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남편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침묵 속에 가슴이 천천히 오르내리는 것을 지켜봤다. 내가 조심스레 내뱉은 말이, 우리의 삶에 커다란 균열을 내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남편은 낮게 중얼거렸다.
“주식... 괜히 건드렸다가 모아둔 돈 몽땅 날리면 어떡해.”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평생 안정을 좇아 살아온 사람에게 ‘투자’라는 단어는 곧 ‘위험’의 다른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만큼은 이상하게 확신이 있었다. 마치 이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이 밀려왔다. 모자라는 집값 1억이 무겁게 다가왔다.
며칠 밤을 뒤척이며 고민하다 우리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그 무렵 밤마다 내가 꾸었던 꿈이 남편의 마음을 움직였다. 시장 한복판에서 아름드리나무보다 더 큰 드럼통에 소갈비를 한가득 끓이는 꿈, 금궤를 유명인사에게 전달하는 꿈, 아이가 젖을 빠는데 젖이 엄청 많이 나오는 꿈 등등.
그때 존 리의 주식투자 철학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그의 강의는 ‘내 돈을 일하게 하라’, ‘주식하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월세 살면서 집 살 돈으로 투자하라’,‘아이들 학원 보내지 말고 학원비로 투자해라’ 그러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부자 되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지만, 당장 모자라는 집값 충당을 위해서 투자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수중에 있는 돈을 주식에 투자해 보기로 했다. 드디어 시작된 주식투자의 현장. 클릭 몇 번이면 수천만 원이 오가는 세상. 처음 접한 세계는 낯설고 아찔했다. 시세 창의 빨간 불빛과 푸른 불빛이 하루에도 수십 번, 우리의 심장을 쥐락펴락했다. 신중하게, 손에 땀이 맺히도록 보고 또 보며 매수 종목을 골랐다.
SBS biz '주식이 궁금할 때'라는 프로에서 전문가가 요즘 관심 종목을 브리핑해 주었다. 미국 정부가 원전에 대해서 호의적이라 앞으로 원자력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 했다. 우리는 두산 에너빌리티, 한화오션, 한전기술, 우리 기술, 한전 kps. 원자력 관련 주들을 포트에 담았다. 또 원전기술을 뒷받침할 건설주인 현대건설, 대우건설, 삼성중공업 주식도 포트에 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두산에너빌리티를 비롯한 원전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일주일 만에 4백만 원 넘는 이익이 났다. 남편의 얼굴에 긴장이 서서히 풀리고, 나를 향한 눈빛에도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보, 잘하는데?”
그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더욱 들뜨게 했다. 마치 그동안의 평범한 삶을 보상이라도 받듯, 수익이 쌓이는 화면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달콤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폭락 장이 모든 것을 뒤엎었다. 불과 하루 만에 계좌에서 500만 원이 사라졌다. 시세 창에 파랗게 번지는 하락 그래프는 겨울 왕국처럼 꽁꽁 얼어붙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손을 덜덜 떨며 소리쳤다.
“그만하자! 이러다 진짜 다 잃어버리면 어떡해.”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손을 뗄 수 없었다. 도리어 이대로 멈추면 안 된다는, 이상한 집착이 나를 붙잡았다. 이 또한 기회일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희망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밤마다 우리는 주식을 계속할지 말지 의논했다. 남편은 안전을, 나는 도전을 주장했다. 작은 아파트의 좁은 거실은 차갑게 얼어붙었고, 불 켜지지 않은 방안에선 서로의 한숨이 메아리쳤다. 그렇게 두 달이 지루하게 흐르던 어느 날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시세 창을 켜던 순간, 믿기 힘든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가 투자한 원전 종목 중 하나가, 갑작스러운 호재 뉴스로 폭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빨간 불빛이 미친 듯이 치솟는 그래프. 눈앞에서 돈이 불어나는 광경에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남편은 숨조차 쉬지 못한 채 모니터를 붙잡았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쥐었다.
“여보! 지금 팔아야 할까?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까?”
그 순간, 우리 둘은 동시에 깨달았다. 이제 이건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순간적인 선택이, 앞으로의 삶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사실을.
나는 재빨리 시장가로 수익 난 주식을 팔아 해치웠다. 다음 날 더 오를지 모르지만, 확률은 반반이라는 생각에 이익 날 때 먹자는 판단을 내렸다. 4,945,150원의 이익금이 생겼다. 두 달 사이에 2억으로 5백만 원 가까운 수익을 내다니 봉사가 문고리 잡은 격이었다. 아직 주식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은행 이자에 비할 수 없는 수익으로 기분이 짜릿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