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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사들의 주식공부

13화

by 김경희

보기만 해도 마음 한편이 짠해지는 후배들이 있다. 성실하기 그지없고, 남에게 상처 한 번 주지 않을 만큼 착한 그녀들은 어느새 한결같이 교회의 권사가 되어 있지만, 여전히 소녀 같은 순수함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 같은 교회에서 자란 우리는 예배당의 공기와 성가대의 음색까지 함께 나누며 성장했다. 세월이 흘러 각자의 삶을 꾸리며 다른 교회로 흩어졌지만, 오랜 인연은 쉽게 끊기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이어온 만남 덕분에 우리는 제2의 자매들처럼 서로의 속내를 훤히 아는 사이가 되었다.


얼마 전 모임에서도 늘 그렇듯 웃음꽃 피우다가, 우연히 경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누군가의 상황 얘기가 불씨 되어 자연스레 주식투자로 번져갔다. 평소라면 교회 봉사나 부모님 이야기에 머물던 대화였는데, 이날만큼은 달랐다.

“이제 우리도 재테크 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불쑥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모두의 표정이 묘하게 진지해졌다. 후배들은 여전히 현역처럼 일터를 오가고 있다. 하지만 하나같이 서서히 은퇴를 준비해야 할 시점에 들어서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나 역시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요즘 주식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 요즘 주식 해요?”

한 후배의 질문에 잠시 공기가 멈췄다. 교회 권사들 사이에서 ‘주식’이란 단어는 웬만한 죄보다 더 조심스러운 주제다. ‘세속적인 욕심’, ‘믿음이 약해진 증거’쯤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대목에서 괜히 눈이 반짝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요즘 조금 하고 있어.”

그러자 후배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중 한 명이 불쑥 물었다.

“언니, 그럼 종목 하나만 찍어줘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종목을 찍어 주는 일이라니, 얼마나 무모한 부탁인가. 주식 입문 초기엔 딸과 동생에게 종목을 찍어주긴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주식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 같아서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고, 늘 같은 물길을 흐르지 않는다. 어떤 주식은 순식간에 수익을 안겨주지만, 또 어떤 주식은 마음을 쥐어짜듯 손실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 다음 달엔 내가 특강을 한번 해볼게!”라고 호기롭게 선언하고 말았다.






주린이에 불과한데 주식 특강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진심이었다.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노후를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 돈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재산 관리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런 마음이 나를 움직였다. 믿음으로만 살아왔던 우리에게도 이제는 숫자 감각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그날 이후 한 달 동안 강의 준비에 몰두했다. 주식의 ‘주’자도 모를 그녀들을 위해, 가장 기초적인 이야기부터 차근히 정리했다. 주식통장을 어떻게 만드는지, 소액으로 투자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차트 보는 기본 원리와 매수·매도의 시점까지. 어쩌면 이런 내용 대부분은 이미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나오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라는 것을.


후배들은 아마도 투자 하기 이전의 나처럼 주식을 ‘세속적인 욕심’쯤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돈’이라는 단어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돈을 죄악시하는 것보다, 그것을 두려워하며 방관하는 것이 더 큰 손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삶을 유지하고 가족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은 신앙의 힘과 함께 현실을 마주하는 용기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후배들에게 강의해 줄 내용을 준비하는 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과 남편의 주식이 동시에 상한가를 쳤다. 마치 세상이 나에게 “괜찮아, 잘 가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 덕에 내가 세운 목표금액 1억 자금의 5분의 2가 채워졌다. 숫자가 주는 희열보다도, 그 과정을 견디며 얻은 배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믿음의 응답이라 하기엔 다소 현실적이지만, 어쨌든 감사할 일이다.


다음 달 후배들에게 어떤 말부터 전해야 할까. 나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걸어온 믿음의 길 위에서도, 삶을 꾸려가는 현실의 길 위에서도 ‘배움’과 ‘도전’은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기도로 하루를 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세를 확인하며 세상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신앙은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빛을 잃지 않도록 돕는 힘이라는 것을. 주식 공부한다고 해서 믿음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인내와 절제를 배우는 데 이보다 좋은 교재가 또 어디 있을까.


나는 그녀들에게 말할 것이다.

“우리, 믿음처럼 돈도 두려워하지 말자. 주식은 탐욕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또 하나의 교실일지도 몰라.”

이것이 바로 권사들의 주식 공부다. 믿음과 현실 사이를 유쾌하게 오가는, 우리 세대의 새로운 신앙 훈련이다. 오늘도 강의안을 다듬는다. 믿음으로 살고, 배우며 성장하는 우리들의 새로운 여정이 지난날의 모임처럼 따뜻하게 이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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