 더 빠지잖아.”
“엄마, 본전 되면 팔아 버릴까?”
그때마다 침착한 척 말했다.
“이건 횡보하는 거야. 다지는 구간이지. 조정일 뿐이야. 더 올라가기 전에 한숨 돌리는 거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내 마음이 먼저 조정받고 있었다.
“그러게 왜 처제하고 딸까지 주식에 끓어 들여. 손해나면 어쩌려고.”
주식 횡보 기간이 길어지자 불안해하던 그이가 한 마디 쏘아붙였다. 종일 주가를 들여다보느라 에어컨을 켜도 땀은 흘렀고, 마음은 더 뜨거웠다. 여름의 열기에 주식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7월이 가고 8월이 와도 차트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뉴스는 온통 ‘폭염주의보’, ‘열대야 지속’이었다. 밤에도 서늘해지지 않는 공기처럼, 우리가 선택한 종목도 우리 마음을 식혀주지 않았다.
“엄마, 이 주식은 도대체 언제 오르는 걸까?”
딸의 목소리에는 피로감이 섞여 있었다.
“기다려야지. 인내는 투자자의 미덕이야.”
태연한 척 말하면서도, 휴대폰 화면을 닫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은 내가 잘못된 길로 이끈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과 딸은 나를 믿고 따랐다. 그 믿음을 숫자와 그래프로 증명하려 했는데, 주식은 내 마음을 시험하는 게임이었다. 오르지 않는 차트 앞에서, 믿음도 흔들리고, 관계마저 흔들릴 것 같았다. 8월 말, 결국 나는 단톡방에 이렇게 썼다.
“얘들아, 우리 그냥 조금 더 묵혀두자. 주식도 김치처럼 숙성될 시간이 필요해.”
“그래, 언니 믿고 가볼게.”
동생은 긍정적으로 대답했고, 딸은 카톡창에‘ㅠㅠ’ 하나를 남겼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9월이 되자, 내려갔던 주식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3.8, +2.2, +4.0, +1.2, +3.8... 숫자들이 다시 붉게 물들며, 마치 한동안 숨죽였던 생명이 천천히 깨어나는 듯했다. 숫자의 움직임을 보며 알았다. 시장은 결코 멈춰 있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모든 기다림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의 시간이었다. 잠시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차트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길이 질서를 만들고, 흐름은 방향을 찾아갔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멈춘 것 같던 날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자라고 있다. 불안과 의심이 지나간 자리에는 결국, 단단한 믿음이 남는다. 투자는 단지 돈의 오르내림을 보는 일이 아니라, ‘시간과 나’를 관찰하는 일이다. 언제 오를지, 언제 내릴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계절이 반드시 바뀐다는 사실이다. 이런 흐름을 깨닫는 사람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하락의 시간에도 마음을 지키고, 기다림의 시간에도 의미를 찾는다.
기다림의 시간 뒤로 동생과 딸에게 종목 추천 대신 이렇게 말한다.
“주식보다 중요한 건, 마음의 온도 관리야.”
7월과 8월의 무더위를 견뎌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진실이었다. 이 말은 이제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되었다. 시장은 변하지만,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이미 수익이다. 기다림은 손실이 아니라, 성장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진짜 투자는 결국 ‘자신을 잃지 않는 연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